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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사, 시간강사제도 폐지…. 모든 강사에 교원 법적 지위 부여"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는 25일 시간강사 법적 교원 지위 부여, 강의료 두 배 인상, 국가연구비 지원사업 동등 참여 기회 보장, 4대보험 사용자 부담분 국가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대학 시간강사 처우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1977년 10월 교육법 개정으로 고등교육법상 '교원'에서 제외된 이후, 대학 강의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면서도 '대학의 유령', '상아탑의 노예', '보따리 장사' 등으로 불려 왔던 시간강사제도를 폐지하겠다며 사통위가 내놓은 이날 보도자료는 우선 제목부터가 주목을 끈다.

시간강사 처우에 대한 논의는, 30년 넘도록 한국 대학사회를 음습하게 지배해 온 무거운 화두다. 그런 무겁고 지리한 논란에 종지부라도 찍겠다는 듯이 사통위는 '근본 대책'임을 서두에서 강조했다. 사통위가 내민 소스를 언론사들은 그럴싸하게 포장해 냈다.

시간강사들, 사통위 발표에 분노하는 이유

 사회통합위원회 홈페이지.
 사회통합위원회 홈페이지.
ⓒ 사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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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교원지위 부여'
'대학 시간강사 제도 30년 만에 폐지'
'대학 시간강사 제도 폐지, 교원 된다'


일부 주류언론들이 사통위 발표 이후 쏟아낸 제목들이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30년 넘게 반복돼 온 골 깊은 문제가 풀렸다는 듯 기뻐했다. 그런데 잃어버린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1000일 넘게 하고 있는 예순 넘은 강사부부와 연구실 없는 대학 캠퍼스에서 강의준비를 하며 교수뿐만 아니라 학과 조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7만여 전국 대학 시간강사들의 반응은 밝지 못하다.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우려와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 그럴까?

사통위의 이번 안은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안에 비해 다소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높다. '기존 시간강사제도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따가운 비판도 드세다. 시간강사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교원이 아닌 겸임교원과 초빙교원 제도로 얼마든지 기존의 시간강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비정규교수 노조는 '사통위 방안에 대한 입장'을 즉각 내놓았다.  지난 22일 '전국 비정규교수 대회'를 마친 지 사흘 만에 나온 대책이어서 실망이 너무 큰 모양이다. 노조는 성명 서두에 이렇게 적시했다. 

"몸도 마음도 무척 춥다. 그런데 추위가 찾아오자마자 청와대 쪽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다며 김이 모락모락나는 빵을 우리 앞에 내놓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의 '대학시간강사 제도개선 방안'이다. 청와대 및 교과부와 조율도 끝냈다고 하니 정부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뚜껑에는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비정규 교수 일부의 교원 법적 지위 회복이 적혀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문구가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연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비정규교수 노조 "속 빈 강정 같기도 하고..."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이 10월 22일 개최한 대학의 올바른 개혁과 불안정 노동철폐를 위한 '2010년 전국 비정규 교수대회' 모습.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이 10월 22일 개최한 대학의 올바른 개혁과 불안정 노동철폐를 위한 '2010년 전국 비정규 교수대회' 모습.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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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교수 노조는 "하지만 막상 빵을 담은 뚜껑을 열어보니 웬 걸, 무언가 속 빈 강정 같기도 하고 냄새도 별로인 것 같다"며 사통위 방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비정규교수 노조는 그동안 '시간강사, 겸임교원, 초빙교원, 연구교수 등 10여 가지의 모든 비정규 교수제를 연구강의교수제로 통합하고, 이들에게 담당 강의 시수에 관계없이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한 뒤, 2년 이상의 단위로 간략한 평가를 통해 재계약하며 정부가 재정 대부분을 투여하여 생활임금과 참정권을 보장해 주는 연구강의교수제' 도입을 요구해 왔다.

또한 OECD 평균 이상의 법정 교원 충원률 100%를 빠른 시일 내에 달성하여 전임교원의 수를 증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안이라는 주장도 거듭 제기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통위의 방안에 대해 노조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비정규교수 노조는 "기존의 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 14조 2항의 교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이기에 과거의 정부 안들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교원이 아닌 겸임교원과 초빙교원 제도로 얼마든지 기존의 시간강사를 쓸 수 있어 '기존 시간강사제도의 변형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며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가령 7만 명의 시간강사 중 3만 명의 비전업 강사가 겸임교원으로 흡수되면 법적 교원 지위를 부여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교원의 휴직, 파견, 연수 등(원래 시간강사를 쓰던 이유들이다!)'의 사유가 있을 경우, '교원인 강사가 아니라 비교원인 초빙교원을 1년 미만으로 쓰도록' 해 버리면 4만 명의 전업 강사 중 상당수도 교원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강사가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이 되는 풍선 효과가 발생하면 7만 명 중 실제로 교원이 되는 강사는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다.

"이주호 장관,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방안보다 훨씬 퇴보"

이어 노조는 ▲사립대학에 대한 강제조항 빈약 ▲물적 급부 제공과 권리 보장이 지나칠 정도로 미약하다는 점 등을 내세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교수 노조 관계자는 "1년 단위 계약을 고용 안정이라고 사통위에서 표현한 것은 난센스"라며 "연봉을 월급제로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급으로 지급하면서도 명칭만 시간강사에서 강사로 줄인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시급제를 철폐해야 시간강사가 없어지는 것인데 시급제는 그대로 둔 채 시간강사제를 폐지했다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급을 받는 1년짜리 강의 전담 기간제 교원을 전면화하면서 마치 고등교육정상화가 되는 것처럼, 비정규 교수들의 고통이 확 줄어드는 것처럼 포장한 것은 아무리 봐도 과대광고라는 주장이다.

한편 비정규교수 노조는 "이번 사통위 방안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2007년 스승의 날)에 발의한 방안보다 4가지 지점에서 훨씬 퇴보한 것"이라며  "당시의 이주호 의원 안은 전업·비전업의 구분 없이 모든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고, 국가의 재정 지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재정추계까지 구체적으로 하였으며, 교육공무원으로서의 권리 보장도 고려하는 안이었을 뿐 아니라, 초빙교원과 같은 비교원으로 빠져나가는 걸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통위 안이 이주호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보다 훨씬 퇴보한 것이라는 지적이 시선을 끈다. 그럼에도 시간강사제도는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존속해 왔다. 당시 법안 발의 당사자가 교육당국의 최고 수장 자리에 있는 현실도 아이러니 하다. 

전국 교수노조 "시간강사 문제, '국가교수제'로 풀자"

 <전국교수노동조합> 홈페이지.
 <전국교수노동조합> 홈페이지.
ⓒ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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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교수노조도 거들었다. 교수노조는 25일 "시간강사 문제 '국가교수제'로 풀자"란 성명에서 "이번 안은 사통위가 의욕을 가지고 나름대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7월말 입법 예고되었던 교과부 개악안의 악성요소를 많이 제거한 내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전제한 뒤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교수노조는 "시간강사 문제를 '처우개선' 수준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그들이 처한 심각한 불평등과 착취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며 "좌절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시간강사들의 비극적 현실은 부족한 경제적 보상보다는 연구와 강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체성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안을 내놓았다. "이미 근본적 해결책의 한 대안으로 8월 30일 사통위가 주최한 '대학시간강사 문제의 쟁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국가교수제'를 제안한 바 있다"는 교수노조는 그 방안을 이렇게 열거했다.

"박사학위 또는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연구, 교육 및 봉사 업적을 달성한 사람들 중에서 순차적으로 30,000명 정도를 '대학교원국가풀(pool)'에 등록시켜 연봉 2400만원∼3000만원 수준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며, 대학교원국가풀에 등록된 사람은 별도의 연구, 교육 및 봉사 업적 규정에 따라 자격이 유지되는 방안이다."

고등교육예산 증액을 통해 국가가 시간강사를 동등한 연구자로 인증하자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국가와 대학 그리고 교수들은 마땅히 담당해야할 고등교육 비용을 시간강사들에게 떠넘겨 왔다. 국가와 대학, 전임교원들 모두 시간강사들의 희생 위에서 많은 혜택을 입었으면서도 정작 대학 내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가지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이들을 방치해 왔다.  

그래서 일까. 교수 노조는 "'국가교수제'는 국가재정지원의 확대를 통해 그동안 시간강사들에게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 연구와 강의에 전념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임교원들과 동등한 환경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했다.

권영길 의원 "사통위안은 반쪽짜리...기존정책 변죽만 울렸다"

 권영길 국회의원 홈페이지.
 권영길 국회의원 홈페이지.
ⓒ 권영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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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해결의 열쇠는 항상 정부와 대학이 지니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이를 잘 간파한 듯하다. 25일 '시간강사 등 비정규교수의 법적 교원지위 확보를 위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부안은 기존정책의 반복이자 변죽만 울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발의한 법안은 ▲시간강사에게 법적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시간강사와 전임강사를 통합해 '연구강의교수'로 하고, ▲겸임교원 등을 규정한 조항에 시간강사를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 의원은 "사통위안은 반쪽짜리 대책안"이라며 "사통위안은 교원에 강사 포함, 강의료 인상, 4대보험 사용자부담분 지원 등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간강사를 '강사'라는 명칭으로 법적 교원에 포함하고는 있지만,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강사를 임용하여'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시간강사의 계약기간을 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시간강사를 강사로 이름만 바꿔 법으로 비정규직을 용인해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사통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질타했다.

"사통위안은 이러한 핵심문제를 벗어나 강사료 인상, 4대보험료 지원, 연구실 지원 등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정책을 복사한 방안에 불과하다. 변죽만 울리고 있다. 사통위가 왜 존재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대학내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가장 풀기 어렵고,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누구도 정답을 내놓기 어려운 대학 시간강사제도에 관한 논의가 모처럼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좋은 대안이 나와 주길 기대한다. 7만여 대학 시간강사들이 교원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


#시간강사#사통위#비정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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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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