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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명한 소비, 사려 깊은 소비를 강조하는 <미래를 여는 소비>
현명한 소비, 사려 깊은 소비를 강조하는 <미래를 여는 소비> ⓒ 다섯수레

우리가 보는 것 또는 우리의 모습 모두가 꿈속의 꿈인가? -에드거 앨런 포

<할로윈>으로 유명한 존 카펜터 감독이 80년대에 찍은 <They Live>라는 영화가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친구가 폐허가 된 교회에서 우연히 선글라스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걸 쓰니 보이는 것은 여태껏 봐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해골 모습을 한 인간들, 잡지와 거리의 온갖 광고판에 보이는 '소비하라'는 전언. 우연치 않은 기회에 세상의 이면을 목격하게 된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외계인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외계인들은 하나같이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자들뿐이다.

반면 거대한 싸움을 준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주인공 같은 저소득층이다.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서민들이 한데 뭉쳐 돈 많은 '외계인'들을 쫓아내는 이 영화에는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정신에 대한 명백한 알레고리가 담겨있다. 돈이 거대한 바벨탑의 꼭대기에 서 있는 이 시대에서 소비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TV, 라디오, 거리, 건물 등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광고가 흘러나온다. '소비하라!', 이 단순한 한 마디가 지배하는 소비 제국에는 적절한 사용설명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는 이 책은 일정 부분 그 필요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소비가 곧 투표다

과학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저자 안젤라 로이스턴이 쓰고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인 김종덕 씨가 옮기고 보탠 <미래를 여는 소비>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나비효과를 다룬다.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일이 환경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환경? 소비가 환경에 대체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인간을 소비 동물이라고 할 만큼, 소비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두 날개로 지탱되기 때문에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문제는 무분별한 소비이다. 과잉 소비와 불필요한 소비는 환경을 파괴함은 물론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머리말 중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한 그만큼 생산한다. 생산을 위해 전 세계 각지의 자원을 무분별하게 채취하고, 이를 수송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태운다. 이 과정에서 과도하게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서 지구온난화가 급격한 환경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 기후 현상과 자연 파괴가 벌어지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으로 건너 가 아주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리며 자원을 착취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휴대폰과 TV, 컴퓨터를 소비하면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노래하고 있다.

책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할 말을 하고 있다. 설명이 너무 적지도, 너무 많아 흘러넘치지도 않는다. 소비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선진국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원이 어떻게 바닥나고 있고, 자연파괴와 지구 온난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얼마나 심각한지 차근차근 말한다. 또한 외서이지만 편역을 통해 우리나라의 상황도 설명하고 있어 책의 설명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선박과 항공기 등을 통해 전 세계 화물들이 각 나라로 수송되면서 이산화탄소의 과다 배출은 더 심해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단절되었고, 대량 생산으로 싼값에 찍어낸 글로벌 푸드는 식탁 위에 올라 소비자를 유혹한다. 필리핀산 바나나와 호주산 소고기, 칠레산 홍어가 국내 제품보다 값은 더 싸겠지만, 그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너무 크다. 책은 청소년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책답게 그림과 사진, 도표를 이용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청소년 대상이긴 하지만, 평소 소비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할 만하다.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자유다. 하지만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따져서 골라야 한다고 책은 조언한다. 저자는 소비자의 선택은 투표 행위와 같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먹을거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먹을거리의 선택은 농업, 환경,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좋은 먹을거리를 많이 선택하면 좋은 먹을거리가 많이 생산되고, 나쁜 먹을거리를 선택하면 나쁜 먹을거리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투표 행위와도 같다. (57쪽 중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한 사려 깊은 사용설명서

소비된 것들도, 선택받지 못한 것들도 모두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산은 갈수록 높아지고, 사람들은 재활용보다는 최첨단 신제품을 사는데 몰두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화학비료를 곁들여 대량 생산된 글로벌 푸드가 식탁을 지배하면서 우리의 삶은 이제 점점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라앉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뿐이 아니다. 우리를 지탱해주던 자연마저도 같이 무너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무심코 소비한다. 그러니까 그냥 '이 정도는 괜찮겠지. 뭐 어때?'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극소수의 생각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수가 모두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소비를 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좀 더 현명하고 사려 깊은 소비가 필요한 법이다.

말로만 잔뜩 떠벌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지구 온난화가 어떻고, 소비가 어떻고 밤낮으로 책상 앞에서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중요한 건 행동이자 실천이다. <미래를 여는 소비>는 실천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영리하게 유도하고 있다. 나쁘니까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어떠한 절차를 거쳐서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 말로만 하는 다짐은 다짐이 아니다. 그건 그냥 말이다. 어차피 우리는 소비 제국에서 살고 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소비자들은 이 제국의 올바른 사용설명서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긴,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yes24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blog.yes24.com/nn2u



미래를 여는 소비

안젤라 로이스턴 지음, 김종덕 옮김, 다섯수레(2010)


#미래를여는소비#김종덕#다섯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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