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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5월 28일)에 나긋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두어 차례 방문했던 이유리(가명)입니다. 오늘이나 내일, 혹 저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예약할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비교적 일찍 예약이 완료되는 편입니다. 그런데 두어 차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죄책감으로 고통 받을 것입니다. 부디 제가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세요."

"많은 분들이 방문하니까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겠어요. 첫 번째 방문은 저의 신랑과 함께였습니다. 신랑은 건축하고 저는 요가를 한다고 소개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저의 언니께 모티프원을 소개해드리기 위해 방문했었고, 세 번째 저의 와인 동호회 동료들과 함께 선생님을 뵈었었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쫓아가니 이제야 모든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갑자기 오실 계획을?"

"모티프원에만 가면 흐릿했던 것들이 선명해지곤 했어요. 이번에 남편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함께 갑자기 나들이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모티프원에서 화두에 답을 얻곤 하셨다는 말씀이 고마워서, 또한 이번에 오실 수 없게 된 것이 미안해서 저도 모르게 답변이 장황해졌습니다.

 

"결정이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면 그 대응되는 상황을 설정해서 두개를 병행해서 응시해보세요. 눈이 두개이므로 사물의 원근을 파악할 수 있고, 목표지점까지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듯이 한 가지 상황 만에 매달리기보다 다른 한 상황을 더 설정해서 함께 응시하면 답을 얻기가 수월할 수 있어요. 중력의 거리를 바꿔보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항상 직립보행을 함으로 언제나 다리부분이 지구중심에 더 가까우므로 중력을 더 받을 것입니다. 물구나무를 서보는 것이지요. 머리가 중력을 더 받을 수 있게 말이에요. 즉 생각을 뒤집어 보면 답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지난주 화요일(25일)이었습니다. 아주 한적한 날 며칠 전에 예약하신 여자 분이 오셨습니다. 낮 시간에 헤이리의 각 공간들을 방문하고 귀가 후 제게 조심스럽게 저녁시간의 스케줄을 물었습니다.

"저는 오후 10시쯤 귀가 할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해서……."

 

한데 그날 저는 한아름(가명)선생님께 드린 말과는 달리 오전 2시나 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 선생님은 편지 한통을 내놓으시며 저와 잠시 대화할 시간을 청했습니다. 그 편지는 저의 귀가를 기다리며 쓰신 것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시계가 정오가 되었습니다.

뭔가를 시작하기엔 솔직히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되새기며 용기 내어 봅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고 싶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방황하던 중 모티프원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치 철가루가 자석에 붙듯이 단번에 확 끌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모티프원 문을 나설 때 어제와 다른 변화된 저를 꿈꿔봅니다.

저도, 이안수 선생님도 파이팅!

감사합니다.

 

2010. 5. 24."

 

제가 편지읽기를 마치자 말을 꺼냈습니다.

 

"대구에서 왔습니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위해서……. 올해 40세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4년간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했습니다. 휴가차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운명처럼 한 일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결혼을 해서 일본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작년 그와 이혼하고 12월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많이 외로웠습니다. 한국이 그리운 향수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10년간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되돌아왔고 그동안 시간이 흘러 제 인생의 정오가 되어버렸습니다. 제 오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과거를 체계적으로 요약해 들려주신 다음 제가 답하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벅찬 숙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제 50cm앞에 앉아있는 그녀가 제게 넘긴 공을 다시 넘겨야했습니다. 우선 커피를 한 잔씩 내려서 다시 마주 앉았습니다.

 

아름씨는 '돌이켜보니 자신이 인생의 잘못된 길로 들어섰고 마침내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이미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녀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이다, 싶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이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이제 막 나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과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나비가 된 것입니다. 유년기의 알의 과정과, 초·중·고·대학시절 스스로를 연마하는 애벌레 과정을 거쳤으며, 일본에서의 10년 결혼생활로 인생이 어떻게 숙성되어야하는 지를 깨닫는 번데기 과정을 잘 마치고 마침내 화려한 비상을 앞둔 나비로 완전하고도 성공적으로 변태하신 겁니다. 이혼을 새로운 출발에 부담으로 느낀다면 오산입니다. 함께 마흔을 맞은 두 여자 분이 있다고 합시다. 한분은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고 막 이혼한 아름씨이고 다른 한 분은 결혼을 시도했지만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채로 마흔을 맞은 분입니다.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을 판단을 할 더욱 굳건한 불혹不惑의 지혜를 갖춘 분은 어느 분일까요? 지난 10년간의 결혼생활은 결혼을 해보지 않으면 당도하기 어려운 인생의 노정을 밟은 것입니다. 이제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사고하는 삶을 살아야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로 나아감에 있어서 선생님은 충분히 선생님이 원하는 주관적인 삶을 사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비의 삶을 준비하느라 보낸, 그 준비와 수련의 과정을 지나 축복의 시간을 맞은 것입니다."

 

"현재의 제 상황을 '축복'으로 여기진 않았었지만,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군요."

"선생님 상황을 꼭 축복이 아니라고 구태여 주장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녀는 한 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모티프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편지를 다시 받았습니다.

 

"항상 꿈꾸는 소년 같았던 선생님과 아직도 남은 여행가방속 모티프원의 내음은, 한참동안은 저를 여행의 여운과 추억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 같아요.

 

전 선생님 말씀대로, 출발점에서 이미 반은 왔네요.

나머지 반을 가기위해 한발짝 시작했습니다.

 

진정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저 잘했죠?

2010. 5. 28.

한아름 올림"

 

그녀와의 대화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인생의 오후를 살 구상에 대해 제게 점검받기를 원했습니다.

 

다행히 그녀가 꿈꾸는 분야는 제가 경험이 있는 분야여서 그녀의 의문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이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용기 있는 결심에 대해 '시작이 반'이므로 이미 반을 이루었음을 말씀드렸었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어떤 결심을 굳히고 실행하기까지의 검정과 의사결정과정이 시작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일단 올바른 시작을 했다면 목표의 반은 이룬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긍정적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의 부분을 취하면 됩니다.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라면, 이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함께 스팅됩니다.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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