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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의료는 커다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알다시피 변화를 촉발시킨 것은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의료민영화 정책을 둘러싸고 전개된 지루한 찬/반 논쟁에서 한국 의료의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새사연 보건복지분과는 한국 의료의 새로운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앞으로 4회에 걸쳐 '(OECD Health Data)로 본 한국 의료의 현실'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는 향후 한국 의료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리기 위한 훌륭한 재료이자 근거가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조언을 기대한다. [편집자말]
대담 참여(새사연 보건복지분과)
박유원 | 간호사, 새사연 회원
이은경 | 한의사, 청년한의사회 정책국장, 새사연 연구원
정달현 | 예본치과 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조남선 | 은평연세병원 외과과장
황지원 | 소화아동병원 간호사,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정책위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윤찬영(진행 및 정리) | 새사연 미디어센터장
대담 일시: 2월 25일

우리나라에만 유독 비싼 의료기기들이 많은 이유

사회 : 지난 시간에 이어 한국의 의료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자. 우리나라에는 유독 MRI나 CT기 등 고가의 의료기기들이 많다고 하던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은경 : 흔히 알고 있는 CT(컴퓨터단층촬영)기나 MRI(자기공명영상)기보다 훨씬 더 비싼 의료기기도 많다. 조기암을 진단한다는 PET(양전자단층촬영)기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고 검사비도 100만 원을 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부터는 병원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낮은 보험수가가 자리하고 있다. 보험수가가 낮으니 병원들은 비급여 영역의 진료를 늘리거나 과잉진료로 수익을 내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우리나라에 비싼 의료기기가 많은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나라별 고가 의료기기 보유 대수(인구 100만명당). 출처 : OECD보건통계
나라별 고가 의료기기 보유 대수(인구 100만명당). 출처 : OECD보건통계 ⓒ 새사연

조남선 : 외국에서는 CT기, MRI기가 고가 의료기기로 분류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 장비가 돼 버렸다. 게다가 이런 기계들이 급여 대상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더 비싼 기기들을 들여오고 있는 형편이다. 다빈치라는 기계가 대표적인데, 대당 가격이 30억 원에 달하는 수술용 로봇이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은경 : 불필요하게 많이 도입하다 보니 당연히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령, CT기의 경우 외국에서는 활용도가 약 80%인데 우리나라는 50%도 안 된다. 이런 진단기기들은 큰 규모의 병원에 있어야 활용도가 높은데 의원이나 소규모 병원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비싼 기기들을 들여와서는 제대로 사용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황지원 : 질이 떨어지는 기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규모 병원에서 찍은 필름이 판독이 안 돼 대학병원으로 옮기면 다시 찍어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이정도면 돈벌이를 위해 찍는다는 비아냥도 나올 법하다.

정달현 : 여러가지 측면을 함께 봤으면 한다. 치과 영역에서도 최근 CT기가 엄청나게 늘었다. OECD보건통계에 치과에서 사용하는 덴탈CT기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웬만한 지역 의원마다 덴탈CT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수익성 경쟁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가의 장비들이 진단과 진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래서 단순히 돈만 많이 들 뿐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조남선 : 물론이다. 비싼 기기들이 더 나은 치료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쓸모도 없는 것들이 돈만 잡아 먹는 건 아니다.

정달현 : 정말 중요한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만큼의 의료 자원을 확보하고 이것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때로는 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서비스가 있다면 그곳으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불필요한 경쟁과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면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할 수 있는 룰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은경 : 동의한다. 더 나은 서비스라고 해서 사회 전체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꼭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규모도 있게 마련이지만, 꼭 그런 점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야 옳다.

조남선 : 일본은 현재 로봇팔 수술기인 다빈치의 수입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일본에서는 먼저 다빈치를 대체할 기기를 스스로 만든 다음에 다빈치 사용을 허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쟁적으로 다빈치를 도입할 경우 국민 의료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정책적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은경 : 일본 정부의 판단이 부럽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너무 적다. 비급여 영역은 전혀 규제 대상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몇 백억원에 달하는 비싼 기계를 들여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조남선 : 재밌는 사례가 있는데, CT기와 MRI기가 비급여 영역이던 시절에는 경쟁적으로 기기를 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폐스캔 장비가 개발됐을 때는 정부가 나서서 아예 초기에 급여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렇게 하면 수익이 크게 남지 않으니 많이 들여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비껴갔다. 지금은 폐스캔 장비가 일반화되어 모든 암환자가 폐스캔을 받는 상황이다.

황지원 : 보험급여를 적용하면 오히려 사용량이 급증한다. 다시 말해 도입 초기에는 비급여로 고가의 비용을 받다가 어느 정도 일반화가 되면 보험적용을 받아 무조건 촬영을 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식이다. PET(양전자단층촬영)기의 경우도 보험급여가 되고 나서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급여화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더 확실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양전자치료기는 암센터에서만 들여올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의사의 수보다 더 큰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전문의 비중

사회 : 이번에는 의사 수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의사의 수는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나라별 의료인력 고용 현황. 출처 : OECD보건통계
나라별 의료인력 고용 현황. 출처 : OECD보건통계 ⓒ 새사연

이은경 : 이 통계에는 한의사 수가 포함되어 있어 실제 의사 수는 더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의대와 의대생의 수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앞으로 의사의 수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점도 참고해야 한다.

황지원 : 한 사회의 적정 의사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추세로 보면 의사의 수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이나 특정 과로의 쏠림 현상, 또 전문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과 그로 인해 의사 양성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사회 : 의사가 지나치게 많다거나 또는 적다거나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도 많지만, 단순히 의사의 수만을 따지기에는 더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는 얘기로 들린다.

박유원 : 실제 수도권 큰 병원에 가면 의사 만나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 반면에 의사들은 수가가 낮아서 많은 환자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보면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불균형이다.

사회 : 전문의의 비율이 너무 높은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달라.

조남선 : 내가 의대를 다니던 20여 년 전만해도 일반의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문의 자격이 없이는 개원을 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의대 졸업자의 90% 이상이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된다. 일반 진료를 보려고 해도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따야 한다. 문제는 실제 국민들에게 필요한 인력이 양성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느라 세부 분과의 전문의만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지원 :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1차의료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한데 실제 1차의료를 담당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영국에서 지역 의료기관에 속해 일반적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인 지역보건의(GP)도 우리나라 일반의처럼 의대만 졸업한 의사는 아니다.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일반 진료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1차의료를 담당할 전문의를 양성하는 방향이 옳다.

이은경 : 의대 졸업 후 수련 체계가 필요한 것은 맞다. 지적한 대로 의대 졸업 후 의사 자격만 딴다고 해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는 없다. 문제는 졸업 뒤 거치는 현재의 수련 과정이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수련 과정이 반드시 분과로 나뉘어 진행돼야 하는가에 대한 검토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과목은 점점 세분화되는 추세인데 수련을 마친 뒤 실제 그 분야의 진료를 하게 되는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지 않은가. 대부분의 의사들은 병원에서 몇 년 동안 힘든 수련을 받고 나오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감기, 고혈압, 당뇨 등 1차 진료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달현 : 10년 가까이 갈고 닦았던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쓰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낭비다. 따라서 이를 개혁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의 수련 체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치과와 한의사 영역에서는 새로운 수련 체계를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핵심은 어렵게 배운 것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황지원 : 맞다. 각막 이식 같은 고도의 수련을 하다가 개원한 뒤에는 라식수술만 한다면 낭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남선 : 흉부외과 전공의를 하려는 사람이 너무 모자라서 정부가 흉부외과의 수가를 100% 올려주기로 한 일이 있다. 그 뒤로 흉부외과 지원자가 실제로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가슴을 열어 수술을 할 수 있는 대학병원급 이상의 자리가 제한돼 있어 대부분이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은경 : 급성기병상에 필요한 의사 수는 거의 정해져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현재는 이보다 더 많은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달 체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치의 제도도 좋은 방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출되는 간호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활동 간호사 수

사회 : 이번에는 간호사 수에 대해 살펴보자.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왜 유독 간호사만 부족한가.

황지원 : 배출되는 간호사의 수는 적지 않다. 문제는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이 적다는 데 있다.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배출된 인력은 23만 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만 명 수준이다. 10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렇게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보호자가 오줌줄 삽입과 같은 의료 처치를 직접 담당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박유원 : 지나친 경쟁도 원인이다. 병원들이 비싼 의료 장비를 들여오고 병상을 확충하다 보니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많이 뽑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인건비가 전문의에 비해 싸기 때문이다.

조남선 : 그러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입원수가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보통 하루 입원비는 본인이 부담하는 6000원을 포함해 2만 원 정도인데, 이런 비용으로 간호사를 3교대로 운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도 간호사를 몇 명 이상 두면 입원수가를 조금 더 올려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부족하다.

이은경 : 간호 인력에 대한 연구는 이미 상당히 이루어져있는 편이다. 간호사 1명이 봐야 할 환자의 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 등도 이미 마련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기관들이 비급여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고민하기 때문에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정달현 : 미국은 병상 수는 적지만 간호사 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조남선 : 전에 미국인 환자의 맹장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간호사에게 밥을 먹여 달라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힘들면 간호사가 와서 밥을 먹여준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간병인을 쓰거나 보호자가 환자에게 붙어있어야 한다.

박유원 : 지방 중소 병원은 숙련된 간호사를 충분한 만큼 고용하기가 어렵다. 의료 서비스의 질은 당연히 떨어지게 되고 환자들은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들이 줄어드니 결국 중소 병원의 경영 사정은 더 악화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

사회 : 간호 인력의 수급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들이 있다고 했는데,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은경 : 병원 별로 병상당 간호사 수에 따른 등급제를 적용해 간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병원에게는 높은 수가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간호관리료를 현실화하는 방안이나 간병서비스를 보험급여화 해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드는 등의 대안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정책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나친 수익성 경쟁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여야 수익이 나는 구조가 원인인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정달현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의료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싸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와 처치, 또 대규모 병상 확충에 재정의 대부분이 사용되면서, 실제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간호/간병 인력은 늘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몰리고 있다. 진정한 의료의 질은 값비싼 의료 기계가 아닌, 잘 훈련된 의료 인력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 :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병상의 수에서부터 의료기기와 인력에 이르기까지 한국 의료의 인프라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의 의료 자원을 둘러싼 국가의 정책 결정이나 개별 의료기관의 선택이 의료적 요인보다는 영리적 요인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성기병상과 고가 의료기기가 지나치게 많은 반면, 간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 또 수도권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지방 중소 병원들은 운영조차 어려운 현실 등이 모두 한국 의료가 오랜 세월 수익성을 좇아 발전해온 결과라 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환자와 그 가족들, 또 외국의 의료 현실을 경험해본 분들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많은 기대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의료#OECD보건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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