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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처음으로 적용된 초등학교 검정교과서.
 올해 처음으로 적용된 초등학교 검정교과서.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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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등교사의 81.4%인 12만7천 명은 지난달 26일 디지털 수업자료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S업체로부터 일제히 전자메일을 받았다. 이때는 초등학교에 올해 처음 도입된 영어, 체육, 음악, 미술, 실과 검정 교과서를 학교별로 고르는 절차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검정 교과서는 국가의 검정심사에 통과한 도서로 과목별로 3~14종류가 제작된다. 전국 5795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과서선정협의회를 열어 올해 10월 초까지 교과서를 선택한다.

그들은 왜 전자메일을 보냈을까?

이런 미묘한 시기에 S업체가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 업체는 메일에서 "2011학년도부터 검정으로 전환되는 5, 6학년 음악, 미술, 체육, 실과 교과서와 3, 4학년 영어 교과서에 대해 해당 출판사와 합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탑재하기로 결정하였다"면서 자신들이 고른 특정 출판사의 이름, 교과서 표지, 저자 등을 공개했다.

이 업체는 지난 1일에도 교사들에게 보낸 전자메일과 거의 같은 내용의 공지문을 자사 사이트에 올렸다가 교과부의 요구를 받고 자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6월 23일 이 업체는 '공지사항'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 탑재 사실을 안내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해놓았다.

"내용이 우수할 것으로 판단되는 검정 교과서를 선정하여 내년도 서비스에 적용함은 물론, 선생님들께서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시는 일정에 앞서 충분히 교과서 선정에 참고하실 수 있도록 탑재 교과서(출판사)가 결정되는 대로 사이트와 이메일을 통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S업체가 지난 8월 26일께 전체 13만여 명의 초등교사에게 보낸 전자메일.
 S업체가 지난 8월 26일께 전체 13만여 명의 초등교사에게 보낸 전자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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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업체가 지난 6월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놓은 공지사항.
 S업체가 지난 6월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놓은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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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출판사 "S업체가 교과서 선정 대가 무리한 요구"

학교별로 교과서를 고를 때 영향을 주려고 한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이 같은 S업체의 행동에 대해 일부 초등교사들과 검정교과서 출판사들이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불공정행위'라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 Y초 박형준 교사(생활체육부장)는 "전국 97%의 학교에서 S업체 자료로 수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특정 교과서 탑재 계획을 알린 이유는 학교의 검정교과서 선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제로 일선학교에서는 이 업체가 탑재하기로 한 특정 출판사 교과서로 결정하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I초 송아무개 교사도 "특정 출판사와 유착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중고교 검정교과서 시장 규모는 1100억 원 수준. 교과서 선정에 따른 참고서 시장까지 합하면 약 1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교과서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줄곧 교과서 시장 장악을 위한 업체 사이의 과열 경쟁이 말썽이 되기도 했다.

S업체의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출판사들도 이번 사태를 '검정 교과서 선정에 대한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자체 법률 검토를 벌이는 한편 교과부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교과부가 각 학교에 보낸 '검정교과서 선정 매뉴얼'을 보면 "교사모임 등이 인터넷을 통하여 특정 검정도서를 간접 홍보함으로써 선정의 공정성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발견될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거 신고 처리 된다"고 적혀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우리는 S업체의 행위에 대해 교과서 선정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형적인 불공정행위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중견 간부는 "S업체가 우리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과서를 선정해주는 대신 자신들이 만들 콘텐츠 비용을 대라고 했고, 또 다른 무리한 요구도 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S업체 일부 시인, 하지만 "전자메일은 기업의 정당한 활동"

이에 대해 S업체는 '콘텐츠 비용 요구'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초등 교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특정 교과서를 안내한 것은 '회원(초등교사)들의 요청에 따른 정당한 행동'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 업체 고위 간부는 "검정교과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재원이 풍족한 거대 출판사에 협조를 구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더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한 바는 없으며, 오히려 어떤 출판사는 자신들의 검정교과서 전 과목을 우리 사이트에 탑재해줄 것을 강권해 더 이상 협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중견 간부는 "전자메일을 보낸 것은 우리 회원들에게 서비스 계획을 공지한 기업의 정당한 활동"이라면서 "교과서 선정이 이미 끝난 것으로 오인해 개학에 맞춰 메일을 보내고 공지를 했을 뿐 초등 교사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처럼 검정 교과서 시스템에 구멍이 났는데도 덮기에 급급한 교과부의 태도다. 교과서 관련 부서 관계자는 "초등교사들이 얼마나 자긍심이 높은 분들인데 제3자인 S업체의 전자메일에 좌우되겠느냐"면서 "현재로선 그 업체의 메일과 공지 내용이 학교별 교과서 선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앞으로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적법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초등교과서#검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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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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