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야말로 교권이 추락하며 빈사 상태의 공교육이 임종을 맞고 있는 듯하다. 학부모가 학교로 다짜고짜 찾아와 교사의 멱살을 잡고 아이들이 교사를 손찌검하더니만, 이젠 교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어야 할 학교장에게 교사들이 되레 회초리를 맞는 처지가 됐다. 이쯤 되면 교사의 체벌과 아이들끼리의 학교폭력은 차라리 지엽적인 문제인 듯 싶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교사가 그것도 아이들이 보는 데서 매를 맞았다고 한다. 요즘엔 교사가 아이들을 꾸짖으려 해도 그들의 자존심을 감안해 따로 조용히 불러 잘못을 지적하는데, 하물며 어린 아이들 앞에서 매를 맞았다는 건 비인간적인 모욕이다. 학교장의 회초리에 주눅이 든 채 서 있는 교사의 모습을 본 아이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일단 냉정해지자. 충격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가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매질하는 현실에서, '지도'라는 이름으로 학교장이 교사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게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 하나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른과 아이라는 것뿐이다. 여든이 넘은 학교장의 입장에서 20~30대 교사라고 해봐야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십대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체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것

 

문제는 학교 내에서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문화가 뿌리 깊다는 데에 있다. 이번 경우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의 복장이 불량해도, 성적이 나빠도, 머리가 길어도, 급식소에서 새치기를 해도, 담배를 피우고 욕설을 해도, 심지어 휴지를 버리고 바닥에 침을 뱉는 것까지도 잘못을 깨닫게 하고 교정하는 데 회초리는 만병통치약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교사의 생활지도는 체벌과 동의어이고 아이들도 걸리면 시키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엎드린 채 매를 기다린다. 아이들끼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도, 심지어 '짱'을 뽑는 동급생끼리의 서열도 모두 주먹, 곧 폭력으로 결정된다.

 

옛날보다 심해졌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강산이 수차례 변했어도 폭력적인 일상만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서조차 독버섯처럼 퍼져있다. 교육을 받는 사람도, 교육을 행하는 사람도 오랜 기간 동안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길들여진 탓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들먹이지 않아도 체벌은 마땅히 학교에서 사라져야 한다. 체벌은 어쩔 수 없다며 두둔하는 이들도 기실 어떻게 하면 폭력이 이미 일상화된 학교에서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체벌 없는 학교로 '연착륙'시킬 것인지를 고민하지, 이성을 가진 인간일진대 체벌을 무작정 옹호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결국, 아들 뻘인 교사들에게 회초리를 든 그 노쇠한 학교장 하나 처벌한다고 해서, 들끓는 여론을 순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학교 내 폭력적인 일상을 성찰하고 체벌을 없애는 데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져 공분을 샀던, 이보다 훨씬 더 '엽기적인' 체벌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그때뿐, 다시 학교는, 우리 교육은 '평온'해졌다.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학교 내 체벌을 뿌리 뽑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과 같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두려운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의 거친 눈빛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그 학교장과 그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가엾은' 교사들은 그렇다 치자.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학교가 교장과 교사들도 서로 때리고 맞으며 생활하는 곳임을 보고 느꼈을 아이들의 거친 눈빛이다. 무릇 제대로 된 어른들이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런 장면을 통해 폭력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둔감해질 수 있다는 걱정을 우선 해야 한다.

 

동료 교사로서, 교육자이기는커녕 이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학교장에게 회초리를 맞은 교사들에게 당부한다. 그 순간의 고통과 치욕,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부르르 가슴 떨리지만, 그저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는 우리 교육의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이 모욕적인 기억을 교육으로 승화시켜 당장 근무하는 학교부터 왜 체벌이 사라져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달라. 기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행여 학급의 '불량한' 아이들 때문에 담임인 자신이 학교장으로부터 처벌 받았다고 여긴 나머지 아이들을 향한 미움과 체벌로 앙갚음해서는 절대 안 된다.

 

20년도 더 지난 학창시절에 겪은 일이다. 선배 교사에 혼쭐나는 후배 교사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아이들 이야기다. 우리 반은 유난히 말썽꾸러기가 많아, 싸움이 일어나 크게 다치는 일도 잦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유리창에 깨지는, 자타공인 '사고뭉치' 학급이었다. 지각과 두발, 복장 불량 따위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들은 '두 번'의 체벌을 견뎌내야 했다. 담임교사는 교장실은 물론 복도에서도 다른 선배 교사들로부터 학급 관리 못한다고 욕먹기 일쑤였고, 간혹 그들로부터 학생들이 뻔히 보는 데에서 손찌검을 당하기도 했다. 교사들끼리도 욕설이 오가고 손찌검 당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같은 선생님들이지만, 지방 소도시의 학교여서 그런지 교사들은 대개 고등학교, 대학 선후배로 엮여 있어 형님, 동생하며 나름 '서열'이 있었던 것이다. 함께 근무하다 선배들로부터 잘못 보이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조직의 쓴맛'을 각오해야 했다.

 

"'담탱이'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혼쭐이 난 다음, 담임교사는 그 '책임'을 물어 반 아이들 전체를 을러댔다. 말썽을 부린 아이만 따로 불려가 혼난 게 아니었다. 흐트러진 반 분위기 때문이라며 모두의 책임이라고 호통을 쳤다. 말하자면, 사고뭉치 학급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줄서서 매를 맞아야만 했다.

 

사고가 터지면 어김없이 학생부 주임교사 등 다른 교사들로부터 한 번, 또 우리를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담임교사로부터 또 한 번 기합을 받고 매를 맞았다. 그때마다 아이들끼리 '담탱이(담임교사)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며 숙덕거렸다. 하도 맞아 '맷집' 탓인지 나중에는 그를 비웃으면서 매를 맞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해 이후 난 그를 선생님으로 불러주기는커녕 복도에서 만나도 가벼운 목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했으니 그의 눈 밖에 나 무던히도 많이 맞았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다. 단지 그를 증오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교사라는 직업조차 싫어지게 됐다. 적어도 그땐 내가 교사가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사실 그때의 충격으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피교육자인 아이들 위에 군림한 채 체벌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를 처음으로 고민했다. 성적은 끝 모르게 곤두박질치는 방황의 나날이었다. 나쁜 기억 때문인지 학교에 코흘리개 아이들만도 못한 함량 미달의 양아치 같은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사랍시고 그들로부터 당하는 체벌은 교육이 아니라 그저 폭행이라고 여겼고, 매의 대수만큼 시나브로 적개심만 커져갔다.

 

학창시절 흠씬 두들겨 맞은 체벌의 추억은 무슨 과목을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는지에 대한 기억보다 또렷하게 각인됐다. 문제는 그것이 머리와 가슴이 아닌, 몸으로 기억되었다는 점이다. 절대로 그 따위의 교사는 되지 않겠다고 수천수만 번 다짐했지만, 교사가 된 후 손에는 매가 들려 있었다.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닮아간 것이다. 학창시절 입은 체벌의 충격과 상처를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아이들 먼저 어루만져주시라

 

회초리를 맞은 교사들에게 분명 잔인한 말이지만, 당혹스러운 그 상황에서 아무 말 못한 채 지켜봤을 아이들은 교사들보다 두 배, 아니 열 배는 더 괴로웠을 것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확신하건대, 아이들이 받은 충격을 다독이지 않으면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길들여져, 강산이 또 몇 번 변한다 해도 지금과 같은 폭력적 일상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당장은 회초리 든 학교장의 얼굴에 사직서 내던지며 후련하게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싶을 테지만, 다시 한 번 냉정해지자. 그만 둘 때 그만두더라도 어쨌든 교사로서 다시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놀란 가슴과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 일은 아이들을 폭력적인 일상에서 격리시키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교사로서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과도 같은 행위다.

 

체벌에 관한 한, 철부지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교사로서 내 자신을 어떻게 통제할까를 우선 성찰해야 한다. 아이들과 만남에 있어서 체벌에 대해 스스로 관대하지는 않는지, 체벌을 통해 대체 무엇을 이루려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것은 학교장으로부터 봉변을 당한 교사들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교장 교사 폭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