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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로 땅은 촉촉하고 산과 들은 푸른빛으로 뒤덮여 꽃들이 피고 지는 5월, 가정의 달이 되었다.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시다며 아침식사를 거르신다. 자기의 소유라곤 보잘것없는 옷가지 몇 개 밖에 남지 않으신 어머니, 평생 사시던 자신의 집을 뒤로 하고 나의 승용차 뒷좌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낯선 도시로 오신지 벌써 9개월째가 되었다. 어머니 것이라고 이름이 지어지고 어머니의 손때가 깊이깊이 스며들었던 세간들도 어머니처럼 늙고 병들어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이 녹슬고 삭아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어머니이시지만 자식과 가정을 위하여 가난하고 만만치 않은 세상을 악착같이 사신분인데 이제 자기몸 하나 간수하기도 버거워 아들에게 기대셨지만 때로는 아들의 눈치를 보시고, 며느리가 나름대로 잘 해드리고 있지만 더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는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온 나에게 변함없이 밥은 먹었느냐고 물으신다.

 

어제(4월 30일)는 공군에 입대하여 청주 17비행단에서 군복무를 하는 둘째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주일 전에 전화를 하여 다음 주 토요일에 외박나간다고 했던 녀석인데 외박이 취소되었다고 말한다.

 

"너 무슨 일었었냐! 사고 쳤니!"

 

다그쳐 묻는 나에게 녀석은 그간 사정을 이야기한다. 둘째 녀석은 정비대대 행정반에서 근무하는데 지난번 휴가 때에는 자기가 사무실에서 왕고가 되었다며 자랑을 하였다. 이제 제대 5개월 남은 고참이라고 머리를 조금 길렀다가 헌병대에 걸렸고 이틀 동안 군기교육대 입소하여 교육을 받았단다. 자기보다 늦게 입대한 하사에 훈련병처럼 목이 쉬도록 큰소리로 관등성명을 대며 오리걸음, 완전군장에 연병장 돌기 등 호되게 기압을 받고, 1개월 간 외출 과 외박이 금지된 것이다. 요즈음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민감해진 때에 녀석이 본보기로 걸려든 것이다.

 

행정반에서는 쫓겨나지 않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외박을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잘됐다 자식아! 그래, 군기교육대나 다니냐! 정신 차려 임마!"

 

전화를 끊고, 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5월 1일에 외박을 나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을 테인데, 모든 일이 틀어져 버려 마음이 아플 녀석을 생각하니 속이 상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하여 녀석이 더 강해지고 성숙해 질것이라는 기대로 위로를 받는다. 

 

대구에서 중위로 군 복무 중인 큰 아들은 요즈음 전화도 없고, 한 달에 한번 집에 오던 휴가도 두 달 동안 오지 않고 있다. 의무복무로 하면 다음달 30일 전역인데, 군대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 다는 녀석을 살살 달래어 1년 복무연장을 시켰다. 작년에 장기복무신청에 통과되지 못하여, 내심 올해에 다시 신청하여 군대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녀석을 달랜 것이었다.

 

녀석도 전역을 앞두고 취직 할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1년 동안 군에 남아서 틈틈이 취업준비를 하겠다고 복무신청을 하였는데, 막상 동기들의 전역 명령서가 내려오고, 여단인사장교인 녀석이 하급부대에 전역 명령서를 내려 보내면서 자기의 이름만 빠져 있으니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동기들의 전역 통지서가 내려오던 날 전화를 한 나에게 녀석은 불평스러운 말을 하였다. 아빠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도 못가고, 군대생활도 1년 더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사립대학에 가서 원하는 전공을 하지 못한 것과 군대에 남아 있기를 바라고 복무연장을 시킨 아빠를 원망하는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아빠에게 불효를 했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였지만 이래저래 속이 상한지 휴가 때에도 집에 오지도 않고 전화도 없다. 

 

어느 분이 쓴 글을 읽어보니 이스라엘이 1878년 동안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세워진 비결은 첫째는 하나님의 도움이며, 둘째는 회당과 가정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나라가 망한 후에 '하나님! 다 파괴되었어도 가정은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며, 이 지구상에서 가장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들이 가정을 건강하게 지켜왔기 때문에 그 많은 고난 속에서도 민족을 지키고 없어진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는 비결은 안식일로,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이면 모든 식구들이 모여 '합달라'라는 예식을 거하는데, 온 가족 전체가 참석하고, 만일 아들이 군대에 갔거나 불가피한 일로 참석하지 못 하면 그 자리에 음식을 차려 빈자리로 남겨놓고, 온 식구들이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며 가장이 기도를 하고 찬송하며 성경을 읽고 가정교육을 시작하는데, 결코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단점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장점을 길러준다고 한다.

 

그리고 시편 128편을 같이 낭독한단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2003년 청주북지방에서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 광경을 직접 내 눈으로 보았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 예루살렘 한 호텔에 짐을 풀고 식사하기 위하여 식당으로 갔는데 호텔과 식당이 유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규모가 꽤 컸다.

 

그날 그 식당 중앙에 빵떡모자인 카파를 쓰고 식탁에 둘러 앉아 있는 가족을 보았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도 그들을 유심히 보았는데, 곱게 늙으신 할머니와 한분과 중년의 아들 부부, 그리고 열 살 전후의 아이들 다섯이 둘러 앉아 있었다. 그 중에 큰 아들 같은 남자가 가운데 앉아서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가족은 그곳에서 안식일 예식인 합달라를 거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외국인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진진하게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 힘이 유대인의 가정을 지키고, 민족을 지켜왔고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어제(4월 30일) 금요일 저녁 늦은 기도회를 하면서 찬송과 설교를 마친 후 내일부터 가정의 달이 시작되니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나라가 건강하니 우리 가정을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모두 의자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하였다. 기도하는 중 성도들과 더 친밀하게 기도하고 싶은 미음이 들어, 무릎을 꿇고 허리 굽힌 성도들의 등을 가슴에 안듯이 손을 얻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 가정에 은혜를 주셔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남편과 아내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들의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야곱과 다윗과 같이 고난을 이기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의 삶, 어디를 가든지 이기는 자의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목이 터지도록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입으로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였지만 실상은 군대에 가있는 나의 두 아들, 지치고 힘들어 하는 두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로 살게 하시고 어디를 가든지 이기는 자의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하는 몸부림치는 나의 기도였다.

 

나의 아들들아! 따뜻한 5월이 되었구나!

너희들의 마음도 따듯하고 희망이 있기를 기도한다.

나무들마다 연녹색 잎을 내고,

연약하지만 힘차게 세상을 향하여 가지를 뻗는구나!

너희들도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여라.

오늘은 너희들이 더욱 보고 싶구나!

 

큰 아들이 아빠인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어도 다음 주 토요일(5월 8일)은 어버이 날이니 꽃 한 송이 들고 찾아오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라도 한 통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정#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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