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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의병을 연구해 오고 있는 이태룡 박사.
 오랫동안 의병을 연구해 오고 있는 이태룡 박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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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말 의병을 연구해온 이태룡(55) 박사(문학박사, 거제옥포고 교사, 경상대 겸임교수)가 서훈이 잘못된 의병장에 대해 재심사를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현재 국가에서 서훈한 의병(장)은 2000여 명인데, 그는 "의병 숫자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면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의병에 대한 포상이 빨리 마무리되어야 하고, 남북한에서 조사하고 정리한 의병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박사는 29일 저녁 성공회 주교좌대성당에서 열린 '열린평화포럼'에서 한 강연과 언론에 배포한 "한말 의병의 재평가와 부왜인의 망동"이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전기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제는 갑오왜란 때부터 주둔하던 일본군을 동원하고, 조선 관군의 도움을 받아 의병을 살육했다"며 "그러나 을사늑약 이후 국권회복을 꾀하고자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국왕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부왜인의 협박으로 퇴위되자 의병투쟁은 격렬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제는 한국 군대를 해산한 1907년 8월부터 이듬해까지 일본군 보병 8개 사단에서 선발된 8개 연대와 기병 1개 연대를 포함한 6개의 특수부대까지 파견했으며, 1909년에는 보병 2개 연대를 증파하니, 화승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병들은 대적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고 나섰다"면서 "민족의 생존을 건 끈질긴 투쟁이었다"고 소개했다.

"의병 숫자는 수십만 명에 이를 듯"

갖가지 의병투쟁 사례를 설명한 그는 "당시 의병에 대한 기록은 의병장들이 남긴 창의록이나 실록 등을 통하여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고, 1907년 8월 19일부터 1910년 12월 28일까지의 일본 경찰이 관여했던 의병 살육 기록인<폭도에 관한 편책>에 나타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병 숫자는 약 15만 명에 이르는데, 일본군 단독으로 행해진 작전까지 합하면 의병수가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서훈이 추서된 의병은 채 2000명이 되지 않는 실정인데, 이는 한말 후기 호남의병 중에 순국한 의병수보다 오히려 적은 숫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의병에 대한 포상이 빨리 마무리되어야 하고, 나아가 남북한에서 조사하고 정리한 의병 자료를 공유하는 것도 요망된다"고 제시했다.

이태룡 박사는 "그동안 정부에서 선정한 유공자 중에 부왜인(附倭人)이 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중에도 부왜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며 "일찍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쓴 려증동·박성수·임종국 선생도 수차례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한 바 있었지만 잘못 포상된 상훈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해명한 적도 없고, 재심사하여 취소시킨 경우는 1999년 서춘씨 등 5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하락.문태서.민긍호 등 훈격 높여야

서훈 재심자도 요구했다. 그는 "한말 의병에 대한 초창기 서훈은 대부분 주요 의병장에 관한 것이었는데, 심사위원 중 부적격자가 많았고,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검토 기간마저 짧아서 오류가 많았기에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는 주요 의병장의 공적에 상응하는 재심사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으로 서훈된 김하락․문태서․민긍호․민종식․유인석․이은찬․이인영․이진용․전해산․정환직․홍범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으로 서훈한 기삼연․노응규․정인국․황준성 의병장 등 15명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훈격을 높여야 한다고 그는 제시했다.

그는 재작년 8월 의병․의병장 828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상훈을 신청하면서 아울러 최익현 등 90여 명의 서훈을 재심사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었다. 이번에는 아직까지 상훈 심사를 하지 않은 823명에 대하여 서둘러 심사해 줄 것과 98명의 의병장에 대한 재심사를 거듭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왜인'을 '원흉(元兇) 부왜인'와 '매국노 부왜인' '선봉(先鋒) 부왜인'으로 분류한 그는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부왜인 인명사전 편찬에 있어 경술국치 직전 부왜인의 행적부터 조사할 것이 아니라, 한말 '원흉 부왜인' 우두머리 김옥균부터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병#이태룡 박사#국가보훈처#열린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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