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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방학을 보내며 내 결정이 정말 옳았다고 생각이 드는 일이 있다. 학기 중 교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방학을 어떻게 활용할까? 방학을 멀찍이 남겨 두었을 때부터 고민했다.
 
청소년 상당수가 게임중독에 빠졌고 지난해 초중고 자살이 전년에 비해 50% 가까이 급증했으며, 성범죄발생건수 또한 최근 4년에 비해 69%가 늘었다는 통계자료는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에게 남다르게 들린다.

 

테레사 효과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하버드 의대팀이 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의 전기를 읽힌 뒤 몸에 일어나는 반응을 쟀더니 면역기능이 높아졌다고 한다. 헌신적인 봉사 이야기를 통해서 착해지고 건강해졌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위인을 주제로 한 방학 특강 프로그램을 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고장 바로알기'란 테마를 정해 위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국문학도인 내가 존경하는 문학인이자 사회사업가인 펄벅 여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펄벅기념관, 펄벅 여사와 동시대를 살다간 독립운동가, 기업가, 교육자로 알려진 유일한 박사, 지난 4월 20일 가톨릭대 성심국제 캠퍼스에서 개소식을 가진 김수환 추기경 연구소를 택했다.

 

펄벅기념관은 내가 자주 찾는 곳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나머지는 초행이라 먼저 부천시 소사구 유한대학 내에 있는 유일한 기념관에 연락을 했다. "한 번 와 본 후 결정하라"는 관계자의 말에 사전답사를 했다.
 
한 위인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고,  캠퍼스의 싱그러운 정취를 더불어 느낄 수 있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학생들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기념관 가는 길에 있는 농구장, 대학 강의실 등을 거닐며 미래를 설계할 아이들 떠올렸다.

 

고통 받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대의 등불이자 일평생 사랑과 용서, 나눔과  희생을 실천하신 김수환 추기경 님, 작년 2월 16일 작고하신 추기경님의 삶과 정신을 알리고자 설립한 김수환 추기경연구소가 우리 고장 부천에 있는 가톨릭대에 설립된 것이 자랑스럽다. 사람은 보고 읽고 배우고 느낀 만큼 성장한다고 했던가? 바보처럼 나누고 사랑한 추기경님의 삶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연구소 방문을 요청한다고 했더니 환영한다고 했다.

 

부천시 청소년수련관 독서토론교실 학생 50명과 함께 할 나의 프로젝트를 수련관에 알렸더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차량을 제공해 주었다. 휴가시즌이라 빠지는 학생도 제법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거의 다 참가 의사를 밝혔다.

 

8월 10일, 11일 양일간 오후 12시 30분에 출발 펄벅기념관, 유일한기념관, 김수환 추기경연구소 순으로 투어를 하고 돌아오니 4시 30분이었다.

 
첫 코스였던 펄벅기념관에 대한 역사는 이렇다.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집필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한 펄벅 여사는 전쟁고아와 다문화 가정아동들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자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1965년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소사희망원을 열어 2천여 명의 다문화가정 아동들은 도왔다. 부천시는 펄벅 여사의 사회봉사정신을 기리고자 2006년 이 기념관을 열었다.

 

변주원 양(부천 상동초 5)은 "펄벅 여사님은 미국 사람인데도 6·25전쟁을 치른 후 어려웠던 우리나라를 도와 준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작가가 되고 싶은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님이라 더욱 관심이 갑니다. 우리 고장에 이런 위대한 분의 기념관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여사님의 삶을 생각하니 무더위도 거뜬히 견딜 수  있을 거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펄벅 여사의 정기를 담고 찾아간 곳은 유일한기념관. 공교롭게도 유일한 박사와 펄벅 여사는 친분관계가 있었다. 유 박사는 미국 유학시절 펄벅 여사를 만났다고 한다. 현 펄벅기념관 자리에 소사희망원 부지를 내 준 분이 유일한 박사였다.

 

9세 때 미국으로 유학, 27세에 미국에서 식품회사를 설립해 성공한 뒤 귀국, 병들고 어려운 국민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근대적 제약공장을 세워 제약입국의 의지를 실천한 분이다. 8·15 해방 전 미국 체류 기간 동안은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학교를 세워 인재육성에 힘쓴 유 박사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능력이 개발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잠재한 능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교육을 받자 못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유한대학 기획실 박종규씨는" 유 박사님은 '기업의 기능이 돈을 버는 데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 없다'며 돌아가신 다음에는 기업과 개인 재산 전부를 공익법인에 기증했다.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지수(부천 상동초 2)양은 "딸이 속상하고 슬퍼했겠다"고 답해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김수환 추기경연구소. 방학이지만 학문의 열기가 전해졌다. 대학교 입구에 들어서니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활동 모습이 화보로 꾸며져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 연구소 박성준 연구원의 안내로 연구소의 설립취지 및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특히 지난 4월 20일 있었던 개소식 장면을 DVD로 감상할 수 있어 생생했다.

 

연구소는 김 추기경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성숙을 염원하며 사회적 덕목으로 제시한 정직한과 준법정신,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계승 실천하는데 역점을 둔다. 각계각층 인사들로 구성된 사회 공익활동 네트워크 '프로보노카디널'운동을 전개해 김 추기경의 유지를 실천하는 사회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쓰인 추기경님의 육필 일기장을 선물로 받은 학생들 은 엄숙해졌다. 내내 가슴 속에 간직하겠단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추기경님의 숭고한 뜻이 한 알 한 알 밀알처럼 자라길 바랍니다"라는 박성준 연구원의 메시지가 헛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일한 기념관 #김수환 추기경연구소 #펄벅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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