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18국립묘지 입구에 심어진 이팝나무.
5.18국립묘지 입구에 심어진 이팝나무. ⓒ 이경모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5월 영령들을 추모하며 자신의 소망을 적은 '추모리본'이 매달려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5월 영령들을 추모하며 자신의 소망을 적은 '추모리본'이 매달려 있다. ⓒ 이경모

바람이 불면서 너울거리는 이팝나무 하얀 꽃은 백상여의 행렬이고, 느티나무에 매달린 빨강 노랑 흰색 '추모 리본'은 만장이다.  5월 17일 5.18국립묘지 앞은 그랬다.

소주 한 병과 마른안주를 준비해서 고향 친구하고 5.18묘역에 갔다. 5.18 30주년을 하루 앞두고 찾아온 참배객들과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묘역 앞은 부산하다.

친구가 5.18묘역에 묻힌 지는 10년이 되어간다. 묘지 앞 상석(床石)에 생전에 좋아했던 술을 따라 놓고 담배 한 개도 태워 놓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친구.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겼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등 부상 후유증과 정신적 충격은 친구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결국 다른 병이 몸속 깊이 파고들어 2001년 12월 4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친구의 불행한 삶이 시작된 것은 30년 전 5월이다. 1980년 5월 26일쯤이었다. 당시 나이 20세. 친구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직했다.

착하고 부지런한 친구는 대학교에 진학한 또래 친구가 부러웠지만 직장에서 열심히 자동차 정비기술도 배우며 미래를 설계했다. 5.18민주화 운동은 이런 친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5.18민주화운동이 거세지면서 친구 직장은 휴업을 했다. 시내와 거리가 있는 곳에서 자취하던 친구는 며칠째 집에 있다 보니 답답했고 그래서 집을 나서 전남도청 앞에 갔다. 거기서 친구는 싸늘한 주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집은 광주교도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날 오후 3시쯤 교도소 근처 도로를 걷고 있는데, 광주 외곽인 광주교도소 근처에 있던 계엄군이 친구를 불러 세웠다. 그 때 친구는 겁이 나서 그냥 집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친구가 뛰기 시작하자 곧바로 등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친구는 혼신을 다해 뛰었지만 두 번째 총알은 피하지 못했다. 총알은 친구 등을 관통했고 친구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잠시 후에  두 명의 군인이 왔다. 총을 쏜 군인은 친구 머리에 총부리를 겨냥하면서 "이런 새끼는 죽여야 합니다" 라며 다시 총을 겨누었단다. 그런 그를 함께 온 상급자가 말렸고 그 군인은 배 밖으로 나온 창자 등을 배 안으로 집어넣고는 친구 속옷으로 그 부위를 묶었다고 한다.

얼마 후 군인들이 근처 마을에서 가져 온 손수레에 실려 친구는 광주교도소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헬기에 타면서부터 기억이 없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얘기다. 살아남은 친구 등 뒤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친구는 민주화 구호 한 번 외치지 않고 계엄군에게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다. 갓 스무 살인 민간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총을 쏘고 다시 죽이려고 총을 겨누는 그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과 일반 참배객들이 참배를 끝내고 '민주의 문'쪽으로 걸어 오고 있다.
학생들과 일반 참배객들이 참배를 끝내고 '민주의 문'쪽으로 걸어 오고 있다. ⓒ 이경모

함께 간 친구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얘기하고 있는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친구 아내가 묘역을 찾은 것이다. 몇 년째 친구들하고 연락이 안 되어 참 궁금했는데 여기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연히 만난 것이다.

남편 없이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우며 시리고 아릿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아내다. 살아 있을 때 건강하지 못한 남편을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는, 남편이 훌쩍 떠나버리자 원망도 많이 했다는, 친구 아내는 10년이라는 어려웠던 세월을 더듬으며 늘 찾았던 하늘을 또 찾는다.

 상석(床石) 위에 봉사자들이 준 국화 두 송이와 술 안주 담배를 놓았다.
상석(床石) 위에 봉사자들이 준 국화 두 송이와 술 안주 담배를 놓았다. ⓒ 이경모

'5.18민주화운동'은 올해로 30주년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으로도 민주주의는 미완성이고 '5.18민주화운동' 뒤에 가려져 있는 가슴 아픈 상처들이  많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친구묘소 앞에서 일어나 걸어오는데 묘역 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님을 위한 행진 곡'이 들려온다. 오늘은 그 '님'이 친구인 것 같다.


#이경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