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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어도 방과 후 교실 아이들은 학교에 나옵니다. 방과 후 교실 아이들에겐 따로 방학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벌써 개학일이 다가옵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장래의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항상 명랑하고 밝은 아인이가 이야길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제 꿈은 가수인데 동생 때문에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왜? 무슨 이유로?"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런 사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가수가 꿈이지만, 간호사 될래요"

아인이가 정성스럽게 약을 발라주고 있습니다.
▲ 동생의 상처 아인이가 정성스럽게 약을 발라주고 있습니다.
ⓒ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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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이가 초등학교에 들어오기 전, 삼촌이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삼촌이 회사에 간 사이 라이터로 휴지에 불을 붙여 놀았답니다.

"후~~"하고 불면 날아가면서 팔랑 팔랑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동생 앞에서 보여준다는 것이 재가 되어 사라지던 휴지가 그대로 동생 무릎에 달라붙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동생 무릎에 씻을 수 없는 흉터가 생겼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죽을 만큼 혼이 났다고 하면서 아인이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동생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간호사가 되어서 좋은 의사 선생님께 동생 흉터 없애 달라고... 그래서 간호사가 되어야 해요! 전 수술하는 게 무서워서 의사 선생님은 될 수 없지만 간호사가 되면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는 있잖아요! 꼭 간호사가 되서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 동생흉터 치료해 달라고 부탁 할 거예요!"

눈물을 글썽이는 아인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나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IMF가 터지면서 남편 사업이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나 빈 몸으로 시댁이 있는 인천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해 우리 막내(현재 중1)가 태어났습니다. 모두가 힘겨운 시절이었듯이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당 일을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늦은 밤일을 마치고 와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밀린 빨래를 하려는데 너무 졸렸습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빨래를 하려고 뜨거운 물을 부은 커피잔을 싱크대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때 이제 막 뭔가를 짚고 걷기 시작하던 막내가 "엄마! 무~" 하면서 싱크대 위에 있던 커피잔을 건드렸습니다. 커피잔에 있던 뜨거운 물이 순식간에 어린 막내의 얼굴 위로 쏟아졌습니다.

자지러지듯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못난' 엄마라 탓하며 울부짖으며 119를 부르고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다행히도 물에 데인 상처라 큰 흉터 없이 깨끗이 나았지만 막내를 볼 때마다  지금도 제 눈엔 데인 자국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입술은 퉁퉁 부어올라 젖을 먹일 수도 없었고 오른쪽 가슴과 팔에 희뿌연 상처가 한동안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습니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인데도,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데도, 생각만 하면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 아인이의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동생의 상처도, 아인이 마음의 상처도 다 나았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도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네요! 저도 동생의 상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콕콕 아파요!"

그렇게 말하는 아인이를 한참을 그냥 안아주었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하니 또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인이의 정성으로 동생의 상처가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소망합니다.
▲ 예쁜 아인이 아인이의 정성으로 동생의 상처가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소망합니다.
ⓒ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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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 후 모 제약회사에서 흉터제거하는 연고가 나왔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약국으로 달려가서 그 연고를 사들고 왔습니다. 깨끗하게 다 나을지는 모르지만 아인이 마음에 남은 상처라도 조금이라도 치유되길 바라면서 연고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인아! 이 연고를 발라주면 동생 상처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아인이가 매일 밤 동생에게 잘 발라 줄 수 있지?"
"네, 선생님! 이 은혜 정말 감사합니다."

마침 어린이집이 방학이라 누나 따라 방과 후 교실에 놀러온 동생에게 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아인의 마음에 남겨진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연고를 계속해서 사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인이의 정성으로 동생의 상처도 치유되고 아인의 마음의 상처도 말끔히 치유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 U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처, #동생, #화상, #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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