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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가에 서 있는 해바라기. 일주일 전에 촬영하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구나!” 했는데, 여름이 다시 시작한 것 같아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마을 길가에 서 있는 해바라기. 일주일 전에 촬영하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구나!” 했는데, 여름이 다시 시작한 것 같아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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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일)는 가을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였고 오늘은 말복(末伏)입니다. 시골길 모퉁이에 서 있는 해바라기를 보며 가을을 느끼는 시기이지요. 알알이 영그는 해바라기 씨알들이 떠꺼머리총각 얼굴에 촘촘히 박힌 여드름 같아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길가에는 가을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들이 활짝 웃고 있는데도 무더위는 고개를 숙일 줄 모르고 기세가 등등합니다. 날짜가 뒤로 가는지, 지구가 거꾸로 도는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 열대야 현상에 불쾌지수까지 높으니까 머리도 이상해진 모양입니다.  

주말에는 비가 내리고 더위도 주춤할 것이라는 기상대 예보도 있습니다만, 경험에 비추어보면 무더위는 한동안 지속될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더위가 9월까지 심술을 부리다 물러갔으니까요.

'불볕더위', '땡볕더위', '삼복더위' 모두 가시고, '늦더위'만 남았는데요. 당분간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예보는 여름이 새로 시작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정면대결, 즉 '맞짱'을 떠서 쫓아내고,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위는 피하기보다 '맞짱' 떠서 쫓아내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무쇠솥에서 밥이 끓고 있습니다. 귀찮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요. 생활화가 되니까 이제는 가장 중요한 일과로 자리잡았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무쇠솥에서 밥이 끓고 있습니다. 귀찮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요. 생활화가 되니까 이제는 가장 중요한 일과로 자리잡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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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을 해서도 아내가 전통 무쇠솥에 해주는 밥과 누룽지를 먹었습니다. 사시사철 밥을 해먹느라 고생한 아내가 고마울 따름인데요. 몇 년 전부터는 처지가 바뀌어 제가 지어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얻어먹었으니, 정성껏 지어 올려야겠지요.

누룽지와 숭늉의 구수한 맛은 나이가 들어도 잊을 수가 없더군요. 해서 아무리 무더운 여름에도 2-3일에 한 번 정도는 파란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가스레인지에 무쇠솥을 올려놓고 밥을 합니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건강도 지키려고 더위와 '맞짱'을 뜨는 것이지요. 

땀을 흘릴 것에 대비해서 수건도 하나 준비합니다. 옷도 팬티나 반바지 차림이지요. 아내와 둘이 지내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름은 대부분 속옷 차림으로 지내는데요. 피서지가 따로 없다면서 웃기도 합니다. 

밥물이 끓을 때까지는 수건으로 땀도 닦고, 솥 주변도 닦으면서 지켜봅니다. 밥솥을 올려놓고 컴퓨터를 하다가 몇 차례 태워 먹은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지요. 밥물이 끓으면 30-40분 정도 뜸을 들이는데요. 그때도 컴퓨터나 TV를 켜지 않고 오직 솥에다 정성을 쏟습니다.  

전기밥솥에 하면 편한데 고생을 사서 한다고 타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평소 지론이 '모든 음식은 정성이다!'이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무쇠솥에 지어먹으려고 합니다. 코를 즐겁게 해주는 구수한 냄새도 좋지만, 아내가 맛있다며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땀으로 범벅된 몸을 수건으로 닦고, 욕실에서 샤워하면 몸의 부패물이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데요. 그때 느끼는 성취감은 땀을 흘리며 밥을 해본 경험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입니다.

찜통에서 방금 쪄낸 호박잎.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박잎과 상추로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찜통에서 방금 쪄낸 호박잎.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박잎과 상추로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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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에 싸먹을 된장.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고 끓였더니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면서 구미를 당기더군요.
 호박잎에 싸먹을 된장.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고 끓였더니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면서 구미를 당기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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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의 일전이 끝나면 된장과 풋고추만 있어도 밥 한 공기쯤은 '뚝딱' 해치울 정도로 식욕이 왕성해지는데요. 그렇다고 호박잎과 된장찌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호박잎에 싸먹기도 하고, 비벼 먹기도 하는 된장은 여름철 식탁을 총 지휘하는 대장이니까요.

밥을 보온밥솥에 퍼놓고, 구수한 누룽지를 보관하는 것으로 더위와의 '맞짱'을 승리로 마감하고 먹는 일만 남게 되는데요. 된장찌개에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으면 칼칼한 맛이 더해지면서 구미를 더욱 당깁니다.

여름철에 즐겨 먹는 반찬으로 된장, 쌈장, 상추, 오이고추, 호박잎, 양념깻잎, 갈치속젓 등이 있는데요. 작년 여름에도 호박잎과 된장에 관한 기사(제목: 여름철 반찬 중에 '대장'은 '된장')를 올렸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름철 별미로 소화가 잘 되어 속이 편하고,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말은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2차전은 누룽지와 숭늉 끓이기

가스 불 위에서 끓는 누룽지. 잡곡밥 누룽지여서 맛이 찐한데요.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시원한 숭늉은 여름철 보약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가스 불 위에서 끓는 누룽지. 잡곡밥 누룽지여서 맛이 찐한데요.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시원한 숭늉은 여름철 보약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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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의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밥을 맛있게 먹고 나면 2차전이 이어집니다. 노획품이나 다름없는 누룽지를 끓여 숭늉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마에서도, 얼굴에서도, 가슴에서도 땀이 비 오듯 하지만 마음은 즐겁습니다. 몸도 개운하고요.

울고 싶으면 실컷 울고, 웃고 싶으면 실컷 웃어야 속이 시원하듯 더위 역시 구슬땀을 비 오듯 흘리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삼복더위에 야외에서 파란 불꽃이 올라오는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입가심으로 먹는 구수한 누룽지는, 흑미, 보리, 조, 수수 등이 들어가 더욱 고소하고 구수한데요. 누룽지 한 수저 떠 넣고 텃밭에서 금방 따온 오이고추에 갈치속젓을 얹어 먹으면 시원함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무더운 날일수록 젓갈의 깊은맛이 더하는 것 같더군요.

1개월 넘게 모은 누룽지. 손님이 없으면 저와 아내가 먹겠지만, 아직은 주인이 누군지 모릅니다. 언제 어느 때 손님이 방문할지 모르니까요.
 1개월 넘게 모은 누룽지. 손님이 없으면 저와 아내가 먹겠지만, 아직은 주인이 누군지 모릅니다. 언제 어느 때 손님이 방문할지 모르니까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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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누룽지를 그 자리에서 끓여 먹지 않고 잘 보관해둡니다. 갑자기 오신 손님에게 마땅하게 내놓을 반찬이 없을 때 누룽지를 끓여 마른 박대나 조기를 구워 찹쌀고추장과 함께 내놓으면 대부분 귀한 걸 먹었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누룽지를 조금 태웠다가 숭늉이 일찍 떨어지는 날 끓여 먹기도 하고요. 특히 입맛이 없거나 장거리 여행을 다녀와서 밥하기가 어설플 때 누룽지를 끓여 먹으면 구수한 맛이 더욱 찐하게 느껴져 색다른 별미가 됩니다. 속도 편하고요.

펄펄 끓인 숭늉은 병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음료수 대신 마십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도는 시원한 숭늉을 마실 때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으뜸 참살이 음료수로 추천하고 싶은데요. 집에 온 손님들에게 한 컵 내주면 무슨 차인데 이렇게 맛있느냐며 더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날이 무더우면 시원한 강가를 찾거나 에어컨 바람에 의지하는데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여름을 이겨냈던 옛날 어른들에게 배우는 마음으로 더위와 '맞짱'을 잘 떠서 건강도 지키고, 더위도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무더위, #무쇠솥,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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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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