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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이 모험기' 시급한 사업이었나?

 

부평구가 2008년 '굴포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부터 말이 많았던 '버들이 모험기'가 결국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구는 자연형 하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굴포천을 공공예술로 재창조하는 '굴포천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다. 사단법인 문화생성연구소 아이닥(IDAC)이 2008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부평구청장과 간부 공무원들에게 '굴포천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

 

이 프로젝트는 굴포천 중 갈산동 4㎞구간을 방문객들이 '버들이 모험기'라는 동화를 따라 탐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것이다. '버들이 모험기'는 주인공인 버들이의 성장기와 어둠의 마왕을 물리치고 빛을 찾아 떠나는 모험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된 동화다.

 

이 굴포천 프로젝트를 제안 받은 구는 각 부서에 '버들이 모험기'를 주제로 한 테마사업을 지시했다. 이에 부평구문화재단에서는 굴포천 프로젝트에 대한 용역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사업비를 '2009년도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평구의회는 예산안 심의 시 '해당사업을 추진하려면 문화체육과에서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예산을 삭감했다.

 

또한 도시경관과도 '버들이 모험기'를 주제로 한 벽화사업 등을 준비했으나, 이 역시 의회가 예산을 삭감했다.

 

5대 구의원을 지낸 전현준 전 의원은 "버들이 모험기가 부평구의 역사와 정체성, 지역성에 비췄을 때 별로 상관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문화재단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해당사업은 끝난 줄 알았다"며 "그런데 버들이 모험기를 주제로 한 조형물이 지난해 지방자치경영대전에 출품됐고, 갈산동 사근다리 입구에 설치돼있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갈산동 동남아파트 인근 사근다리 입구에 있는 '버들이 모험기' 조형물은 올해 2월 설치됐다. 지난해 9월 지방자치경영대전에 출품했던 조형물이 한동안 구청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가 사근다리 경관개선사업을 하면서 그리로 옮긴 것이다.

 

2008년 결산서를 보면 '버들이 모험기'사업은 상당히 급한 사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는 2008년 11월 20일 '상꾸지다리와 사근다리 경관개선사업 실시 설계비' 7900만원을 예비비에서 지출했다.

 

이를 두고 참여예산센터 박준복 소장은 "예비비는 태풍 '곤파스'피해처럼 천재지변 등을 대비해 마련해 두는 예산으로 중요하고 급한 일에 사용해야한다. 과연 그 정도로 급한 사업이었는가? 그것도 실시 설계비를 예비비로 지급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자치경영대전에 출품하는 과정도 상식적인 예산 집행과정을 벗어났다. 구는 지난해 9월 코엑스에서 열린 지방자치경영대전에 출전하려했으나 예산이 없자 시설관리공단 운영비 등 3900여만원의 예산을 전용해 대회에 참가했다.

 

이에 대해 구 기획홍보실은 "예산이 없어 불가피하게 전용할 수밖에 없었다. 3900여만원은 대회 참가에 따른 임대료와 부스 설치비 등에 사용했다"고 했고, '버들이 모험기' 조형물 제작비를 집행한 도로과는 "사근다리 경관사업에 공공문화예술을 접목하려했던 터라 앞서 제작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에 휩싸인 '버들이' 제작비…구청은 "몰라"

 

구는 올해 2월 사근다리를 준공하면서 '버들이 모험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이 조형물 제작과 설치에만 약 7800여만원이 소요됐다.

 

하지만 제작비용 지급과정이 석연치 않다. 7800여만원이 제작비용과 설치비용으로 사용됐지만 제작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한 푼도 못 받은 이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우선 '버들이 모험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1차적으로 '비류 백제'를 모태로 '버들이 모험기'라는 환타지 동화를 지은 손아무개 작가가 있고, 이 동화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든 김아무개 작가가 있으며, 형상화한 캐릭터를 동상으로 만든 박아무개 작가가 있다. 모두 '아이닥'과 관련돼 있는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최종 작업자인 박 작가만 1800여만원을 받았을 뿐, 손씨와 김씨는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손 작가는 2008년 6월께 '아이닥' 대표로부터 '버들이 모험기'를 주제로 한 동화 작성을 제안 받았다. 손 작가는 '아이닥'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동화가 완성되면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대표의 '구두계약'을 받아 들여 굴포천을 답사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440쪽 분량의 판타지 동화를 완성했다.

 

손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동화를 '아이닥'에 넘겼다. 440쪽 분량에 해당하는 이 책의 원고료는 통상 500만~1000만원 수준에 이른다. 이 동화를 바탕으로 지금의 조형물이 탄생했고, 구는 그 조형물을 가지고 지방자치경영대전에 나갔다.

 

하지만 손 작가는 시간이 흘러도 책 출판에 대한 얘기가 없자, 이용당한 꼴이 됐다고 생각했다. 손씨는 "잠자코 있으려 했으나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 화가 치민다. 동소정사거리지하차도 벽화예술 사업에 참여했던 한 작가도 시나리오를 써줬지만 한 푼도 못 받았다"며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처지가 다 어렵기 마련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돈에 대한 마련은 없다. 다만 잘못된 관행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 동의 없이 공사, '저작권 침해' 소송 가능

 

이번 일로 사단법인 문화생성연구소 '아이닥'은 올해 초부터 내홍에 휩싸였다. 손 작가 등은 '아이닥'을 상대로 내역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이닥'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법인 감사까지 나서 총회 개최와 자료(법인 회계내역) 공개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 감사 손아무개씨는 "사단법인은 매년 총회를 하게 돼있는데 2008년 12월 총회를 이후로 열지 않았다. 그래서 총회 개최와 자료제출을 요청했는데, 답이 없다"고 했으며, 또 다른 법인 이사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을 지역 문화예술계가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사를 발주한 부평구는 공개입찰을 통해 공사를 진행했고, 낙찰된 건설사가 공공예술을 설계와 시공에 반영하면서 하청을 준 것이라,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하청업체 내부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구 관계자는 "견적서를 받아 그 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 문제될 것 없으며 그 외의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현재 홀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작권 소송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동소정사거리의 벽화는 그곳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시나리오를 차용해 공사가 진행됐다. 이 경우 구와 시공사는 저작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버들이 모험기' 조형물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고, '부평과 무슨 상관이 있지?'라는 반응도 있는 반면,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와 사진 촬영을 즐기는 젊은 세대도 있다. 또 '조형물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버들이 모험기는 인천(=미추홀)에 정착한 비류백제를 모태로 판타지화 한 이야기다. 비류백제에서 비류의 '류'자를 버들'류'자로 해석 해, 버들이 모험기가 탄생한 것. 그러나 비류백제는 역사적으로 그 위치를 비정했을 때 현 인천도호부가 있는 남구 문학산 일대에 해당한다.

 

오히려 계양산에 있는 계양산성에 출토 된 기와나 유물을 볼 때 현 계양구와 부평구, 부천시 등 부평도호부 일때는 한성백제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역사학자들의 공통 된 견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고찰 했을 때도 이렇다 할 관련이 없는 '버들이 모험기'가 부평에서 탄생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버들이 모험기#비류백제#한성백제#부평도호부#공공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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