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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총리 직에서 물러났다.

 

작년 9월 29일 이명박 정부의 2대 총리로 취임하며 '친서민 중도실용'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것을 생각하면, 10개월 만의 쓸쓸한 퇴장이다.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부터 정치 감각과 행정 능력, 경제에 대한 식견을 겸비한 '인재'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아왔다. 충남 공주 출신이라는 지역적 배경도 호남+충청의 지역 연합으로 TK 출신의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려는 구여권의 셈법에 들어맞았다. 

 

그러나 구여권의 러브콜을 받던 그는 2007년 4월 30일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정치권과 거리를 두게 됐다.

 

서울대 평교수로 돌아온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국가 경영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 경영이 아니다"(2008년 3월), "현 정부의 녹색뉴딜 정책은 토목건설과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가깝다" (2009년 1월)며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곤 했다. 그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2008년 12월)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러한 그가 작년 현 정부의 국무총리에 발탁된 것은 여야 정치권에 모두 의외의 선택으로 비쳐졌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한겨레>조차 2009년 9월 4일자 사설에서 "정운찬 전 총장을 총리 후보자로 발탁한 것부터가 자못 신선하다"면서 "비록 흡족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현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돋보이는 인사"라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병역 기피, 배우자 위장전입, 양도세 탈루, 소득세 신고 누락, 국가공무원법 위반, 논문 이중 게재 등의 의혹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정 총리의 이미지가 구겨졌다. "까도 까도 의혹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의미로 '양파 총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생겼다.

 

온갖 말실수로 세인들의 놀림거리 됐던 '양파 총리'

 

총리로 취임한 후에는 갖가지 말실수로 세인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작년 11월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의 보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731부대(2차대전 중 만주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 군부대)의 의미를 묻자 "항일 독립군인가요"라고 답했고, 올해 2월 10일 대정부질문에서는 "영화 <아바타>를 보셨느냐"는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의 질문에 "대강... 집에서 봤다"라고 답해 '불법 다운로더' 시비에 휘말렸다.

 

일부에서는 정 총리가 야당의 세종시 공세 때문에 피로가 쌓여 생긴 실수라고 변호했지만, 그의 실수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 총리는 1월 21일 작고한 이용삼 민주당 의원의 빈소에 조문 갔다가 독신이었던 이 의원의 약력을 잘못 알고 유가족에게 "자제분들이 어리실 텐데 심려가 크시겠다"고 실언을 했고, 5월 13일에는 "잘못된 약속도 막 지키려는 여자가 있는데 누군지 아시느냐"는 썰렁한 농담을 던져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 총리의 말실수 사례는 이밖에도 무궁무진하다. 그의 측근들은 "학자의 소탈한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고 옹호했지만 "공직자로서 처신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세종시 총리' → '허수아비 총리'로 막 내려

 

특히 세종시 수정안 논란은 임기 내내 정 총리를 괴롭혔지만, 그가 스스로 풀어야 했던 절대절명의 과업이기도 했다.

 

그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날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는) 아주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원안보다는 수정된 안대로 될 것"이라고 운을 뗀 후부터 정 총리와 세종시 수정안은 뗄래야 땔 수 없는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차기 대선에 야심이 있었던 정 총리도 '세종시 총리'로서의 소명을 잊지 않았다. 정 총리는 취임 이후 무려 13차례에 걸쳐서 충청권을 방문하는 등 지역 민심을 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2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치인들의 소신이 자기 정치집단의 보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며 친박 진영을 비롯한 정치권과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 총리의 세종시 '드라이브'는 여당의 6.2 지방선거 패배와 지난달 29일 수정안의 국회 부결로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 총리는 29일 '사의 표명' 기자회견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한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의 차원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지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세종시 논란이 일단락된 후 그는 ▲공교육 개혁 ▲출산율 제고 ▲사회갈등 해소 및 사회통합 ▲국격 향상 ▲일자리 창출 등의 새로운 어젠더로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지만, 또 다른 악재들이 그를 괴롭혔다.

 

국무총리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파문과 영포 인맥의 국정농단 논란은 그에게 '허수아비 총리' 이미지를 덧씌우며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 했다. 정 총리를 좀 더 써보려고 했던 이 대통령의 만류도 통하지 않았다.

 

유임과 용퇴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에게 여당의 재보선 승리는 스스로 총리 직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다. 재임기간 공보다 많은 허물을 드러낸 그가 정치인으로 재기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10개월 만에 '만인지상 일인지하'에서 물러나는 정 총리의 퇴진은 대통령제하 총리의 운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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