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되면 전국의 학교는 크고 작은 공사를 벌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방학 동안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공사를 하는 것이지요.
우리 학교도 지난 여름방학 동안 여러 가지 공사를 했습니다. 학교 운동장 스탠드 위에 햇빛을 가리는 가림막 공사, 예절실과 등사실과 행정실을 헐어서 식당을 만드는 공사, 배수로 공사, 소방공사, 그리고 마루바닥 공사를 했습니다.
① 햇빛도 가리지 못하는 가림막 공사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첫 번째 문제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새로 설치한 가림막이 햇빛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선생님이 가림막을 새로 설치했는데 햇빛은 그대로라고 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나가서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근사한 가림막은 새로 서 있는데 햇빛은 그대로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이 가림막 공사는 왜 한 것일까요? 기둥이 너무 높아서 비도 막아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구령대 위까지 가림막 공사를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공사는 8월 31일자로 정년퇴임한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의 업적 중 마지막 업적이라고 정년퇴임식에서 밝힌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 사실을 알고는 계실까요?
② 너무 미끄러운 식당 바닥 타일
그동안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교실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실로 밥과 반찬을 나르지 않고 아이들이 내려와서 먹을 수 있게 식당 공사를 했습니다. 식당 바닥에는 타일을 깔았는데, 딱 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미끄러운 타일입니다. 순간 바닥에 물을 떨어뜨리거나 국물을 쏟는다면, 아이들이 미끄러져서 넘어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겨울에 신발에 눈을 조금이라도 묻히고 들어선다면 단번에 미끄러져서 넘어질 게 뻔합니다.
활동력이 강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사용할 식당에 왜 이렇게 미끄러운 타일을 붙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새로 만든 식당에 들어선 교사들은 누구나 제일 먼저 반짝반짝 빛나는 미끄러운 바닥을 걱정합니다.
방학 동안 타일을 붙이기 직전에도 이런 지적을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개학한 뒤에 와서봐도 그 타일이 그대로 깔려 있었습니다. 행정실에 얘기하니 그렇잖아도 미끄러워서 그 위에 카페트를 깔려고 한다고 합니다. 식당 바닥에 타일을 까는 것은 위생상 청소하기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타일 위에 카페트를 깔면 매우 비위생적일 뿐만아니라, 청소하기도 불편합니다. 또 처음부터 미끄럽지 않은 타일을 깔았으면 카페트를 사는 비용이 추가되지 않고 관리하기에도 편할 뿐더러 위생적이었을 겁니다. 왜 처음부터 미끄러운 타일을 깔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③ 토할 것 같은 시너 냄새이렇게 방학 중에 공사를 하고 개학을 하면 한 달 넘게 교실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새로 설치한 공사 자재나 접착제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재가 친환경이라고 해도 공사가 끝난 뒤에 여러 가지 환경호르몬 물질 때문에 교사와 아이들이 고생합니다. 특히 천식이나 아토피, 비염이 있는 교사와 아이들은 더 고생입니다.
원래 우리학교는 여름방학 때 35개 교실에 마룻바닥 공사를 하려고 했습니다(예상 공사비는 교실당 1000만 원). 그런데 기자가 왜 멀쩡한 마루바닥을 뜯어내느냐고 따져서 3개 교실만 하게 됐습니다. 문의 과정에서 교육청 담당자는 마루바닥 재료가 친환경자재라며 "공사한 뒤 환경호르몬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요. 마룻바닥 공사를 한 교실의 복도를 지나가는데도 숨을 쉬기가 힘듭니다. 마룻바닥 공사만으로도 숨을 쉬기 힘들었는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개학하고 그 이튿날 몰딩 부분 마무리로 시너를 섞은 니스를 칠한 것이었습니다. 교실 안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교실만 니스를 칠했는데도 전체 학교가 모두 시너 냄새로 가득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골치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유독 물질인 시너를 섞은 니스를, 그것도 개학한 뒤에 칠하다니…. 공사를 하는 사람도, 공사를 관리하는 사람도 모두 제 정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교실은 담당 교사도 알지 못한 채 공사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④ 엉터리 공사 마무리
이렇게 야단법석으로 공사를 하고 났는데도 그 마무리가 말끔하지 않습니다. 대패질한 것도 거칠고, 실리콘 마무리도 깨끗하지 못하고 엉성합니다. 아마 내 집 공사를 이렇게 했다면 누구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아이들이 지내는 시설은 다치지 않게 모서리를 둥글려야 하는데, 몰딩이 꺾이는 부분을 직선으로 잘라 놓았습니다. 이러면 모서리가 날카로워서 아이들이 다치기 쉽습니다.
또, 공사는 개학 전에 반드시 끝내서 아이들 수업에 지장이 없어야 하는데, 대부분 학교 공사는 개학 전에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공사 뒤 청소와 집기를 제자리에 두는 것 같은 공사 뒤치다꺼리는 모두 교사와 학생들의 몫입니다.
특히 학교 공사를 하고 나면 환경호르몬 물질은 물론이고 거의 한 달 동안을 쓸고 닦아도 공사할 때 생긴 먼지가 가시지 않습니다. 교사와 아이들은 역겨운 냄새와 먼지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이것이 공사 뒤의 학교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1년에 학교마다 쏟아붓는 돈이 억 단위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늘 부실합니다. 학교 공사로 아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학교 공사인지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따져 봐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공사를 발주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는 교육청 담당자와 공사현장을 잘 관리해야하는 학교 관리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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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공사중, 개학 전에 끝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학교 공사가 진정한 교육환경을 위해서 진행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켜본 학교 공사 문제를 짚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