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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시장에 햇마늘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긴 장마기간에 입맛 나게 할 밑반찬과 다음 해까지 두고두고 먹을 저장용 먹을거리를 마련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의 김장만큼이나 분주해지는 날들이다. 우선 작년 봄에 담가서 지금까지 먹고 있는 저장용 반찬들의 양을 점검한다. 마늘장아찌는 이미 떨어졌다. 올해는 조금 넉넉히 담가야겠다. 양파장아찌는 이번 해를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오이지, 깻잎, 매실, 복분자는 모두 새로 해야 한다.


껍질째 담가도 되는 장아찌용 마늘은 시장에 잠깐 나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하다 마늘을 사들이는 시기를 놓쳤다. 마늘 껍질이 어느새 뻣뻣해 지고 있다. 마늘장아찌는 처음부터 껍질을 벗겨서 담그면 먹을 때 편해서 좋고, 껍질째 담그면 손가락이 아리도록 일일이 까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맛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튼지 올해는 할 수 없이 껍질을 죄 벗겨야할 판이다. 비닐장갑, 면장갑을 이중으로 꼈다. 덥지만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손톱이 빠질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남편도 도와서 함께 벗겼다. 외출할 일들이 더러 생겼기에 짬짬이 하느라 이틀에 걸쳐 마늘 한 접을 마련했다.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가 불난 것처럼 화끈거린다. 이웃 어르신은 일 더디게 장갑을 끼고 어떻게 하냐고 하시면서 그깟 한 접 까고 엉덩이에 불나냐고 '쯧쯧' 흉보셨다.

 

 

다 깐 마늘에 아리고 매운맛을 희석시키기 위해 식초와 물을 1대3으로 만들어 부었다. 이틀 뒤에 따라 버리고 간장과 물을 일대 일로 해 끓여 식혀서 부었다. 우리 집은 설탕을 넣지 않는다. 시중에서 파는 간장만으로도 단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늘장아찌를 완성했다. 3~4일 뒤에 간장 물을 따라 끓여 주어야 한다. 번거롭더라도 두세 번 더 해주면 냉장고에 넣지 않고도 내년 마늘이 나올 때까지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껍질을 까서 담았으니 간이 빨리 배어 조만간 먹을 수 있다. 삼겹살 구이에 그만이다. 생마늘은 매워서 속을 쓰리게 하지만 장아찌마늘은 아무리 먹어도 속이 편하다.


마늘과 함께 산 오이도 오이지로 만들고 깻잎도 장아찌로 변신시켰다. 깻잎에 들어갈 간장은 작년에 담가서 이제껏 먹었던 마늘간장으로 했다. 마늘은 이미 다 먹었기에 간장만 남아 있다. 재활용이다. 그 간장에 깻잎만을 넣어서 먹을 수도 있고, 파, 마늘, 깨소금, 고춧가루 양념으로 재워도 된다. 마늘양념이 밴 간장은 새콤한 것이 제법 맛있다.


여름 날, 찬물에 밥 말아서 아삭하게 씹히는 삼삼한 오이지 한쪽을 베어 물거나, 납작납작 썰어 물을 붓고 식초 한 방울, 파 송송 띄워 훌훌 떠먹을 것을 생각하며 팔팔 끓는 소금물을 오이에 확 들이부었다. 끓는 것을 식히지 않고 넣으면 오이가 무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더 아삭거린다. 골마지 끼지 않도록 며칠 뒤 두 번째 끓여 부을 때는 식혀야 한다.

 

이만큼만 해놓고도 뿌듯(?)해 하고 있는데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매실 10㎏ 한 박스가 떡하니 배달되어 있다. 매실은 5월 말쯤에 생산지하고 연계해서 이미 주문을 해 놓았던 터다. 매실엑기스는 매해 6월 중순 경에 담는다. 생산자는 '나무에서 딴 지 24시간 내에 도착하도록 하였으니 받으면 며칠 두지 말고 바로 담으라'는 친절한 설명서까지 보탰다. 그래야 향이 좋고 원액의 양도 많이 추출할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집 여름 음료는 매실과 복분자다. 엑기스를 물에 타서 얼음 동동 띄우면 어느 청량음료가 이에 미치겠는가. 체했을 때도, 해물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했을 때도 매실 엑기스를 먹었다. 한철 음식이 아니라 연중무휴로 우리집 음식 맛 도우미다. 고기를 재우거나 볶음 요리에도 두 가지 엑기스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설탕이나 물엿 대신에 엑기스로 단맛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매실장아찌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즉시 담그라고 했지만 매실보다 사람살이 약속이 먼저 잡혀 있어서 하루 묵힌 후 매실꼭지부터 제거에 들어갔다. 그냥 담기도 한다지만 매실 꼭지의 까만 부분을 따내지 않고 담으면 쓴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도 그냥 담아보지 않았기에 정말 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먹고 말 음식이 아니므로 힘들어도 꼭 꼭지 따는 작업을 한다. 이쑤시개로 꼭지부분의 까만 곳을 살짝 건드리면 톡톡 빠져 나온다. 시간이 들어서 그렇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엉덩이는 불나고 허리는 아프다.


꼭지 제거 후 흐르는 물로 살살 씻어서 채반에 담아 하룻밤 물기를 말려주고, 소주를 분무해 주어 소독까지 마쳤다. 분무한 뒤에도 소주의 알코올 성분이 날아갈 때까지 잠시 두었다. 엑기스 담기는 쉽다. 매실 한 켜, 설탕 한 켜 하는 식으로 담고 맨 위에 매실이 완전 덮이도록 설탕 두께를 만든 후에 밀봉을 하면 된다. 매실과 설탕은 동량이다. 혹여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 덜 넣으면 영락없이 골마지가 하얗게 낀다.

 

어떤 집의 남편은 부인이 매실엑기스 담을 때 넣는 설탕의 양을 보고 그다음부터 먹지 않는다고 한다. '설탕덩어리'라고, '안 좋은 음식'이라고... 하지만 설탕은 매실과 만나 발효되면서 효소로 변하고 우리 몸에 좋은 천연과당이 된다고 한다. 두세 달 사이에 매실이 쪼글쪼글해지고 엑기스가 충분히 우러난 듯싶으면 거른다.

 

 

이제 품이 들고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 매실장아찌 담기다. 해마다 엑기스만 담다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조금 만들어 보았더니 식구들이 모두 대환영이다. 작은 딸은 많이 담그라고 신신당부다. 밥반찬으로 먹어도 꼬들꼬들 씹혀 식감이 좋다. 쌉쌀하니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지만, 더 좋은 것은 고기 먹을 때 한 두 개씩 얹어 먹으면 개운해지면서 느끼함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나무칼로 귀를 베어가도 모르게 맛있다고." 해독작용도 있다고 하니 여름음식 잘못 먹었을 때 식중독 염려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매실장아찌는 간장, 소금, 고추장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우리 집은 고추장에 박는다. 6kg은 엑기스로 담았고, 4kg의 매실을 쪼개기 시작했다. 큰 것은 여러 등분의 칼집을, 작은 것은 십자 등분의 칼집을 넣어 가며 했다. 남편은 쪼개면서 자꾸 사방으로 튀게 한다. 힘 조절이 잘 안되나 보다.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튀지 않게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해가면서, 남편은 쪼개 논 매실을 보고 너무 흐뭇해하지 말라는 농담을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다 하기는 힘들어 낮에는 볼일 보고 주로 저녁에 하다 보니 이틀이 걸렸다.

쪼갠 매실을 달아보니 3kg다. 1kg가 줄었다. 똑같이 동량의 설탕에 재웠다. 그냥 고추장에 박으면 매실 액이 나와서 장아찌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약 한달 정도 액을 빼낸 후에 걸러서(엑기스는 반찬 등에 넣어 먹거나 음료로 먹으면 된다.)고추장에 버무리는 정도로 섞어 재워두고 먹으면 된다.


복분자는 7월 초 우리집에 입성할 예정인데, 같은 양의 설탕을 켜켜이 넣어 담기만 하면 되니 쉽다. 거실 한 귀퉁이에(집이 좁아서 별도의 장소가 없다)놓여진 매실엑기스와 장아찌, 마늘이 담긴 유리병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나는 매실 장아찌 병만 보면 흐뭇해" 누워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작은 딸의 말이고, "만든 사람들만 먹는 거야, 아빠 엄마만 먹을 수 있어" 남편이 딸을 놀리는 말이고, "아빠, 꼭 애들 같아" 큰딸이 옆에서 한마디 거드는 소리다. 


#매실 엑기스#매실장아찌#마늘장아찌#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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