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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석 명절이다 보니 마음만 급했다. 고향이 천안이라 추석 전날인 21일 이른 새벽에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천안에서 내려 바로 잡아 탄 버스창가에 비가 살짝 부딪쳤다. 우산을 가지고 왔지만 써도 안 써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가 오는둥 마는둥 했다. 사형제 중 셋이 다 외지로 나가고 막내가 집을 지키고 있는 시댁으로 들어섰다.

 

전을 부치고, 쇠고기 적거리를 손질하며 이것 저것 준비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서울·경기에 비가 퍼붓듯이 내린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특히 우리 동네 양천구와 강남구 등지에서 비가 쏟아 붓듯이 내린단다. 하지만 얼마가 오겠나 싶어서 추석준비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진동으로 해놓았던 핸드폰이 앞치마를 흔들었다.

 

"안녕하세요?…신정동, 신월동에는 물이 잠긴 곳이 많다고 해서… 비 피해는 없나 걱정돼서요. 텔레비전에서 아파트도 정전 되고 잠긴 곳이 많다고 하던데…"

 

2009년부터 우연히 친구소개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돕는 모임'의 회원이 됐다. 생존해 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께 회원들과 함께 가끔 전화도 드리고 작은 정성도 보내곤 하는데 이런 인연으로 알게된 이진주(가명) 할머니가 딸 걱정하는 친정엄마처럼 전화를 하신 것이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전화까지 해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그곳도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어떠신가요?"

 

손자와 함께 지하에서 어렵게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폭우가 내릴 때 더 위험 하건만 오히려 내 걱정을 하며 전화를 주신 것이다. 세상에 내 부모가 아닌데도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마음이 흐뭇했다.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정신대' 할머니, 독거 노인 할아버지가 전해준 따뜻한 마음

 

열 살 어린 막내 동서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며 분주히 다닐 때 걸려온 전화 한 통화가 또다시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동사무소 쥬?"

 

나는 보건소에서 동사무소로 출근해 방문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내가 담당하고 있는 70대 후반의 허약 노인인 김동수(가명) 할아버지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것이다.

 

"네, 오늘 동사무소는 안하는데요? 아~ 안녕하세요? 웬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니신가요?"

 

익숙한 목소리의 김동수 어른신이 우리 집이 양천구라는 것을 기억하고서는 걱정이 돼서 전화를 넣은 것이다. 불쑥 내 핸드폰에 전화를 한 것이 쑥스러운 듯 "비가 많이 온다는 디그냥, 해봤슈~ " 한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의외의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 준다.

 

평소에는 자주 찾아가도 별 내색을 않던 분이 마음속에 그래도 담당 방문간호사라고 걱정돼 전화를 넣어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른신도 추석 잘 보내세요. 저의 집은 괜찮아요. 그런데 집에서 아이들 소리가 나네요?"

 

평소에는  지하 단칸방에  혼자 사는데 추석명절이라고 경제적으로 힘든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리라. 자신 없는 독거노인의 힘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평소와 다른 흐뭇함이 묻어있는 기운 있는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묻는다.

 

어린 시동생에게 방앗간에 맞춰 놓은 솔향기 듬뿍 든 송편을 찾아오라 시키고 저녁에 식구들이 먹을 불고기를 재우느라 몸과 마음은 분주했지만 마음 한편엔 '또 하나의 가족'으로 부터 받은 사랑으로 흐뭇함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차올랐다.


#방문간호사#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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