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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작년 12월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 고시에 이어 올해는 교과교육과정 개편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며칠 전 학교로 2009개정교육과정 교과교육과정 설문에 참여하고, 몰라서 못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홍보를 잘 하라는 친절한 공문이 내려왔다. 이 설문이 처음에는 2009개정교육과정 선도학교와 연구학교에서 먼저 실시하였는데 모든 교사로 확대되어 6월 30일까지 진행예정이다.

밀실연구라고 비판받던 교과부가 지금이라도 전교사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설문조사 사이트에 들어간 교사들은 하나같이 설문 내용이 일방적이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엉터리 설문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설문을 하는 건지? 유도를 하는 건지?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교과교육과정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현장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사이트입니다.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교과교육과정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현장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사이트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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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내용은 교과교육과정 내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에 대한 동의 여부, 교과별로 양과 수준의 적절성 여부, 진로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문항마다 "지식전달 수업에서 주요 개념과 문제 해결 등 토론/토의, 실험, 프로젝트 학습등이 가능한 교과교육과정 내용으로 구성하기 위해"라는 말을 앞세워 교과부가 원하는 답만을 얻도록 되어있다.

실상은 교과부가 2007개정교육과정 교과내용을 무조건 20% 줄여야겠는데 그 기준을 최소필수학습내용으로 할까, 다른 교과나 영역과 중복되는 걸 줄일까 물어보는 것이다.

교과별로 특성이 다르고 학년별로 상황이 다른데 일방적인 기준만 제시하는 것이 못마땅한데,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마치 창의적인 교육을 반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하다가 기분이 나빠서 그냥 나왔다는 교사들이 많았다.

설계부터 잘못된 설문문항

설문 구성은 초등과 중등이 조금 다르다. 중등은 교과별로 평가하기 때문에 단원까지 세분화시켜 내용 적절성을 물었다고 한다. 초등은 10개 교과의 양과 수준 문제, 최종 목표와 학년별 성취 기준이 높은지 낮은지 등을 물어보고 있다. 이 중에는 1, 2학년 통합교과를 해체할 것인지도 물어보고, 과학영역 재구성에 대한 것도 있다. 교과별 내용 영역도 적절한지 물어보고 있다.

그런데 이 설문은 설계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금 학교현장에서는 2007개정교육과정 연차적용으로 초등은 개정교육과정을 아예 가르쳐보지 않은 교사도 있고, 5, 6학년 내용은 7차이기 때문에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실과 교과는 아예 교과서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대강 설문에 체크를 하게 된다. 중등에서는 올해 중학교 1학년만(수학, 영어는 중2와 고1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설문을 하려면 적어도 교육과정이 바뀐 지 2-3년이 지난 상태에서 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주관식만 제대로 답할 수 있어

 2009개정교육과정은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기당 8개 과목만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2007개정교과서로는 체제도 안맞고 내용도 20% 증감하기에 맞지 않아 오히려 학습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교과개정까지 급하게 엉터리로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2009개정교육과정은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기당 8개 과목만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2007개정교과서로는 체제도 안맞고 내용도 20% 증감하기에 맞지 않아 오히려 학습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교과개정까지 급하게 엉터리로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 2009개정교육과정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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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장에서 가르쳐보지도 않은 내용을 설문조사한 내용은 정확성이 떨어지고 무리하게 바꾸다보면 교과내용이 기형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초등에서는 교육과정이 학생발달 수준보다 2-3단계 높아서 근본적으로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생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작년 1, 2학년 교과서도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올해 3, 4학년 내용을 보면 교사도 너무 어려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그런데 설문내용은 전과 똑같이 형식적인 질문으로 일관해서 실망스럽다는 답이 많았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주관식에나마 하고 싶은 말을 겨우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진로교육에 대한 설문은 교육인간상에 진로교육이 반영되었는지, 교과교육과정에 진로교육을 반영할지, 학교에서 앞으로 진로교육 수요가 많이 생길 것인지를 물어본다. 내용이 교사들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는 내용처럼 보인다.

초등 영어 수업시수가 1시간씩 늘었는데 어휘수나 학습 수준을 높일지 말지를 물어보는 내용도 있다. 올해 영어 수업을 하니 수준이 더 높아진데다 내년 3, 4학년부터 쓰는 검정교과서는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고 5, 6학년은 가르쳐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어교육 수준을 또 높이려는 것일까?

오랜 기간의 현장 실태 조사와 전문가적 판단, 실제 가르쳐본 경험이 쌓인 뒤에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저래놓고 또 현장교사들이 원한다고 수업시수를 1시간 더 늘리는 건 아닌가?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서 현장교사로서는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만 든다.

2009개정교육과정은 작년에 개정작업에 들어갈 때부터 교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는데, 교과교육과정 설문조사마저 현장의 상황이나 교과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가위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럴수록 실제 학생의 학습 부담은 더 커지고 교사도 수업하기가 어려워진다.(학습량20%감축? 이젠 안속아요)

학생 위한다면 2007개정교과서 보완작업부터 해야

교과관계자들 이야기를 빌면 2007개정교육과정은 버려진 자식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2007개정교육과정인데, 교육과정을 또 바꿔 놓으니 교과서와 맞지 않아 손대야 하거나 수준이 높아 바꿀 것이 많다.

그런데 학자들은 돈되는 2009개정교육과정 연구와 해설서 작업에만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과정 개정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책당국의 실적이나 2007개정교육과정 파헤치기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교과부는 지금부터라도 엉터리 설문조사보다는 2007개정교과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실제 교수학습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적 연구부터 진행하는 것이 순서이다. 아울러 앞으로 교과교육과정 개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일정을 알리고, 진행방식에 대해서도 현장의 의견을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교육희망>에도 보냈습니다.



#2009개정교육과정#교과교육과정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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