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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악마와 함께한 남아공에서의 KBS <남자의 자격>팀.
붉은 악마와 함께한 남아공에서의 KBS <남자의 자격>팀. ⓒ 윤형빈 트위터

HD화면처럼 깔끔한 영상도 없었다. 몇 억씩 주고 섭외한 차범근 해설위원도 없었다. 대기업이 후원한 멋진 응원 장소나 요즘 대세인 아이돌 연예인 한 명 없었다. 캐스터의 정제된 상황 설명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현장감 넘치는 소리도 없었다.

대신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안에서 보이는 영상을 찍어 재송출한 거칠고도 투박한 그림들. 윙윙거리는 부부젤라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그들의 묻힌 함성만이 그곳에 있다. 다 합쳐도 총 7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것도 후원도 없이 사비를 털어 남아공으로 넘어간 단출한 구성의 붉은 악마가 다였다. 최신 응원곡과 멋진 응원도구가 아닌 한물간 응원구호만이 그들의 무기였다.

월드컵, 축제의 뒤쪽을 살핀 그들의 영상

또 조그마한 절에서 한물간 꼭짓점 댄스를 추며 조촐하게 승리를 염원하는 응원단이 있음을 보여주고 환한 웃음으로 응원하는 신부님, 한 시골마을 커다란 갈색 밥상 앞에서 응원하는 우리네 이웃이 있음을 보여준다. 장사를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조그만 DMB에 집중하는 청년을 비추고, 초라해 보이는 디지털 시계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놓고는 그나마도 <KBS 9시뉴스>와 중계석을 오가며 소리를 지르던 이용수 해설위원에 집중한다.

자신의 남편이 후반전에 교체로 등장하자 아이처럼 환호하던 김보민 아나운서가 있고 그것을 축하해주는 회사 동료의 모습이 나온다. 해설위원답지 않게 객관적인 상황 설명은 일단 제쳐두고 '한국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관중석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 뜀뛰기를 한 한준희 해설위원이 있다. 지하철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주유소에서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 거기엔 별로 대단한 게 없었다. 단독중계를 이끌어내는 SBS와 비교하면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거기엔 대신 이런 '답'이 하나 있었다. 우리에게 월드컵이란 것이 무엇인가. 대기업이 후원한 장소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 월드컵인가. 상업성의 논리에 휘둘려 한 방송사가 독점적으로 중계권을 위시한 모든 권한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월드컵 정신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조금 찾아주는 방송, 그것이 이번에 방송된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남자, 월드컵에 가다!'>였다.

축제의 '진정성'과 콘텐츠의 '빈약함'

 남아공에서의 <남자의 자격>이윤석과 윤형빈.
남아공에서의 <남자의 자격>이윤석과 윤형빈. ⓒ 윤형빈 daum '요즘'

당연한 얘기지만 이경규가 이끄는 월드컵 방송은 단연 시청률 필승카드다. 과거 MBC <일밤-이경규가 간다!>에서부터 이어진 이 카드는, <남자의 자격>이 월드컵 관련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자들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킬 만한 이유가 처음부터 담겨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방송 중계권을 SBS가 독점하면서부터 이 아이템은 난관에 부딪힌다.

현재 규정상 SBS가 아닌 방송에서의 월드컵 영상은 뉴스에서 2분 정도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잣대를 들이대자면 지난 13일 방송된 <남자의 자격>은 어찌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마 FIFA의 규정을 들먹이며, 향후 방영될 <남자의 자격> 방송 자체에 제동을 걸지도 모른다.

'온 국민이 함께한다!'는 구호를 내밀며 응원 장소까지 직접 정해주는 과도한 친절까지 베풀던 그들이, 정말 모두 함께 나눠야 할 결정적 상황에서는 그것을 지켜주고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그곳에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도록 안일하게 대처한 KBS와 MBC도 같이 비난의 대상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어쨌거나 이런 모순된 상황 속에서 방송된 <남자의 자격>의 월드컵 방송 내용은, 역시나 이전의 <이경규가 간다!>에서 보여준 것과는 달리 상당히 이질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찾은 것은 다름 아닌 월드컵이 가지는 우리들의 진정성이었다.

<남자의 자격> 다음 번엔 만회할까?

 '축제'의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 <남자의 자격>.
'축제'의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 <남자의 자격>. ⓒ 윤형빈 트위터

물론 그러한 점은 사실 KBS가 중계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또 달랐을 것임은 분명하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지난 13일 <남자의 자격>에서 방영된 영상과 모습들은 분명 감동적이긴 했지만, 주말 버라이어티에 어울리기보다는 <VJ 특공대>에서나 어울릴 법한 내용들이었음이 틀림없다.

중계권과 방송시간에 맞춘 편집의 촉박한 시간, 그로 인해 제작진이 남아공 현지 응원 장면을 아이폰으로 촬영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방송 내용이 기대에 비해 빈약했다.

과거 <이경규가 간다!>에서 보여준 현장의 뒷얘기나 선수 인터뷰, 혹은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국가의 사전답사나 그들의 응원 광경과 반응 같은 장면이 이번 특집에는 상당 부분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자격>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우리들의 뒷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은 틀림없다.

광장에 나가지 않고도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응원하고 즐거워하며 격려하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은 월드컵의 보이지 않는 가치다. 그것은 언제나 상업성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축제의 이면이지만, 그렇기에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이다. 축제는 모두 즐겁기에 축제가 아니었던가. 아울러 방송 내용에 대한 일련의 비판은 20일 방영될 <남자의 자격>을 통해 만회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품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남자의 자격#남아공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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