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고향을 사랑했던 세계적인 화가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의 미공개 작품들이 수덕사 고암 선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응노 화백은 생전의 작품과 글들을 통해 고향, 특히 정서적 토대를 이룬 수덕사와 수덕여관(예산군 덕산면 소재)을 매우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멀리 프랑스에서 노후를 보내면서도 그는 줄곧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며 망향의 한을 달래곤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담긴 덕숭산 작품 3점과 젊은 시절의 미공개 작품 20여점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현재 수덕사고암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이 그것이다.
1981년 프랑스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린 <수덕사> 2점은 이응노 화백의 미망민 박인경 여사가 지난 9월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그리고 화백이 젊은 시절인 30대∼40대에 그린 수묵화들이 함께 전시된다.
그림의 소재는 다양하다. 닭, 호랑이같은 동물그림과 사군자(매, 난, 국, 죽), 풍경을 담은 그림(산, 숲, 파도, 낙화암, 평양성)들이 강렬한 느낌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1940년대에 그린 <산> 2점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색깔로, 1950년대 작품인 <숲>의 나무들은 그의 군상 시리즈 연상으로, <풍속도> <호랑이> 같은 작품은 그도 이런 그림을 그렸구나 하는 놀라움으로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20여점이 넘는 젊은 시절의 수묵화들은 모두 한 미술품 애호가의 소장 작품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이 애호가가 미술관 측에 기증한 이응노 화백 전시회 방명록도 화제다.
1953년 서울 소공동 성림다방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방명록에는 박수근 화백이 붓으로 그린 담소하는 세 사람, 만화가 김용한(코주부)의 컷, 제헌 국회의원 윤병구, 초대박물관장 최순우 선생 등 역사인물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싸워 이겼도다' '다시 건설하자'라는 문구도 보여 종전 직후 전쟁 상황을 짐작케 한다.
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옹산 스님은 "이번 수덕사 고암선미술관 개관기념전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미공개 작품전시로, 상상만 해도 감동어린 그 시대의 모습을 그려본다. 특히 고암 선생의 얼이 깃들어 있는 이 곳에서 전시를 하게 돼 더욱 뜻깊다"면서, 미술관 운영과 관련 "미술관이 있는 줄 모르고 수덕사에 왔다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들 전시회를 보고 가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개념과 예술적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또 지역문화정책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수덕사 매표소 입구에 있으며, 입장료 없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 특별전시는 이달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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