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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발레단 이동훈 발레리노
 국립발레단 이동훈 발레리노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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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B-boy) 출신이란 이색 경력을 가진 국립발레단의 이동훈(24) 발레리노. 그는 2008년 전막 발레 <호두까기인형> 주연, 2009년 <왕자호동> <신데렐라> 주연을 도맡은 한국 발레의 신성이다. 발레 올림픽으로 불리는 2009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는 김리회와 짝을 맞춰 은메달을 획득해 한국 발레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런 이동훈 발레리노가 2010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무용수가 아닌, 해설가로 국립발레단의 전막 해설발레 <코펠리아>(4.27~5.5.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것이다. 스타 무용수의 해설 도전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 지난 4월 21일 이동훈 발레리노를 인터뷰하며 그 특별한 사연을 들어보았다.

이동훈 발레리노의 새로운 도전

 이동훈 발레리노
 이동훈 발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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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이동훈 발레리노는 <코펠리아> 해설 연습을 하느라 바빴다. 대사가 없는 발레공연을 했던 그였기에 해설 역이 쉽지 않은 듯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펠리아>가 어린이들을 위한 발레 공연이기 때문에 걱정이 돼요. 제가 말이 느리고 발음이 좋지 않거든요. (웃음) 게다가 무대에서 춤만 췄었지 말은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동훈의 표정에선 걱정이나 긴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자연스레 맞이하는 느낌이다. 그가 말한다.

"제가 갑작스럽게 해설을 맡게 됐어요. 발레단 사람들이 '너 큰일났다 어떡할래?'라고 장난 식으로 이야기하곤 해요. 하지만 해설은 인지도 있는 무용수들이 많이 하기 때문에 기회가 제게 온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어요. 제가 그런 인지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하나. 왜 그는 갑작스럽게 해설을 하게 된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물으니 이동훈 발레리노가 답한다.

"사실 그동안 스트레스 골절 부상이 길어져서 쉬어야 했어요. 무대에 서지 못했기에 고민도 깊어졌죠. 그런데 그런중에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님이 <코펠리아> 해설을 제의하셨어요. 처음에는 해설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해설자 이동훈의 역할은 단지 해설에 그치지 않고 극 중, 코펠리우스 박사의 젊은 시절 역할도 함께 한다. 그렇기에 준비과정에서 많은 연습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기에 이동훈은 나름의 비책을 준비 중이다. 살짝 공개하자면 이렇다.

"비책은, 음 이쯤이면 관객들이 졸릴 거다. 미리 예상해서 한두 가지 발레동작을 알려주는 거예요. (손짓을 하며) 자 이렇게요. 그 다음, 질문을 유도하고… 음 마술도 쓸 줄 아는 설정이기 때문에, 마술 하는 시늉도 하고요.(웃음) 재밌게 해야죠."

 '코펠리아'에서 해설 리허설중인 이동훈 발레리노
 '코펠리아'에서 해설 리허설중인 이동훈 발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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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5월 5일)까지 계속되는 <코펠리아>. 해설 연습에 여념 없는 이동훈 발레리노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얼른 몸이 회복되어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의 심장엔 여전히 '2009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의 희열이 남아있다.

"모스크바 콩쿠르는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발레 올림픽이라고 불려요. 저는 (김)리회씨랑 출전했는데 대회장에 도착해서 바닥을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죠. 무대 바닥이 기울어져 있었거든요. 한국의 평평한 바닥이랑은 너무 달랐죠. 파트너인 리회는 적응에 애를 먹어 처음에는 1회전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래서 도저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괜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웃음)"

발레에 대한 애착을 가슴 가득 품고 있는 러시아 관객들. 하지만 이동훈은 그들의 기에 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무대든 제대로 연기를 펼치지 못하면 관객들은 자신을 이해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오기 덕분일까. 그는 파트너인 김리회와 함께 열연을 펼치며 은메달을 따냈다.

"무대에 적응할 시간도 없었고 모든 안내가 러시아 말로 나오는 텃세도 있었어요. 저희는 언어도 몰라 출전 순서인데도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었죠. 하지만 기죽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1, 2라운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후회없는 연기를 펼치며 은상을 수상하게 되었죠."

갈라쇼에서 이동훈, 김리회는 발레에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힙합 춤을 선보여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B-boy'였던 그였기에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무대였다.

모스크바 그리고 페름. 돌이켜보면 이동훈은 유독 러시아에서 겪은 일화가 많다. 2006 페름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는 강도로 돌변한 택시 기사에게 권총으로 위협을 받았고, 모스크바 콩쿠르 때는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갑작스런 운전자의 승차 거부로 1시간30분을 헤메다 숙소로 돌와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그는 이런 황당한 사건에 개의치 않고 최고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부상을 딛고 새로운 무대를 꿈꾸다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이동훈 발레리노, 연극 <코펠리아> 해설 준비로 바쁜날들을 보내고 있다.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이동훈 발레리노, 연극 <코펠리아> 해설 준비로 바쁜날들을 보내고 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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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 은상, <신데렐라>의 주역. 2009년은 이동훈에게 있어 최고의 한 해였다. 부상이란 큰 시련이 닥쳤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데렐라 공연 중, 스트레스 골절 부상 진단을 받았어요. 독감 등이 겹쳐서 몸이 안 좋았죠. <신데렐라> 공연도 중간에 배역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서 가슴앓이도 많이 했어요.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이 그러지 못하니까 멍해지더라고요. 한동안 무용을 못하고 푹 쉬어야 했어요."

무용가들에게 치명적인 부상, 그렇기에 슬럼프가 찾아올 만도 했다. 하지만 이동훈 발레리노는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를 긍정의 힘으로 극복해나갔다.

"문득 언제 이렇게 쉬어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동안 스케줄이 빡빡해서 못했던 걸 해보자 생각했죠. 그래서 친구랑 전국 여행도 다니고 또 수영, 필라테스도 그리고 영어학원도 다니고 그랬죠… 다시 무대에 설 때 발전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도록요."

부상 중에 발레 팬들에게 잊혀진 무용가가 될까 걱정했다는 이동훈 발레리노. 하지만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의 응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절 알아보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팬이겠죠?(웃음) 기억에 남는 일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교복 입은 남자 학생이 MP3를 꽂은 채 오더니 '이동훈 발레리노시죠? 공연 잘봤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남학생이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했죠. 또 동대문에 옷 사러 갔을 때는 주인분이 절 알아보시고는 다른 옷도 덤으로 챙겨주셨고요. 그리고 부상을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작은 일들이 고마웠고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정을 강하게 만들었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과 자신을 잊지 않은 팬들, 이동훈 발레리노는 다시금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너무 쉬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그는 자신의 무용가로서의 목표를 제시한다.

"얼른 무대에 서고 싶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안무가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에요. 특히 롤랑쁘띠의 세작품은 개인적인 좋아하는 작품이고, 생존한 안무가가 연출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뜨거운 목표를 안은 이동훈 발레리노는 다시금 한발 한발 나가고 있다. <코펠리아>의 해설은 부상을 딛는 그의 첫 출발이자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동훈, 그의 의미있는 발걸음이 주목된다.


#이동훈 발레리노#코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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