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텃밭 농사 역시 직장생활처럼 시간과의 다툼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그날 할 일을 점검하여 준비하고, 시간표에 맞추어 수업에 들어가고 평가처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학교처럼 숙지원의 텃밭 농사도 다르지 않다.

 

다만 텃밭 농사는 실내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하는 식으로 세웠던 계획이 일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점이 같지 않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직도 무성한 풀은 마음을 바쁘게 하지만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처럼 부담은 없다. 풀을 이기려하지 말고 풀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름대로 풀을 대하는 요령이 늘었기 때문이다.

 

매사가 그렇듯이 김매기도 때를 놓치면 일감이 쌓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우왕좌왕하게 마련이고 결국은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을 남기고 손을 들 수밖에 없게 된다. 

 

숙지원을 가꾸던 첫해에 내 모습이 그랬다. 낫을 들고 설치고, 예초기를 지고 다니면서 온 몸이 떨릴 때까지 긁어댔지만 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낫과 예초기에 기대어 풀이 '어느 정도' 자라기를 기다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숨을 죽이고 듬성듬성 보이던 풀이 '어느 정도' 자라 세력을 뻗치기 시작한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야콘밭 사이의 콩밭                옥수수, 야콘, 콩(팥)이 어우러진 풍경.  
처음에 풀을 잘 잡은 결과 작물드이 거침없이 자라고 있다.
야콘밭 사이의 콩밭 옥수수, 야콘, 콩(팥)이 어우러진 풍경. 처음에 풀을 잘 잡은 결과 작물드이 거침없이 자라고 있다. ⓒ 홍광석

텃밭 농사 4년째. 아직 초보 농부인 주제에 자칫 농사 고수들 앞에서 "진사 앞에서 글 자랑하는 격인" 설익은 소리일 수 있겠지만 요즘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이 "초장에 잡자!"이다. 원인을 미리 제거한다는 말인데 경험에 의하면 고추와 야콘, 고구마 등 키가 크거나 잎이 무성한 작물은 심은 후 보름에서 한 달 사이가 중요하다. 그때쯤 뿌리를 감은 풀들이 손에 잡힐 만큼 고개를 내미는데 그런 풀들은 뿌리도 깊지 않고 솎아내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 다만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동작이 조금 힘들 뿐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좋은 운동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고된 일만도 아닐 것이다.

 

특히 콩밭의 풀은 일일이 호미로 잡지 않으면 안 되는데 초장에 잡지 않으면 콩보다 빨리 자라는 풀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풀이 자란 후에는 아무리 섬세하게 다루어도 콩마저 뽑히는 통에 1년 농사를 망기 십상이다. 아마 힘 든 일중의 하나가 어린 콩밭의 김매기 아닌가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수확이 많고 풀에 강한 콩을 생산하기 위해 인간에게 해로울 수 있는 유전자 조작까지 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가지만 우리나라 콩 소비량의 95%를 수입하고 수입품의 대부분이 유전자조작(GMO) 콩이다. 영국 등 서구 유럽에서는 GMO 식품을 금지한다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규제도 없다고 한다. 자연 상태의 정상적인 식품보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GMO 식품은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GMO 식품인 수입 콩은 우리 스스로 경계하고 먹는 것을 삼가해야 될 것으로 본다.

 

콩은 땅을 기름지게 할 뿐 아니라 수확량도 많다. 더구나 강낭콩은 두 벌 콩이라고 하여 1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으니 10여평의 텃밭만 되어도 4인 가족이 한 계절은 밥에 얹어 먹을 만큼 수확되어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맛도 수입콩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또 콩밭의 풀도 두 번 만 매주면 콩잎이 무성해져 다음에는 배수 관리만 잘 하면 굳이 김매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많은 분들이 자투리땅에 콩을 심어 땅을 기름지게 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챙겼으면 한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도라지꽃 가운데 해바라기            도라지 꽅밭에 해바라기가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도라지꽃 가운데 해바라기 도라지 꽅밭에 해바라기가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 홍광석

풀을 대하는 두 번째 원칙은 "굳이 작물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냥 두자!"이다. 텃밭에 사는 작물이나 정원에 사는 꽃도 다만 얼마만큼 인간에게 유익하느냐의 차이일 뿐 엄격하게 보면 풀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특별히 풀에 치어 자랄 수 없는 작물이 아니라면  풀이 발목이 빠질 만큼 자란다고 해도 그냥 두는 편이 낫다. 가만 두어도 큰 나무 밑에서 풀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철쭉의 키를 넘기는 풀도 드물게 된다. 정말 보기 싫은 풀은 오가면서 괭이나 낫으로 슬쩍 치거나 뽑아주면 될 것이다. 필요 없이 힘을 쓰지 않겠다는 나름의 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 동부 지역의 말 중에 서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다.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순수한 우리말이면서 그 뜻이 매우 좋아 김매기 뿐 아니라 텃밭 농사를 하면서 곧잘 새기는 말이다. 300평 쯤 되는 텃밭 농사는 시나브로 하는 것이 맞다.

 

마당을 시멘트로 발라도 풀은 나오는 법이다. 쫓아다니면서 마당을 쓸듯 풀을 뽑을 작정을 한다고 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자칫 사람 몸만 피곤할 따름이니 조금 느긋하게 봐주자는 말이다.

 

솎아 내거나 베어낸 풀의 처리도 하늘에 맡기는 편이 좋다. 뽑힌 풀도 햇볕 좋은 날에는 하루면 마르고 만다. 그런 풀은 모아서 나무 밑에 뿌려두면 나무에 거름이 될 뿐 아니라 다른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 흙과 섞으면 흙속의 미생물로 인해 발효되어 적어도 한 달이면 훌륭한 퇴비가 되기 때문에 절대로 말려서 불에 태우는 일도 없어야 한다.

 

수박               아직 아이들 주먹만큼밖에 안되지만 너무 귀엽다. 먹을 수 있느냐의 여부보다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박 아직 아이들 주먹만큼밖에 안되지만 너무 귀엽다. 먹을 수 있느냐의 여부보다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홍광석

귀촌에 뜻을 둔 분들 중에도 지레 풀에 주눅 든 경우를 본다. 그렇다. 김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겨운 일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직장인들 쉬운 일만 있을 것인가! 때를 미루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풀과 더불어 살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김매기는 건강을 지키는 놀이요 운동일 수 있다. 

 

지금 숙지원에는 야콘, 옥수수, 콩, 고추, 토마토, 가지 수박 등이 채송화, 도라지, 해바라기, 분꽃 등과 어우러져 여름을 식히고 있다. 그 가운데 작물과 경쟁하는 풀이 있기에 여름은 더 지루하지 않고 싱그러운 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개인의 잔잔한 기록도 역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봄 길 밝히는 등불, 수선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