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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계곡물 비에 불어나 저물녘 세차게 흐르니(春潮帶雨晩來急)
야도엔 인적도 없이 배만 홀로 매어 있네(野渡無人舟自橫))
- 당(唐) 위응물(韋應物) <저주서간(滁州西澗>

야도(野渡)다. 관도(官渡)의 반대다. 재야(在野)든 야사(野史)든 야당(野黨)이든 늘 쓸쓸한 법이다. 그 쓸쓸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적 집권을 목표로 삼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정사(政事)의 주체가 돼야 한다. 정부를 탈환해야 한다. 의회를 지배해야 한다.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야사가 아닌 정사(正史)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어제(6월 30일)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당의 정체성과 체질을 바꾸자는 강력한 쇄신 요구에 대해, 당권파는 기껏해야 재보선 이후로 논의를 미루자 하거나, 당내 분란으로 비치면 안 된다는 정도의 방어망을 쳤다. 할 말이 없었다는 증거다. 논리적 붕괴다.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시민의 목소리를 그래도 듣고는 있는 것 같다는 최소한의 증거라는 점이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크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도 혁신기구를 두자는 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재·보선 전에는 중앙당에 실무팀을 꾸려 전대준비를 시작하고 재·보선 이후 전대준비위를 구성해 당내 현안을 정리하는 게 맞다." 최재성 의원의 발언이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회피 혹은 도피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라는 두 곳의 핵심선거 패배의 책임은 오간데 없다. 역시나 무책임이 무정견을 낳는다. 그렇다면 이런 발언이야말로 시민의 입장에서는, 쇄신을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정세균 대표식의 표현대로 '좌시할 수 없다.'

쇄신요구에 대한 대표의 '책임회피'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 의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왼쪽은 박지원 원내대표.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 의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왼쪽은 박지원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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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의원의 발언은 정 대표의 "(즉각적인 혁신기구 구성 주장에 대해)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발언과 공명한다. 정 대표는 그간 대표가 가져야 할 정치적 책임론으로부터 늘 도망자였다. 권한은 대표였으되, 책임은 대표인 적이 없다. 책임은 늘 '최고위원회'라는 위원회의 몫이었다.

기득권과 당권에 가뜩이나 절어있는 중앙당권파와 최고위원회가 민주당의 대전환을 꿈꾸는 혁신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시나 의견수렴을 이유로 또 미룰 것이다. 최고위원회의 이견을 이유로 다시 미룰 것이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대표라는 대표성이 왜 필요한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적 '책임무능력자'로 비판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시절 한나라당은 대선과 총선 패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천막당사'라는 책임성의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한나라당의 이런 자산이 국민들에게는 반성과 책임으로 비쳐졌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미래를 위한 새 출발이 됐다.

민주당은 대선에 패배했다. 총선에 패배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사적 이득을 통해 승리를 챙겼지만, 그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반성은 없다. 명백히 한나라당보다 못한 현실인식이고 책임회피다. 한 개인의 정치적 책임회피가 아니라 잠재적 집권을 꿈꾸는 책임야당의 책임회피다. 정치적 무책이요, 무능력의 극단이다.

쇄신 요구에 대해 '연기론'과 '무시전략'으로 일관하는 것은 단지 쇄신파의 요구에 불응하는 것이 아니다. '민심을 외면'하는 일이요, 무시하는 행태다. 주권자인 시민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편의에 따라 주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선거가 갖는 민의의 대표성을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반민주주의다. 그래서 답답하고 안쓰럽다.

시끄러워야 야당이고, 갈등해야 생산한다

민주당의 무능에 대해서 더 이상 지적할 필요도 없다. 시민들이 생각하는 민주당의 무능은 단지 대여투쟁에 무능하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진화능력을 상실했다. 스스로의 조정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자기혁신을 꿈꿀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무능의 종합판이다.

당권파는 자신들의 책임은 외면한 채 무능의 총체적 책임을 다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과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냐고 물을 것이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당 내부 계통을 통해 해야 할 얘기를 대중을 상대로 하는 '포퓰리스트'라고 공격할 것이다. 현재의 지도부는 이 정도의 언로조차도, 이 정도의 비판조차도, 혁신의 전제인 이 정도의 의제설정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혁신의 동인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지도부다. 솔직히 지적하자면 당대표다. 대표성은 있되, 리더십은 없다.

최근에야 민주당의 뉴스가 정치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야당의 정치뉴스는 분열에서 출발한다. 그 분열은 긍정적 의미의 세포분열이요, 정책분열이요, 조직분열이다. 정책적 조직적 노선투쟁 없이 변증법적 정책생산은 불가능하다. 차기 대선을 위해 끊임없이 새롭게 모색하고, '하루하루 더 나은 실수'를 해야 하는 것이 야당의 운명이자 책무이다. 그런데 마치 군부통치 시절의 일사불란을 외치고, 조용한 토론을 강요한다. 당내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린다.

무사안일한 '선거의 덫'을 넘어 영국 노동당에게 배우자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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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끊임없는 분열과 갈등을 재생산해야 한다. 다만 그 목표지점은 새로운 가치, 새로운 대안, 새로운 정책, 현실적 정권 탈환과 시민의 행복에 맞춰져야 한다. 그 목표지점이 분명하다면 어떠한 갈등과 토론도 분열일 수 없다. 논의는 강화돼야 하고 정책적 갈등은 더 깊어져야 한다.

그런데 보궐선거를 위해 혁신논의를 중단하자고? 그 논리 자체의 반민주성과 패배주의적 근성에 대해서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민주당이 걸려든 '선거의 덫'이 있다. 긴 흐름을 보지 못한다. 그날그날의 정치적 일정관리에 만족한다. 대선승리라는 중기적 목표도 설정하지 못한다. 승리의 프로세스를 설계할 능력이 없다.

잠시 관심을 돌려 지난 시절 영국 노동당의 집권사를 돌이켜 보자. 블레어 총리 후보는 전통적 노동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트러블 메이커'였다. 유럽헌법에는 대부분 사회주의가 정면으로 규정돼 있다. 프랑스 헌법도 그렇고 독일 헌법도 그렇다. 사회주의 공화국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영국은 그런 규정은 없지만 보수와 노동의 양당구조를 철저하게 유지해왔고,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핵심정당이었다.

그런 노동당에서 '제3의 길' 노선이라고? 정통 노동당원들은 블레어의 이 의제를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 노동당은 둘로 깨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해나갔다. 블레어는 경선 없는 추대가 가능했음에도 경선판을 만들었다. 영국시민들은 2년 뒤 노동당의 손을 들어줬다. 조용해야 한다? 정치는 당권파들만의 것이다? 승리를 위한 논리가 아니다. 현상유지를 위한 논리다.

은평을 재선거에 대한 '출마자 러시', 웬 '근자감?'

은평을 선거를 위시한 지방선거까지 당 쇄신을 미루자는 주장은 '무능'을 버젓이 드러내는 태도다. 다시 반 MB로만 가자는 것이다. 물론 은평을 재선거는 국민권익위원장으로서 국가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시민에 대한 폭력을 사실상 방조해 온 무능한 공직자에 대한 준엄한 평가의 장이다. 총리실이 한 시민의 삶을 파탄내고, 영포회를 조직해 지방토호 스타일의 패권적 정치를 해 온 정부에 대한 심판이다. 자전거를 타고 돌며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선전해 온 이 시대의 '선전상'에 대한 퇴출무대이다.

그러나 이번 재보궐 선거는 '6.2 지방선거'로 한 번 이명박 정부를 심판했다는 유권자들의 '안도감'이 '투표율'에 상당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적극적 투표의향층이 줄어들 확률이 크다. 한편으로 과거의 이재오와 현재의 이재오는 '지역구를 지키려는 태도'에서 확연히 다르다. 이재오 전 의원 스스로 "지역에 소홀했다. 야당하면서 너무 중앙정치에만 올인했다"며 반성하고 있다. 은평구를 '삶의 뿌리'라고 하면서, 회의도 거리에서 할 정도로 주민과의 접촉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전국선거'가 아니라 '은평선거'로 만들겠다는 '전략'도 공개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현재 모습은 이 전 의원의 결연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은평에 출마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속에서 '골드러시'에 비견될 '출마자 러시'가 벌어진다. 은평 유권자들의 자존심에 대한 고려는 없다. 한나라당은 당력을 총동원한다고 하고, 이 전 의원은 이를 거부했지만, 역할분담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구청장을 세웠지만 지역조직에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시기적으로 버겁다. 여론조사나 선거와 관련된 지표를 믿을 수 없게 된 지금, 대체 무엇으로 승리를 확신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을 '미래를 위한 놀이터'로 조합하라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쇄신모임에 참석한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쇄신모임에 참석한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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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재보궐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당의 쇄신은 지금 당장 필요하다.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했다는 2.4%를 24%로 만들기 전에 '승리 확신'은 유권자에 대한 오만이다. 해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유권자와 당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당이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조합'하면 된다.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는 '무능한 지도부'가 아이디어를 내고 만드는 '근대적 방식'을 넘어, '집단지성'을 통해 생산을 시작하면 된다.

스티브 잡스의 발상처럼 외부의 개발자들이 수많은 응용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하고, 이를 당이 모으면 된다. 개인이나 한정된 집단이 만든 복잡한 매뉴얼이나 조작은 필요 없다. 민주당이 '미래를 위한 놀이터'가 되는 순간이 바로 당이 혁신하는 순간이다.

이대로라면 중앙당에 혁신기구나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폐쇄적 당권을 더욱 강화시키는 안을 만들 확률이 너무도 높다. 사용자가 개발자가 되고, 개발자가 사용자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쇄신안을 들고 싸우고 연대해야 한다. 더 나은 의견을 모아야 한다. 당권파의 '전술'대로라면 당의 쇄신은 없을 것이며, 7월 재보궐 승리는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도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당 쇄신에 관한 다섯 편의 글 중 세번째 글입니다. 민주당 쇄신 혹은 현상유지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재천 기자는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이자 17대 국회의원입니다.



태그:#민주당 쇄신연대,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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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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