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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끌만한 책이 나왔다. 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열린우리당 사무부총장)가 이론적 바탕을 마련하고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 변호사(전 17대 국회의원)가 써내려간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라는 이름의 책이 그렇다. 한없이 투박해 보이는 표지지만 덕분에 내용이 살았다.

머리말에서 글쓴이는 "민주당원으로서 제3의 정치 평론가처럼 비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원으로서 하기 어려운 매서운 비판이 책 곳곳에 숨겨져 있다.

갈팡질팡했던 잃어버린 10년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겉그림. 김태일·최재천 지음, 모티브북, 값 1만원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겉그림.김태일·최재천 지음, 모티브북, 값 1만원 ⓒ 모티브북
"피의 혁명 없이 지극히 합헌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은 이 땅에 '진짜'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냈다. 인류 역사상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와 제대로 된 절차로 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해결한 나라,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곳에 민주당이 있었다. 늘 시민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고 중산층과 서민으로 대변되는 시민 정당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민주당이 있었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12쪽)

도입부는 자못 비장한 문구로 시작한다. 실제로 그런 때가 있었다. 1997년 12월 19일이 그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43만7000여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간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의 출범은 시민의 승리였고, 이는 곧 후신인 민주당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매우 높았다. 집권 경험이 없었던 민주당에게 보수 기득권 세력은 큰 장애물이었다. 게다가 정권을 둘러싼 상황도 썩 좋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발이 묶여 반쪽짜리 진보 정책에 만족해야 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출범한 참여정부도 비슷했다.

글쓴이는 우편향인 한국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졸속 타결을 가장 큰 실책으로 꼽았다. 경제의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 국가 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초래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결국 참여정부와 민주당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게 외면받았고 철저히 고립됐다.

민주당의 지지층 이탈은 17대 대선과 18대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경제 살리기'와 '잃어버린 10년' 앞에서 민주당은 무기력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크게 패했을뿐 아니라 총선에서 81석(27.1%)으로 한나라당의 153석(51.2%)에 절반 정도만 당선되는데 그쳤다.

한없이 무기력했던 민주당

"시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열정은 애초부터 달랐다.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민주당에게 요구한 도덕적·정치적 가치는 한나라당에 대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본래적 의미의 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에서 실패했다. 민주, 민생, 민본, 민권 중 어느 면에서도 시민들의 절박한 기대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위의 책, 15쪽)

실패의 결과는 쓰디썼다. 보수 기득권은 기세 등등했고, 시민들은 이런 상황을 만든 민주당을 철저히 외면했다. 글쓴이는 "현 정부의 불통과 신권위주의 통치 아래에서 시민의 인권과 자유는 위기"라고 표현했다.

민주당은 집권당인 한나라당에게 그저 만만한 국정 상대였다. 정권교체를 이루기 전까지의 야성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미 실패했던 중도 개혁 노선을 아예 당의 노선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 등 구호는 오히려 보수 정권의 몫이었다.

원칙도 소신도 없는 민주당의 무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글쓴이는 "중도요 통합이요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시민들은 얼마나 어이없어 했을까"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시민들은 절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민주당은 6.2 지방선거에서 친노 인사를 앞세워 7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해 사실상 승리했다. 야권이 절박한 심정으로 후보 단일화를 해 거둔 성공이었다. 민주당은 말로는 겸손을 얘기하면서 마음껏 자축 샴페인을 터뜨렸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는 너무 이른 시기였다.

구태 공천과 색깔론이 보여준 '생얼'

"김대중 대통령이 국립묘지에서 벌떡 일어날 해괴망측한 언동도, 그것도 광주에서 일어났다. 민주당이 오랜 시간 수구 반동 세력들로부터 몸서리쳐지게 당하던 '색깔' 공세를 소수파 정당에게 퍼붓는 일이 벌어졌다. 오로지 선거의, 선거만을 위한 민주당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민주당의 '생얼'이었다." (위의 책, 22쪽)

민주당의 승리는 두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이어 치러진 7.28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앞세워 8곳에 후보를 냈지만 국회의원 3석을 건지는데 그쳤다. 반대로 여당인 한나라당은 5명의 당선자를 내면서 오히려 전보다 4석을 더 보태는 성과를 거뒀다.

오만함이 빚은 참사였다. 민주당은 거대 야당이라는 이유로 양보와 조율 없이 모조리 후보를 내 대패했다.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는 더욱 한심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에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을 '빨갱이', '한나라당 2중대' 등으로 비하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를 서둘러 진화했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사과를 받아들여 이의제기 없이 조용히 일을 마무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 장병완 후보가 민주노동당의 오병윤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자랑스러운 승리는 결코 아니었다. '선거에서 이기면 끝'이라는 구태가 불러온 이 사태에 대해 글쓴이는 "한없이 부끄러웠으며 결과적으로 한나라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정치 공세였다"고 반성했다. 민주당은 이 책이 나온 뒤 있었던 10.27 재보선 광주 서구청장 선거에서 야4당의 단일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며 또 다시 공천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붕어빵'에 '붕어' 없고, '민주당'에 '민주' 없다

"'엄마손 만두'에 '엄마손'이 없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은 명칭이 환기시키는 대상과 실제 지시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민주'가 없는 것은 이와 달리 '절대적 모순'이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당내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개혁·진보 진영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를 대변하고 나아가 의회와 행정부를 책임지면서 시민들의 민주, 민권, 민생, 민본을 짊어지고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책, 43쪽)

민주당의 문제점은 10.3 전국대의원회의에서도 드러났다. 당 대표를 뽑는데 평당원의 의사는 30%밖에 반영하지 않았다. 나머지 70%는 당원이 뽑지도 않은 대의원의 몫이었다. 그래서 공식 명칭도 전당대회가 아닌 전국대의원회의였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체육관 선거'라고 풍자했다. 아예 <경향신문>은 "관심도 없는 전당대회는 뭐하러 여는지 모르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글쓴이는 "의무만 있고 권한은 없는 민주당의 당원이 누가 되려하겠으며, 당원이 없는 당이 무슨 수로 시민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고 동조했다.

그러면서 통합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나 기초당원제가 결코 무의미한 실험이 아니었다고 재평가했다. 야권연대 대상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모두 진성당원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민주당과 비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쇄신연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곁들였다. 쇄신연대는 대의원회의를 앞두고 "주권은 시민에게, 당권은 당원에게!"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글쓴이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원명부를 온전히 복원하고 당원과의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으로, 또 왼쪽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변해야하고 좀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기득권 보수진영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다. (중략) 문제는 확고한 비전과 가치이고 정책이고 계급성이고 당파성이고 진보성이다. 일관성이다." (위의 책, 149쪽)

글쓴이는 민주당이 나가야 할 길을 당원에게 당권을 넘기는 내부 개혁과 노선의 선명성 확보에서 찾았다. 과거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 그리고 통합민주당과 현 민주당의 실패에는 어중간한 노선이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망설임 없이 '좌클릭'을 하자는 것이다. 기왕이면 왼쪽으로 '더블 클릭'이 좋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다. 마침 주변 상황도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글쓴이는 한나라당의 실정이 주는 효과인 비정규직, 부동산, 사회 안정망,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밀어붙인다면 민주당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2012년 진보연대'로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도 그는 주장했다. 민주당이 7.28 재보선의 실패를 교훈 삼아 진정성을 갖고 연대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10.27 재보선에서 공천 실패가 드러나자 앞다투어 반성문을 내걸고 적극적인 연대를 약속하기도 했다.

공허한 외침? 그래도 의미 있다

시민과 야권 지지자들의 눈높이에서 이 책은 철저히 반성문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 내용은 충실하지만 모범답안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비록 제대로 된 반성이고 자성의 목소리일지라도 책 한 권으로 마음을 돌리기엔 그동안 민주당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지속된 무기력은 불신을 불러왔고 큰 실망감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계속돼야 한다. 민주당은 야권의 가장 큰 정당이고 야권연대의 선봉에 서야 한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고쳐 써야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 민주당의 당내 파벌 싸움은 심각한 수준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새로운 파벌이 필요하다. 당내 개혁 세력이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당원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어 당내 기득권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당을 더 진보적으로 견인해야 민주당과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일지라도 엔진을 바꾸면 주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민주당은 지금부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만약 집권을 하더라도 다시 무능과 무색, 무취한 정책을 내세울 경우 시민들이 더는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냥 좌절하기에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올곧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그 중심에 있던 민주당이 너무나도 아깝다.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김태일.최재천 지음, 모티브북(2010)


#민주당#최재천#김태일#김대중#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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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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