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경 저는 가족과 함께 제주 안덕면의 어느 관람 시설에 있었습니다. 관람을 다하고 다음 여행지로 가려고 관람지 정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차량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버스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상당수는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초콜릿 박물관을 보고싶어 했습니다. 지도상엔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곳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느 필름회사 이름이 붙어 있는 승합차에서 내리는 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초콜릿 박물관 구경 가자고 해서요. 어떻게 가야 할까요?"
그분은 어떻게 이동하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버스로 가족여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그분은 뒤 짐 칸에서 박스 몇 개를 가지고 관람지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다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타세요. 그곳으로 가는 길이니 태워다 드리지요."
초등학생 3학년인 아들과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아내 그리고 가볍지 않은 짐보따리 하나씩 짊어지고 6일째 제주 일주 여행 중이라 지치고 힘든 상태였습니다. 우린 사막에서 시원한 샘물을 만난듯이 기뻤습니다. 우린 그 분의 승합차량을 타고서 여행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뭐하는 분이세요?"
저는 궁금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동안 힘든 여정을 살아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부산에서 사업 하다가 하루 아침에 거덜 났다고 합니다. 그것이 17년 전 일이라 했습니다. 그땐 총각이어서 홀홀 단신 제주도로 왔다고 했습니다.
"도망 오다시피 제주도에 도착했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지요. 그래서 택시를 대절해서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택시를 대절해서 제주도를 구경 다니면서 택시기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택시기사가 사정을 딱하게 여겼던지 택시기사로 취직을 시켜 주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1년 정도 택시기사로 일을 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옆자리에 손님을 태우고 가다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두분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멀쩡했으나 옆에 탄 손님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 사고 이후 택시운전이 나랑 맞지 않은 거 같아 그만 두었어요."
먹고 살 일을 찾던 차에 우연히 부산 친구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친구에게 뭘 해서 먹고살지 모르겠다고 하니 그분 특성에 맞는 영업 한번 해보라 권했다고 합니다.
"넌 음료 영업을 뛰어 봤으니까 필름 영업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
그분은 십수년간 국내 유명 음료업체에서 영업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영업 능력을 되살려 제주도에서 할수 있는게 필름영업이라는 것입니다. 친구의 조언을 듣고 정보 수집에 나섰고 해볼 만하겠다고 판단하여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제주도는 관광지라 전역을 돌며 잘만하면 될 거 같았는데 이미 다른 필름 받고 있다면서 대화도 안 하려 했어요"
그분은 제주도 전역을 돌며 사전 답사도 하고 필름업체를 선정도 했습니다. 이제 공급처만 뚫으면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속적으로 찾아 다니며 가게 주인이 바쁘면 그 일도 그들고 또 청소도 해주며 꾸준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어느날부터 한두 곳 공급처가 생기면서 사업이 되어 갔다고 했습니다.
"영업은 다른 게 없어요.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진실하면 됩니다."
부산서 아무것도 없이 제주도 온 지 17년. 지금 그분은 50이 넘은 나이가 되었고 제주도에서 결혼도 하고 중학교 3학년 된 딸이 있다고 합니다.
"서른여섯에 결혼했으니 내 친구들 보다 상당히 늦은 나이였죠."
왜 우리를 태워 주느냐고 물었더니 제주도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여행하는 사람들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차량봉사를 한 게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힘들게 여행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태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릴 위하여 일부러 해안 도로로 달렸습니다.
안덕면에선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을 구경하라고 사계 쪽으로 빙 돌았습니다. 송악산에 들러 잠시 공급처에 물품을 내려주고 다시 해안 도로를 타고 천천히 차를 몰며 해안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갔다면 볼 수 없었던 주상절리라는 절경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주상절리 구경하라고 내려놓고 몇 시까지 오라했습니다. 그리고 공급처에 물품을 배달해주고 시간 맞춰 우리를 태우러 왔습니다. 귀찮다면 귀찮은 일임에도 그분은 "가는 길"이라며 태워 주었습니다.
"내일은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는 중문 한 찜질방에 내려 하룻밤 지낸다고 하니 다음날 일정을 물어 봅니다. 다음날 우린 표선쪽으로 가서 제주도 한바퀴 돌거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 3시쯤 성산일출봉에 가서 구경하고 계세요. 그곳이 구경해 볼 만합니다."
그분은 우릴 중문 찜질방 근처에 내려 주며 말했습니다. 찜질방에서 지내고 성산 일출봉으로 갔습니다. 성산 일출봉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은 짦은 거리였지만 빼어난 절경 때문인지 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그곳을 올랐습니다. 저도 안 보고 가면 후회 할 거 같아서 다리가 좀 아팠지만 올라 갔습니다. 좀 오르막이긴 했지만 계단으로 길이 잘 나있어서 잘 올라갔다 내려 왔습니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성산에서 점심을 먹고 산타고 내려오니 약속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과연 약속대로 올까 싶었지만 그분은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구경 잘 했냐고 하면서 밝은 모습으로 우릴 맞아 주었습니다. 우린 다시 그분 승합차를 타고 차량 여행을 했습니다. 오전부터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리니 그분이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어디를 한번 들러보고 싶으세요?"
그분은 친절하게도 그렇게 물었습니다. 아들이 미로공원 가보고 싶어 한다고 하니까 그분은 기꺼이 우리를 미로공원으로 안내했습니다. 우릴 내려 놓고 그분은 영업하러 갔습니다. 40분 후까지 와 있으라 하고는 어디론가 차를 몰고 갔습니다. 우린 김녕 미로공원을 신나게 돌아 다니다 겨우 길을 찾아 나오고 보니 그분이 말한 그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볼 일 보고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고맙다며 그분 딸이 중 3이라 해서 조그만 선물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딸 갖다 주라며 선물을 내밀었더니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선물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관광지 선물코너에서 판매하는 것은 자신도 취급하는 물품이라며 받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공항서 가까운 찜질방을 찾는다고 하니까 그곳으로 우릴 태워다 주었습니다. 여러 개의 찜질방 중 가족과 한 번 가보았는데 좋더라며 그곳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더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찜질방은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제주도 한바퀴 돌면서 지내본 찜질방은 모두 후덥지근해서 좀 그랬는데 마지막날 그분이 소개해준 찜질방은 시원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찜질방을 나와서 택시타고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10분 거리였습니다. 제주에서 비행기 타고 부산에 내렸습니다. 공항버스타고 울산에 왔습니다. 집까지 오는데 6시간 걸렸습니다.
제주 여행을 일주일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고마운 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우린 3일간 그분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혹시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나요? 관광지를 잘 살펴 보세요. 필름 광고 문구를 차량에 붙이고 제주 전역을 돌고 있습니다. 관광 하시는 분들도 그분을 한번쯤 만나는 행운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족은 그분 덕분에 좋은 구경도 하고 즐거운 제주 여행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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