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개최되고 있는 '2010동강국제사진제'를 보기 위해 지난 24일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영월을 찾았다. 영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되었고 그곳 숙소에서는 오전에 먼저 출발한 일행들이 술 한 잔씩 걸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청령포를 비롯하여 멋진 곳을 많이 봤다고 자랑을 한다. 특히 '모운동'이라는 곳은 벽마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집들이 있고, 찬 바람이 나오는 동굴이 있고, 또 까마득한 인공폭포가 있다며 정말 보기 좋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그 중 벽마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예쁜 마을이라는 데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래서 모운동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새벽 5시에 눈을 뜨니 창 밖에는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영월에서 네비게이션으로 '모운'을 검색하니 거리는 25㎞정도 되는데 시간은 40분 정도로 예상되었다. 모운동이 산 깊은 곳이어서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새벽의 영월 풍경은 영화 속 풍경 같았다. 차길은 강에 인접한 비탈진 산을 깎아서 만들어져 있어 곳곳에 '낙석주의' 표지가 있고 급커브에는 '추락주의' 표지가 이어졌다. 운전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주변의 산들과 강은 안개에 희미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갓길이 없는 좁은 왕복2차로에서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을 따라 가던 길이 산길로 접어들면서 길은 더욱 꼬불거린다.
꼬불 꼬불 한참을 가서 속이 울렁거리려고 할 즈음 모운동이 나타났다. 망경대산의 해발 700m 즈음이다. 예전에 네비게이션이 없던 때에는 사람들이 마을로 오다가 마을은 나타나지 않고 길은 산 속으로 꼬불꼬불 끝도 없이 들어가서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한다.
모운동에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동화의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다. 차에서 내려 예쁜 마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자니 산책을 하시던 마을 어르신들이 이렇게 일찍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인사를 드리니 모운동이 예쁜 마을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폐광마을로 마을 전체가 거무튀튀하고 노인들만 있고 산 속 깊이 있는 마을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제는 손님들도 많고 마을에 활력이 생겨서 좋다고 하신다.
마을의 골목들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자니 목소리 고운 아주머니가 차 한잔 하지 않겠냐고 권하신다. 집에 들어가니 집 안이 아기자기 하게 예쁘게 꾸며져 있다. 정원에는 예쁜 연못도 있다. 그 집이 이 마을의 이장인 김흥식(55)씨의 집이었다. 손수 만들었다는 복숭아차를 마시며 마을의 내력을 들었다.
모운동에는 별표 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산이 있었다. 70년대에는 유랑극단이 영월읍은 들리지 않아도 모운동에는 들렀을 정도로 번화한 동네였다. 당시 모운동의 인구는 1만명 정도로 극장과 우체국, 방앗간이 2개, 사진관 2개, 요정이 4개 등 없는 것 없는 동네였다.
모운초등학교는 재학생이 800명이나 되어 2부제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법 발표되면서 옥동광산이 폐광되고 사람들은 떠나, 지금은 32가구 60여명이 살고 있다. 그렇게 모운동의 전성기는 사라지고 모운동도 강원도의 어느 폐광촌처럼 갈 곳이 없는 노인들만 사는, 찾는 이도 없는 마을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마을이 되는 듯 했다.
마을 이장인 김흥식씨네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도 했지만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내와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폐광의 흔적만이 남아 거무티티하던 활기가 없는 마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구체적인 탈바꿈을 하게 된다.
처음 사업비로 2천 만원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는 화가는 둘째 치고 미대 학생들에게 작업을 부탁하더라도 재료비와 식비 등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 손복용(48)씨가 동화에 나오는 그림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칠해야 할 색을 적어 놓으면 마을의 어르신들이 칠을 하는 방식으로 벽그림을 하나씩 그려 나가 지금처럼 마을 곳곳에 그림이 그려졌다고 한다.
또 마을의 진입로를 정비하고 길가에는 철쭉, 매발톱, 원츄리, 구절초 등 꽃을 심고 집 주변도 깨끗이 하였다.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서 마을 종합안내판을 설치하고 공동화장실도 만들고 구판장도 만들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이를 위해 가꾸어진 마을은 이제 사람들의 입에 '동화마을'로 소문이 나면서 찾아오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이 늘면서 외지인이 폐교된 모운초등학교를 '하늘아래펜션'으로 리모델링하여 운영하고 있고, 주민이 민박을 하는 곳도 있다.
김흥식 이장이 마을의 그림만 보아서는 모운동을 다 알 수 없다며 차에 올라타라고 하였다. 차는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향해 달렸다. 한때 이 길이 수만명의 광부들이 다니던 길이다.
모운동의 이런 변신으로 2008년에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참살기 좋은 마을' 대상을 수상했다. 김흥식 이장은 앞으로 강원도의 산과 폐광 그리고 단풍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광부의 길'이라는 올레길을 계획하고 있고, MTB 자전차길과 멋진 절경의 인공폭포의 활성화도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는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마을들이 여러 곳 있다. 그런 마을들의 공통점은 사라져 가는 동네라는 것이다. 살던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서 사라져가고, 또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들의 노쇄함과 함께 그들이 한평생 살아 왔던 곳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감정은 전이가 된다. 살아있어도 사라져가는 마을의 느낌을 매일 같이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하지 않았을까?
석탄가루에 뒤덮혀 거무튀튀하던 마을에서 꽃이 사방에 만발하고 벽마다 예쁜 동화책 주인공들이 튀어나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나이든 어르신들만 있을 뿐 찾아오는 이가 드물던 동네에 젊은이들이 즐거이 산책을 한다. 다른 동네에서는 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외부의 노력에 의해 마을이 변화를 하는데 모운동에서는 이러한 큰 변화를 연로하신 마을주민들이 합심하여 이루어냈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마을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