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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의 한 장면  웃음을 자아낸 두두리 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한여름밤의 꿈의 한 장면 웃음을 자아낸 두두리 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 나경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초연된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그리고 21세기, 그의 명작 속 요정들이 순 한국식 '도깨비'로 변신을 해 호주 멜번의 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극단 여행자'가 멜번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미리 꾸게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열린 이 공연은 나흘 내내 아트센터 플레이 하우스 900객석을 꽉 채우는 쾌거를 올리며 계속되었다. 한국어로 공연을 하고, 전광판에 영어 자막이 나갔으나, 대사 사이사이에 호주만의 영어 표현을 넣으면서 거의 대부분 호주인으로 가득 찬 객석에서 끝없이 웃음을 끌어냈다.

극중 '가비'가 '방울 꽃 향기의 마법에 걸려 반하게 된 아주미'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애교를 부리자 '아주미'는 영어로 "Fish and Chips ! Vegemate!"라고 대답을 하는 대목에서는 관객들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극단 여행자 '한 여름 밤의 꿈' 한 장면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면
극단 여행자 '한 여름 밤의 꿈' 한 장면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면 ⓒ 나경운
생선과 감자 튀김(Fish and Chips) 은 호주를 대표하는 먹을거리이며 베지마이트(Vegemate)는 식물 추출액으로 만든 호주 특유의 잼이다. 어떤 이는 베지마이트에서 된장, 청국장의 향을 맡는다고 할 정도로, 호주만의 독특한 음식인 것이다. 이렇게 재치있게 현장감을 살리며 진행된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은 빅토리아 주 최고의 일간지 <The Age>에서도 대서 특필을 하는 등 최고의 찬사를 받은 공연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세계를 향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닙니다. 외국 작품이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작품으로, 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준있는 작품으로 한 번 잘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지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국내 반응이 뜨거웠고, 그렇다면 한 번 세계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해 보자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거죠."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대표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한 여름 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세계 각국 안 가본 곳을 손에 꼽는 것이 더 빠를만큼 장구를 메고, 작은 병풍을 짊어지고 이 나라 저 나라의 무대를 돌고 있는 중이다.

한여름 밤의 꿈을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하여 공연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한국 '옛날 이야기'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연극적 상상력에서 기인했다. 사랑의 꽃 향기로 인해 혼란이 일어나는 것 등은 원작에 충실했지만, 단순히 대사를 주고 받는 연극이 아니라 한국 장단이 두드러지는 음악과 무용을 더했다. 거기에 희극적 요소가 곁들여진 '몸 동작'이 그것을 보는 관객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극단 여행자 대표이면서 연출을 맡고 있는 양정웅씨는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희곡작가로, 배우로 그리고 연출가로 무한대의 활동을 펼치며 1989년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24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스페인의 Lasenkan 극단에 들어가 세계 풍물로 눈을 뜨는 시간을 갖기도 했던 양 대표는 서울로 돌아와 1997 년 '극단 여행자'를 설립했다. 자신의 극단을 만든 뒤엔 젊은 배우들을 대거 등용하며 순수 창작극을 하는 것과 더불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대작들을 한국식 눈으로 해석 해 재창작 하는 작업을 시작했었다.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 '호응해준 관객들에게 감사할 뿐' 이라는 연출가 양정웅 대표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호응해준 관객들에게 감사할 뿐' 이라는 연출가 양정웅 대표 ⓒ 나경운
"고정관념을 깨야 창작이 나온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사실 그게 또 그렇게 쉬운 건 아니죠. 예를 들어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적은 수의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때로는 무대 한켠에 앉아 장구와 북을 들고 연주만 하는 파트를 담당하기도 해요. 이 연극이 처음 무대에 올려졌을 때만 해도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의외로 관객들 반응이 괜찮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도 '도깨비' 역을 맡은 배우들과 '아주미'가 객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대사를 이어가고, 또 야광 팔찌, 목걸이로 '도깨비 불'을 표현 한 후 주머니에 가득한 그 '도깨비 불'을 관객들에게 던져 나눠주는 장면이 연출되는 등, 관객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효과를 충분히 살렸다.

객석의 한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잡혀 올라가 뒤로 돌아서서 뭔가 얘기를 듣다가, 그동안 객석을 향해 도깨비 불 목걸이에 온갖 장난질을 한 배우가 그걸 그 관객에게 걸어주는 등, 배우와 관객이 서서히 '함께' 즐기는 것을 유도해서 또 한번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런 시도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관객을 즐기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는, 말하자면 '연극의 보편성'을 이미 갖고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며 가장 한국적인 요소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매력있는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이미 그 뚜껑을 열기 전에 큰 기대를 했었다는 아트센터의 프로그램 매니저 Rob Gebert 씨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느끼고 웃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물론 영어자막이 전광판에 뜨지만,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이 한여름 밤의 꿈 내용을 대충 알고 오는데다 한국의 가락과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 곳곳에 잘 배치되는 소도구, 그리고 춤이 관객들이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Rob Gebert 아트센터 프로그램 매니저  "분명 공연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앞으로도 한국의 좋은 작품들을 이곳에 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Rob Gebert 아트센터 프로그램 매니저 "분명 공연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앞으로도 한국의 좋은 작품들을 이곳에 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 나경운
2003년 토쿄 공연을 시작으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폴랜드, 영국, 쿠바, 엘살바도르, 독일, 인디아, 프랑스, 홍콩, 대만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의 최고 극장에 올려진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 부채춤, 장고춤, 사물놀이가 '한국과 동양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준비를 한 호주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이번 공연은 그런 이해가 없는 사람들의 벽까지 확실하게 무너뜨리면서 한국적인 매력을 알게 해 준 멋진 기획이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을 확실히 무너뜨린 작품", "환상적이고, 힘차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작품" 등 엄청나게 큰 찬사로 유수 외국 신문들에 리뷰가 실리기도 했던 이번 작품은 또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상을 받았을 정도이다.

아트센터 옆 야라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겨울 끝자락이 멈칫거리는 것 같은 호주 멜번의 명소 아트센터에 울려퍼진 '대한민국,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호주인들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현지 한인들에게는 어깨 으쓱거려지는 자랑거리를 남겼다.

양정웅 대표를 비롯해 두두리 역의 정우근, 김상보, 항 역의 김진곤, 벽 역의 이은정, 루 역의 장현석, 익 역의 정수연, 가비 역의 김준호, 돗 역의 김지연, 아주미 역의 정아영씨 등은, 그렇게 감동을 '한여름밤의 꿈'처럼 선물로 주고 다음 공연인 '햄릿'을 위해 아델레이드를 거쳐 호주를 떠난다. 그들은 떠나지만, 많은 이들은 봄에 미리 꾼 '한여름 밤의 꿈'을 계속 기억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말, 우리 가락으로 만든 뮤지컬, 호주에서도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섰다.



#한여름밤의 꿈#극단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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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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