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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교회 청년부 대학생 형들이 보여준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의 비디오와 사진들을 보게 되었고, 어린 마음에 '왜 하나님은 같은 동포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총칼로 죽인 우두머리와 그 잔당들이 잘살도록 놔두고 벌하지 않으실까?'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영혼이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도 믿지 않게 되었는데,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 혹은 귀신이 이승에 남아 자신을 해한 놈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TV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고 나이를 더 먹으면서 (당시엔 기독교의) 신과 신앙에 대한 의문은 점점 다양해지고 가짓수도 많아진다.  

"왜 우리는 조상이 지었던 죄에 대해 원죄를 가져야 하죠? 이건 연좌제가 아닌가요?", "신을 본 사람은 실제 아무도 없는데 왜 존재를 믿어야 하나요?", "왜 반드시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구원인가요? 그럼 다른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았던 사람은 모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인가요?", "성경 자체가 사람이 쓴 것인데, 어떻게 완전무결할 수가 있죠?"

이렇게 어느 정도의 직관과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인간이 만든 유일신앙의 허술함(?)에 대해 감이 올 것이다. 동물학자이자 과학자인 이 책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장장 570여 페이지에 걸쳐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때론 익살스럽고 빈정대기도 하면서 신(God)은 허상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신이라는 망상

 <만들어진 신 - 원제는 The God Delusion : 신이라는 망상>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만들어진 신 - 원제는 The God Delusion : 신이라는 망상>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나는 인격신을 상상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신은 우리의 불충분한 감각으로 세계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외심을 품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 알베르트 아이슈타인

지름신이니 식신, 야신 등 신(神)의 존재가 너무 무겁지 않고 다양한 우리들에 비해 그 '존재'의 유무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것이 서양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다. 그들의 이러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서 고등한 과학적 문명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기질은 분명 과학적 진보와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냈지만 그 과정들과 역사적 사건들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애초에 진부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갔다. 종교 비평에서 문화비평, 권력, 인종, 인권, 여성, 소외 문제를 다룬 정치비평까지 아우르는, 과학자가 아니라 인문주의자가 쓴 것 같은 글 때문이다.

특히, 인류와 인류를 지탱하는 지구와 우주에 대한 창조론자들인 아브라함을 시조로 하는 3개 일신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배타적이고 악의적인 행위에 대한 고발이자 신의 부존재에 대한 증거가 들어 있는 과학적인 책이기도 하다.

신이라는 존재 또한 인간의 잘못된 창작물이라는 논리와 생각은 어찌 보면 신정주의(神政主義) 국가 미국에서 커다란 금기에 침범하는 용기 있는 발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원래 제목도 무척 도발적이다. The God Delusion 즉 '신이라는 망상'이다.

저자는 유신론자와 나머지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자간에 일어나는 충돌과 고통보다, 각자 다른 신을 섬기는 유신론자들 간에 일어나는 충돌이 세상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책의 목적이 이 글을 다 읽고 난 독자가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라고 서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 무신론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적극적인 전도 활동이라고나 할까.

믿음을 믿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화제작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등의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책을 쓰는 과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이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화제작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등의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책을 쓰는 과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이다. ⓒ 김영사

블레즈 파스칼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당신이 옳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것이고, 당신이 틀리다 해도 아무런 변화도 없을 테니까 - 본문 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관해 한 번 믿어 버리면, 설사 마음 속에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조그마한 의심이 생기더라도 자기가 이미 내린 그 믿음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 종교가 그렇고 정치,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모하고 맹목적인 믿음의 폐단은 비단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떠올려보면 자명하다. 공공연한 무신론자이기도 한 이들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라는 또 다른 근본주의적 종교를 만들고 극악함을 저질러 결국 세기의 악인이 되었다.

이렇게 일개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권력자나 초강대국 지배층의 무조건적 믿음이나 맹목적인 종교의 추종은 전쟁이나 침략과 같은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성경 위에 손을 대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미국 같은 나라가 그래서 걱정되는 이유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문을 품으라고 저자는 권유한다. 회의가 수반하는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그 아픔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역사 속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합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 합리성에조차 못 미치는 게 아니다 - 김규항

유일신앙을 접하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들에 대한 교목의 반응은 이랬다. "신앙은 머리로 생각하지 마라. 그러한 생각은 사탄이 권세하는 것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무시하고 맹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길잃은 양이 되거나 아예 떠나 버리는 탕자가 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생각한다는 구체적으로 의심한다라고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의심(혹은 회의)이야말로 사람만이 가진 보편적이고 매우 인간다운 점이라는 사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기독교가 종종 '개독교' 소리를 듣는 건 종교와 인간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는 근본주의적 확신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이 왜 필요하지? 왜 우리는 절대자를 원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내심 '이성적 사고'를 힘들어하고 거부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란 죽은 뒤의 내세 혹은 천상의 보상을 제시해 약자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지 않고 영원한 약자이도록 하는 보수적 기능을 하므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답게 사실만을 다룬다. 인간의 심성 자체에 종교적 욕구가 있다는 측면은 다루지 않는다.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다는 말은 종교에도 해당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원하기 때문에 종교가 생겼다'는 말이다. 레닌이 지적한 대로 원시종교는 인간으로서는 제압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인간 집단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현재 종교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당장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하면 다시 신에 귀의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쭐대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베스트셀러가 된 저자의 또 다른 흥미로운 책 두 권을 추천합니다.
1.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2. 창조론과 진화론의 양상을 밝힌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2007)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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