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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속 섬마을 회룡포
 육지속 섬마을 회룡포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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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열여섯 번 답사하면서 강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낙동강을 바라보면 그저 마음이 찡해요. 저희들은 답사를 하면서 구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그저 몸으로 느끼라는 뜻입니다."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 김영태씨가 순례단을 안내하며 하는 말이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얼굴에는 평안한 미소와 겸손이 묻어났다. 그의 말투 속에는 분노나 고함이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의 꽉 다문 입속에 들어있는 거룩한 분노를. 사람이 정말 슬프면 울지 않고 웃는다는 걸. 정말 좋으면 웃어야 할 때 운다는 걸.   

서울에서 온 수유너머N, 생명평화모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 한국종합예술대학생들로 구성된 낙동강 순례단 60명 중 일부는 청룡사에서 오리섬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헤어졌다. 일행은 김영태씨가 추천한 삼강 주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안동에서 내려오는 낙동강, 영주에서 예천을 거쳐 내려오는 내성천, 충청도에서 문경을 거쳐 내려오는 금천의 세 물줄기가 모두 만나 더 넓은 물줄기가 되는 이곳을 삼강이라 부른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 주막. 낙동강, 내성천, 금천의 세 강이 모였다 하여 삼강이라 불렸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 주막. 낙동강, 내성천, 금천의 세 강이 모였다 하여 삼강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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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인 '주모 한 상 주이소'의 술과 안주내용이다. 배추전과 도토리 묵, 김치와 두부, 막걸리가 전부다
 메뉴인 '주모 한 상 주이소'의 술과 안주내용이다. 배추전과 도토리 묵, 김치와 두부, 막걸리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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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얼마 전까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주막이 있었다. 보부상과 수많은 행인들이 강을 건너기 전 이 주막에 모여 목을 축였다. 조그마한 초가집 뒤에는 몇백년은 족히 됨직한 커다란 고목에 금줄이 쳐져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은 옛날을 그리워하며 배추전과 도토리 묵, 김치와 두부가 전부인 '주모 한상 주이소'를 주문한다. '주모 한상 주이소'는 이 주막의 메뉴로 1만2000원이다.

드디어 그 유명한 회룡포를 보기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장안사를 지나 비룡산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 섰다. 정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길가 나무에 걸린 옛 선인들의 시들이 왜 여기 걸려있는가가 이해된다.  

마을을 '옴'자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간 강물에 감탄한다. 단단한 한쪽 사면을 등지고 반대쪽으로 살며시 돌아선 강물이 눈에 시리다. 강변둔치에 노랗게 물든 유채꽃과 아이들이 풍경이 된다.

전망대를 내려와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뽕뽕 다리를 건너 회룡포 백사장으로 간다. 아이들은 운동화를 벗어 물가에 앉아 뱃놀이를 하고 물장난을 친다. 깔깔대는 아이들과 운동화를 벗어 뱃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나를 고향인 섬진강변 어릴 적으로 되돌린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동네친구들은 섬진강가로 달렸다. 납작한 돌을 강물에 던져 누가 더 물보라를 치며 멀리가나 내기를 했다. 꼴망태가득 풀을 베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강가에서 수영을 했다. 놀다가 풀  한 망태를 못채워 혼나기 일쑤였다. 

순례단원들이 회룡포 주변 내성천을 따라 걷고 있다. "아! 시원해!"를 연발하던 이들이 " 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없어지면 어떡해"하며 걱정이다. 배낭에는 "낙동강 그대로 흐르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순례단원들이 회룡포 주변 내성천을 따라 걷고 있다. "아! 시원해!"를 연발하던 이들이 " 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없어지면 어떡해"하며 걱정이다. 배낭에는 "낙동강 그대로 흐르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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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을 걸으면 갑자기 발밑이 간지럽다. 그렇다. 팔뚝만한 모래무지가 발밑에 밟혔다. 놓칠세라 힘주고 있다가 그대로 앉아 발밑에 손을 넣어 팔뚝만한 고기를 잡는다. 눈을 뜨고 아무리 헤엄쳐도 눈병마저 나지 않을 정도로 맑았던 강.

모래사장을 달리며 축구하다 배고프면 강변 감자밭으로 기어가 감자서리를 하곤 했다. 강변에는 홍수 때 상류에서 떠내려 온 마른 물풀이며 나무 등걸이 넘쳤다. 검게 탄 감자 껍질을 벗겨 맛있게 먹고 난 손바닥은 이내 친구 얼굴에 화장을 했다. 그만큼 강변 백사장은 아이들 놀이터였고 새와 개미귀신의 집이었다.

갑자기 다리를 절룩거리며 끼룩끼룩 소리를 내고 도망가는 물새 근처엔 물새알이나 새끼가 있다. 물새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연막전술을 치기 때문이다. 홍수가 나면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개구리참외나 수박은 수영선수가 되어버린 친구들에게는 좋은 먹이다.  햇빛에 화상을 입어 몇 번씩이나 껍질이 벗겨져 쓰라렸던 친구들. 개학하면 흑인과 비슷하게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는다. 이유는 묻지도 아니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 동네 쪽과 건너편 강가에 세워진 뱃사공 쉼터. 장날 저녁 무렵이면 술 취한 취객이 가끔씩 "어이! 사공! 어이! 사공!"하던 모습은 추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낙동강에 보를 쌓는다고 한다. 보를 쌓으면 낙동강변에 하얗게 쌓였던 모래가 물속에 잠긴다. 회룡포 모래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래가 없는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라 호수다. 노래속에 나오는 독일 라인강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을 가보라. 회룡포를 굽이쳐 돌아가는 낙동강, 지금도 강변을 끼고 꽥꽥소리를 내며 기차가 달리는 섬진강처럼 그렇게 예쁜가.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하상에 퇴적되어 있는 오염물질을 든다. 오염물질 때문에 하천수질이 악화되므로 하천 수질개선을 위해 퇴적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준설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1990년과 1993년에, 국립환경연구원에서 1998년에, 환경관리공단에서 1999년에, 팔당호 수질개선을 위한 준설을 검토했으나 수질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다.  

준설은 준설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오염, 재퇴적 가능성, 준설토 처리의 어려움, 과도한 비용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커 효율성이 없다는 게 학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2007년 안동댐 퇴사량 조사(3차)보고서에 따르면, 안동댐의 퇴사량이 109㎥/㎢/yr이다. 안동댐 퇴사량을 감안하면 109㎥/㎢/yr x 23,817㎢ x 15년 = 0.39억㎥이 된다. 따라서 4.4억㎥의 퇴사량은 낙동강 유역에서 약 150년간 유출되는 모래의 양에 해당한다(대한하천학회 자료집).

우리나라 준설선을 다 확보하여 낙동강에 투입해도 이만한 물량을 2년 내에 준설하기도 어렵거니와 준설한 모래를 쌓아둘 야적장을 확보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규모 준설로 인한 교량 기초의 안전성 문제도 별도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낙동강에 세워진 90개 다리 중 80개의 다리에 교각보강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서애 유성룡이 노후에 학문을 닦기 위해 지었다는 옥연정사. 바로 아래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하회마을이 있다
 서애 유성룡이 노후에 학문을 닦기 위해 지었다는 옥연정사. 바로 아래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하회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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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정사의 가지런한 장작더미와 짚으로 만든 편지꽃이가 이채롭다. 군불을 때고 있는 촌부에게 금방이라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올것만 같다
 옥연정사의 가지런한 장작더미와 짚으로 만든 편지꽃이가 이채롭다. 군불을 때고 있는 촌부에게 금방이라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올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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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원들이 신발을 벗고 내성천 강변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 시원해"를 연발하며 "이렇게 좋은 모래사장이 없어지면 어떡해!"하며 걱정이다. 성급한 아이가 아예 옷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간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어른들이 동심이 된다. 너와 내가 없다. 사람도 자연도 경계가 없어진 물속에서 하나가 된다. 광주 선덕사 선재문화원 열린강좌에서 도법스님이 한 말씀이다(2008.4.15).

"현재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20세기의 관념에 묶여있다. 20세기가 경제 중심의 사회발전을 모색하고 국가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개발과 성장에 가치의 중심을 뒀다면, 21세기는 생태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국가의 틀을 벗어나 지구촌의 사고방식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에 가치의 중심을 둬야 한다."

스님은 강에 대한 무수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강을 생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얼마나 되느냐? 강 자체의 생명보다 인간적 사고의 한계 속에서 강을 규정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것"을 주문했다.

겸암정사에서 옥연정사로 가는 절벽길. 십여 미터 아래 절벽길이 아찔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길이 있었던가?
 겸암정사에서 옥연정사로 가는 절벽길. 십여 미터 아래 절벽길이 아찔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길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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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정사에서 옥연정사로 가는 길. 절벽을 따라 걸었다. 강에서 십여 미터 높이에 걸린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부스러지는 바위를 한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절벽길을 걷는다. 강 건너편 하회마을은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조금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었던가?

서애 유성룡이 노후에 학문을 닦기 위해 지었다는 옥연정사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황혼과 연기, 그리고 백사장을 오가는 나룻배와 사공. 한폭의 그림이다. 이  그림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순례자들이 사진 찍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취직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대학생들. 취직에 자유로운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 찍지 마라. 아니 찍히지 말라.

파놉티콘(panopticon)은 감시자가 없어도 죄수들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하는 감옥을 말한다. 파놉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라는 뜻의 'opticon'을 결합한 말로 '모두가 본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1791년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처음 설계하였지만, 이러한 감시체계는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확대된 현상이다.

옥연정사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옥연정사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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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내 조국, 내 땅을, 내 돈으로 돌아보고 느껴본다는 데 몸조심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순치되어가는 세태에 그래도 순례단에 나선 젊은이들이 있어 반갑다. 누가 옳았는지는 후세가 평가할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았고 후손에게 물려줄 땅이다. 

괴테는 '잠언과 성찰'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보다도 오류를 인식하는 편이 훨씬 쉽다. 오류는 표면에 나타나 있으므로 쉽게 정리할 수 있지만, 진리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으므로 그것을 탐구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역설했다.

가자! 보자! 그리고 느끼자! 낙동강의 아픔을. 22조의 예산이 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더라도 오류는 금방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답사는 지난 2일 다녀왔습니다.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낙동강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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