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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중의 학생자치가 지금에 이른 건 학생자치부장 백원석 교사의 혁신학교적(?) 발상 덕분이었다.
▲ 백원석 장곡중 교사 장곡중의 학생자치가 지금에 이른 건 학생자치부장 백원석 교사의 혁신학교적(?) 발상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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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담쟁이가 교사(校舍)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교정은 아름다웠다.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표정도 한결같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지난 2월 26일 혁신학교로 지정돼 배움의 공동체를 롤모델로,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경기도 시흥의 장곡중학교를 10월 마지막주에 찾았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지 한 학기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미 입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에서 장곡중의 프로그램을 배우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장곡중은 수업시스템의 혁신도 주목할 만하지만 여느 혁신학교보다 구체적인 '학생자치'를 가꾸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교문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즐거워지고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갈등관계가 줄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졌단다. 이렇게 된 건 학생자치부장 백원석 교사의 혁신학교적(?) 발상 덕분이었다. 백 교사는 1년 반째 학생자치부장을 맡으면서 다양한 학생자치 프로그램과 아이디어를 기획·실행하고 있다.

이 학교의 '친구사랑의 날'에는 학생자치부 교사들이 교복을 맞춰 입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며, 공포의 대상이었던 '깡패 같은' 학생부장의 모습도 버렸다. 그는 매일 아침 교문지도를 하는데, 여느 학교에서 그렇듯 지각생·복장 불량자를 잡아내고 체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백 교사는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과 함께 배꼽인사를 한다. 처음엔 이상하게 여기던 아이들도 이제는 함께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며 웃음띤 얼굴로 교문을 들어선다.

이 학교 김학태 교장도 처음엔 그런 백 교사가 "미친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응원한다. 백원석 교사를 만나 학생자치의 가치와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발, 치마길이... 단속하다 지쳐 규정을 바꿨다 

백원석 교사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과 함께 90도 배꼽인사를 한다.
▲ "안녕하십니까!" 백원석 교사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과 함께 90도 배꼽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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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교문에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한다는데?
"지금까지는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사와 아이들이 일정한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학생부장이 되면서 이런 관계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갈등의 첫 시작이 교문 등교더라. 그래서 내가 먼저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공수배로 인사를 시작했다. 아침 등교부터 아이들과 만날 때 복장이나 머리 가지고 문제 삼으면 괴롭다. 처음에 쑥스러워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함께 웃으며 인사하고 교문을 들어선다. 아침 인사를 통해 더욱 친밀해진다."

- 아이들과 갈등이 심했나?
"작년에 갈등이 좀 있었다. 교복과 치마 길이, 두발 규정 등을 두고 아이들을 단속하다 보니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규정을 바꾸자고 생각했다. 당시 마침 경기학생인권조례안도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먼저 바꾸자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그래서 학생생활규정 일부를 개정했다. 인권조례가 공포됐으니 다시 후반기에는 그를 반영한 생활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 전체학생회의를 학급에 생중계 한다던데?
"그렇다. 학급 회의에서 토론·결정한 안건을 대의원들이 모여서 논의한다. 이를 학교 방송 시설을 이용해 각 교실로 생중계한다. 간혹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있지만 생중계되다 보니 의견을 발표하고 정리하면서 아이들이 진지해진다. 생중계를 마치고 학급으로 돌아가면 바로 학급 아이들을 통해 피드백이 되니 제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발 길이 제한을 없앴다."

- 학생회장 선거는 어떻게 진행하나?
"다음 주에 후보 등록을 받고 11월 18일이 선거일이다. 올해부터는 학생회장 선거와 관련한 모든 진행을 학생들이 하도록 하려고 한다. 교사들은 최소한의 보조적인 역할만 하고. 그래서 학생 선관위원 모집 공고를 냈는데 10명을 뽑는데 30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을 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생회장 선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대견하다."

학내폭력 줄어... 학생인권조례 교사에게 불리하지 않다

아이들의 등굣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교문 앞에 스트레스 펀치용 오뚝이 2개를 설치했다. 처음엔 멀뚱히 지나가던 아이들이 이튿날부터는 자발적으로 오뚜기볼을 치며 스트레스 해소를 만끽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결국 오뚜기볼이 터져 버렸다.
▲ 스트레스 해소용 오뚜기볼 아이들의 등굣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교문 앞에 스트레스 펀치용 오뚝이 2개를 설치했다. 처음엔 멀뚱히 지나가던 아이들이 이튿날부터는 자발적으로 오뚜기볼을 치며 스트레스 해소를 만끽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결국 오뚜기볼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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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장이나 동료 선생님들의 시선은 어떤가?
" 교문에서 아이들한테 인사하는 것 보고 교장 선생님이 '포도대장이 포도대장 역할 안한다'고 우스갯소리하신 적이 있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아무 소리 안 하신다. 선생님들 반응도 좋다. 전체적으로 선생님들이 아이들 인권이나 소통에 마음 열고 있는 것 같다. 1년에 4번 하는 '친구사랑의 날' 행사가 있는데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즐겁게 참여한다. 오는 11일 예정인 친구사랑의 날에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 3일부터 11일까지 친구사랑주간을 선포·운영한다. 학생우편배달부를 모집해 친구사랑편지를 직접 배달해주는 등의 행사도 준비 중이다. "

- 장곡중을 바라보는 학부모나 주변의 시선은?
"초등 3개 학교가 우리 학교에 지원하는데 우리 학교 지원이 70% 옆 학교가 30% 정도 된다. 처음엔 무슨 혁신학교병에 걸렸냐고 하던 일부 학부모들 있었다. 지금은 그런 불만의 목소리 못 들었다. 학생자치의 효과는 내년쯤 가봐야 알지 않을까."

- 아이들이 달라진 게 있나?
"우리 학교의 학생 선도와 폭력이 작년대비 확 줄었다. 작년 선도가 12회에서 올해 3회, 폭력이 8회에서 4회로 줄었다. 나는 잘 못 느꼈는데 교장 선생님은 느끼고 계시더라.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싸움도 줄었다. 아침에 교문 들어올 때 짜증 받지 않고 학교에서 존중받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내가 해보니 학생인권조례에 발맞춘 생활규정개정이 교사들에게 절대로 불리하지 않다. 왜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생활지도에 큰 문제 없는데 지레 겁먹고 있는 거 아닌가. 처음에 우리가 두발규정을 바꿀 때 주위에서 장곡중 막가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교권이 추락하거나 생활지도가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충분히 소통하면 된다."

학생자치 1년 하니 스트레스 줄었다

일년에 네 번 마련되는 ‘친구사랑의 날’에는 단짝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제출하면 맛있는 빵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전교생을 대표한 대의원들의 회의는 교실로 생중계된다.
 일년에 네 번 마련되는 ‘친구사랑의 날’에는 단짝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제출하면 맛있는 빵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전교생을 대표한 대의원들의 회의는 교실로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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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자치 1년 반 해보니 어떤가?
"예전에는 학교 출근할 때 마음 무겁고 몸 피곤했다. 정기검진 때 보면 스트레스라고 했다. 요즘엔 그런 느낌 못 받는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좋다는 뜻이다. 다른 학교 다른 선생님들도 빨리 바꿨으면 좋겠다. 그렇게 딱딱하게 규정 가지고 아이들과 갈등 만들면 마음 편한가 묻고 싶다. 아니라면 빨리 바꿔라. 그게 행복 찾는 것이다. 아이들과 소모적 갈등으로 스트레스 받는 교사는 불행하다."

- '학생부' '학생부장'은 아이들의 공포의 대상이다
"나도 학창시절 그랬다. 학생부장이셨던 중학교 은사를 지금 만나도 가슴이 서늘하다. 그분은 사랑의 표현이었겠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 아이들은 친구처럼 선생님을 대하려 하는데 교사들은 권위와 강제로 아이들을 찍어 누르면 괴리감 때문에 더 힘들다. 지역 학생부장 회의 같은데 가도 이런 얘기 못 꺼낸다. 그분들이 보시기에 '젊으니까 그러고 있겠지' 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

- 학생부는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예전에는 생활지도가 학생부의 중점이었다면 이제는 학생 자치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학교의 '학생자치부'라는 이름도 그런 의미다. 지금까지는 생활지도에 집중했지만 정작 생활지도 대신 갈등만 키워온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자치활동을 도와주지 못한 탓이다. 생활지도는 학급 단위에서 진행하고 학생부에서는 학생들의 자치 능령과 사고력 창의력 등을 계발하는 학생자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 내년엔 학생자치부라는 이름도 학생자치+학생복지+학생인권 등의 의미와 기능을 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꿀 생각이다."

- 학생자치를 이끌며 기대 혹은 염려하는 게 있다면?
"주목 받아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이 첫 시도인데 3년을 두고 보면 미약한 출발이다. 학생자치 활동이 우리보다 선진적인 학교도 있을 텐데 모범처럼 비춰져서 걱정이다. 일부라고 생각해달라. 앞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아직은 시작 단계라 너무 앞서가거나 급진적이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주변에서도 지켜보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하다. 길게 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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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사랑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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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혁신학교, #백원석, #장곡중, #학생자치, #학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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