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뉴욕의 요리사'라고 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인 뉴욕에서 요리사를 하려면 얼마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나의 이런 편견을 싹 없애버린 사람이 있다면 <키친 컨피덴셜>과 <쿡스 투어>의 저자인 앤서니 보뎅이 아닐까 싶다.

 

책 <쿡스 투어>는 앤서니 보뎅의 입담과 위트가 그대로 녹아 있는 '음식 여행기'다. 세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온갖 음식을 먹어 보고 그 지역의 문화를 체험한다니, 여행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솔깃할 만한 얘기다.

 

"이런 걸 써 보면 어떨까요? 내가 전 세계를 돌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는 거예요. 하루는 멋진 호텔에 묵었다가 다음날엔 남의 집 헛간에서 자는 식으로. 기괴하고, 이국적이고, 끝내 주는 요리를 맛보고 영화에서 본 걸 그대로 해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완벽한 한 끼'를 찾는 거예요. 어때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저자는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이런 제안을 던진다.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면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제로 담고 싶은 욕심은 이처럼 꽤 그럴 듯한 사업 계획을 만들어 냈다. 프랑스, 베트남, 스페인, 중국, 일본, 포르투갈, 멕시코 등 이만하면 음식으로 알려진 웬만한 나라는 다 돌아다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 공산당 창립자 호찌민이 요리사였다고?

 

책의 맨 처음에 소개되는 나라는 요리의 천국 프랑스다. 저자가 프랑스 이민자의 아들인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 바캉스를 프랑스에서 보내는 행운을 맛볼 수 있었다.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찾은 프랑스 남부 지방은 여전히 맛있는 푸아그라와 굴 요리로 저자의 미각을 사로잡는다.

 

그는 냉장고가 발명된 이후 오랫동안 미국인들이 포장에 든 고기만이 정상이라고 믿어왔다며 비판한다. 신선함과 다양한 맛을 잃어버린 냉장 포장육에 비해 프랑스 요리는 막 잡은 고기의 신선함과 각 부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러기에 환상적인 맛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책에는 요리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저자 특유의 입담은 독자로 하여금 킥킥거리며 웃게 만든다. 미국인인 그가 동양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겪은 독특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비행기, 지프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타고 긴 거리를 여행하는 만큼 여행의 묘미가 살아 있는 이야기도 아주 재미가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가는 장거리 비행만큼 비싸고 굴욕적인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한 줄에 열 명씩 나란히 끼어 앉아 멍하니 앞만 쳐다보면서, 다리는 비틀어 접고 목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은 채, 사료를 담은 수레가 자기 앞에 오기만을 애타게(실로 애타게!) 기다리는 군상들."

 

위트 있는 문장도 뛰어나지만 그걸 맛깔스럽게 번역한 것도 눈에 띈다. 전혀 번역체의 어색함 없이 재미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옮긴이에 대한 설명을 보니 '요리하기는 싫어하지만 요리책은 좋아하고, 마찬가지로 여행하기는 싫어하지만 여행책은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 여행과 요리가 섞인 이 책의 번역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책을 읽으며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베트남 공산당의 창립자인 호찌민의 전직이 요리사였다는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 창립 이전 그는 파리의 칼튼 호텔에서 일하며 위대한 인격자이자 요리사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호찌민은 그곳에서 소스 담당으로 일하다가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여객선의 요리사로 취직했고, 나중에는 보스턴의 파커하우스 호텔에서 파티시에로 일하기도 했다. 이 바쁜 와중에도 수없이 많은 가명을 써가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선언문을 작성하고 중국, 소련과 손을 합쳐 프랑스의 눈을 속여 살아남았다는 게 무척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가 가장 참을 수 없어하는 일본요리 두 가지

 

저자가 사막에서 전통 방식으로 양구이를 만드는 방법을 보기 위해 며칠에 걸쳐 아무도 없는 사막을 달리는 내용은 역시 요리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를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 진정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절대 그 머나먼 오지에 하잘것없는 새끼양 구이를 먹으러 가진 못하지 않을까?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모습도 참 재미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본 곳은 물론이고 들어본 곳까지 다 합친다고 해도, 도쿄만큼 요리사의 두뇌 속 쾌락 중추를 확실히 자극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말한다. 도쿄 요리는 단순함과 청결함, 신선함을 극한까지 추구한다. 그래서 더욱더 일본다운 느낌이 든다.

 

저자가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일본 요리 중에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낫토와 토란이다. 그 표현이 너무 우스운데, 그는 땅에서 나는 재료 중에서 그토록 끔찍한 것이 있을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벌레, 이구아나, 생뱀, 송충이 등을 통틀어 가장 끔찍했다고 하니 웃음이 날 지경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나라 중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생선 요리의 일본, 정통 요리의 프랑스도 좋지만, 베트남의 진한 커피와 맥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도 맛있는 국수와 볶음밥을 먹어보고 싶다. 저자가 느낀 것처럼 베트남의 선량한 사람들의 미소와 여인들의 아오자이의 매력에 푸욱 빠져 여행을 한다면 어떤 음식이 맛이 없으랴.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음식만큼 맛있는 것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물든 세상에 신선한 요리가 최고라고 말하는, 저자와 같은 요리사가 많길 바란다. 꾸준히 팔려 나가는 초콜릿 롤케이크, 한때 고기였다고 주장하는 바싹 구운 회색 원반을 진정 요리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진짜 요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컬처그라퍼(2010)


#요리서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