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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속인터넷
초고속인터넷 ⓒ 오마이뉴스 그래픽

"100Mbps 초고속인터넷 이용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는 1/3에 불과했다."

지난 18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아래 방통위)는 '2009년 통신서비스 품질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이용자가 체감하는 '전 구간 속도' 측정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책임 소재' 불분명한 '전 구간 속도'로 품질 평가?

특히 KT, SK브로드밴드, 통합LG텔레콤 등 초고속인터넷 3사의 자사망과 연동망 속도는 80~90Mbps로 비교적 양호했던 반면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에 접속했을 때 나타나는 전 구간 속도는 10~30Mbps에 그쳐 충격을 줬다. 방통위는 한 발 더 나아가 전 구간 다운로드 속도 10Mbps를 기준으로 초고속인터넷 품질 양호 여부를 판정했고, 그 결과 씨앤엠과 CJ헬로비전 등 케이블업체가 된서리를 맞았다.  

발표 뒤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통신 사업자들은 발끈했다. 지난 2년간 이용약관상 최저보장속도 기준인 자사망 속도만 평가해 오다 사전 예고도 없이 전 구간 속도를 측정하고 품질 평가 기준으로까지 삼았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체 고위 임원은 "사업자도 어쩔 수 없는 '전 구간 속도'로 품질을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자사망 속도'는 이용자 PC나 휴대폰 등 단말기에서 자사망 끝에 있는 라우터(공유기)까지 사업자가 직접 책임지는 구간만 측정하는 반면, '전 구간 속도'는 자사망과 연동망(사업자망-타사업자망 간)을 거쳐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있는 포털 웹 서버에 직접 접속할 때 속도를 잰 것이다.

따라서 '전 구간 속도'는 이용자가 체감하는 속도에 가깝지만 책임 소재가 타 사업자와 포털 사업자까지 분산돼 사업자 간 품질 평가 기준으로 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한계는 18일 발표 당시 방통위에서도 인정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초고속인터넷 개념도. '자사망 속도'는 이용자 PC에서 자사망 끝에 있는 라우터(공유기)까지 속도이고, '전 구간 속도'는 자사망과 연동망(사업자망-타사업자망 간)을 거쳐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있는 포털 웹 서버에 직접 접속할 때 속도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초고속인터넷 개념도. '자사망 속도'는 이용자 PC에서 자사망 끝에 있는 라우터(공유기)까지 속도이고, '전 구간 속도'는 자사망과 연동망(사업자망-타사업자망 간)을 거쳐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있는 포털 웹 서버에 직접 접속할 때 속도이다. ⓒ 방송통신위 제공

사업자당 1명이 평가? 전 구간 '졸속 측정' 논란

뿐만 아니라 초고속인터넷 자사망 속도의 경우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전국 5720명 평가단을 모집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에 걸쳐 1가구당 최소 100회 이상(총 63만1015회) 측정한 반면, 전 구간 속도는 지난 5월 초 사업자당 단 1명의 평가단이 서울 지역에서만 180회 측정한 값을 단순 대입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그 시점과 방식을 놓고 공정성과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즉, 서울에서 한 평가자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3개 포털에 접속해 100MB 파일을 전송받는 데 걸린 '전 구간 소요시간'을 측정한 뒤, 해당 지역 '자사망 소요 시간'을 빼는 방식으로 연동망과 포털 웹서버 구간 소요 시간을 구했다. 이를 다시 전국 각 지역별 '자사망 소요 시간'에 더해 지역별 '전 구간 속도'를 계산한 것이다.   

이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업계 관계자는 "평가단이 사용하는 PC 사양이나 측정 당시 동시간대 주변 이용자 트래픽 등 전송 속도 측정값에 영향을 끼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데도 사업자별로 단 1명이 평가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 18일 방통위 발표 당시 전 구간 속도도 마치 각 지역별로 실측한 것처럼 공표한 것도 문제 삼았다. 

방통위 "자사망 속도는 허상... 이용자 체감 속도 높여야"

이에 통신서비스 품질평가 실무 책임자인 이재범 방통위 이용자보호과장은 24일 "한정된 시간과 예산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면서 "전 구간 소요 시간은 각 지역에서 직접 재지 않더라도 자사망 이후 추가되는 연동망과 웹서버 구간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 물리적 차이가 없기 때문에 평가 결과는 공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사업자들의 공정성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필요하면 올 여름이나 가을에 한 번 더 측정하자고 했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이 과장은 '자사망 속도'를 폄훼할 의도는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자사망 구간이 아무리 좋아도 망 전체로 보면 제 속도가 나지 않는 병목 구간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선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자사망에만 신경 써온 사업자들로 하여금 연동망 이후의 병목 구간에도 투자하게 만들어 이용자들이 느끼는 질적인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면 이번처럼 '암행어사'식의 전 구간 속도 평가가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이 과장은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속도를 재는 건 당연한 건데 사업자들에게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오히려 사업자들에게 로비를 당하거나 이번에 3G 평가에 대비해 불법 무선국을 설치했던 것처럼 불법 행위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변신? 품질 평가 무용론 차단 목적?

이재범 과장은 마지막으로 "전체 40억 원이란 예산이 들어간 사업인 만큼 통신 사업자들의 유불리를 떠나 이용자 관점에서 한 일"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방통위가 내세우는 의도와 달리 속내는 최근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통신서비스 품질 평가를 계속 유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0Mbps 이하 저속 상품의 경우 지난 2007년 평가 때 사업자 평균 9.1Mbps 이상이 나와 2008년부터 사업자 자율 평가로 돌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선 100Mbps 초고속 인터넷 상품 역시 케이블업체를 제외한 3사의 경우 최근 2년간 자사망 기준 90Mbps 수준을 유지하는 마당에 굳이 방통위가 발표 예정일을 넘겨가며 갑작스레 측정한 전 구간 속도를 품질 평가 기준으로 내세운 걸 석연치 않게 보고 있다. 

지금까지 방통위 품질 평가는 사업자들이 조사 과정에 깊이 관여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해온 시민단체에서 '방통위의 변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호의적이지 않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26일 "초고속인터넷은 이미 이용자들이 느끼는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굳이 수십 억 예산을 들여 계속 품질을 측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라면서 "차라리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많은 3G나 무선인터넷 품질 평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고속인터넷#품질평가#방송통신위원회#통신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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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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