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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헌혈을 처음 한 게 1988년 가을입니다.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한국천주교회가 한마음한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 내용에 헌혈이 포함되었지요. 우리 성당에서는 1988년 봄 어느 주일에 혈액원의 헌혈차를 불러, 신자들이 단체로 헌혈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부끄럽게도 성당에서 첫 헌혈할 때 하지 못했습니다. 무섭고 두려워서.

일반 주사기 보다 더 굵은 헌혈주사기를 팔뚝에 꽂고, 새빨간 피를 한 컵이나 빼 간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하루에만 우리 성당에서 37명인가가 헌혈을 하였답니다. 좀 부끄러웠습니다. 41살 젊고 건강한 내가 두려운 마음에 헌혈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구나 젊은 자매들도 팔을 걷고 차에 올라, 당당하게 헌혈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더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나는 못했지요.

그 해 가을에 또 헌혈차가 성당에 왔습니다. 몇 사람이 헌혈하는 것을 보고 나도 헌혈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전혈을 320cc씩 할 때였습니다. 보통 우유 한 팩이 200cc이니까 분량이 가늠될 것입니다. 그날 오후 1시경, 부산 서구 암남동 소년의 집 운동장의 한 행사에 참석한 나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주차장에서 건물 중간 3층을 계단으로 올라가 옥상으로 나가면 운동장과 연결되었습니다. 1층까지는 어떻게 올라갔는데, 2층 계단과 3층 계단은 기운도 없고 힘이 다 빠져서 도저히 따라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맞아! 오늘 헌혈을 하였지."

이런 생각이 들자 헌혈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헌혈 한번에 이렇게나 골병이 들다니.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 송도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좋았습니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지, 헌혈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당에 온다고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지. 헌혈을 했으니 심리적으로 위축이 돼 있었을 것이고. 그런 상태로 오후 1시가 됐으니."

그렇습니다. 그날 학교 운동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고생을 한 것은 그때까지 굶어서 일시적으로 내 건강상태가 안 좋았을 뿐이고, 오늘 헌혈을 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첫 헌혈을 하고 다음해 4월 5일에 두 번째 헌혈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가 구덕체육관에서 단체로 헌혈행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헌혈 경험이 있으니 당연히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후 3시경에 체육관에 도착하였습니다. 행사는 5시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행사장 철거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날 마지막 헌혈자가 되었습니다. 1500명 가까이 헌혈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6월 11일에 혈액원으로 찾아가서 헌혈을 하였습니다. 전혈은 두 달이 지나야 헌혈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짝수 달 11일을 내 헌혈의 날로 정해 놓고 혈액원이나 헌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전혈 320cc를 하다가 나중에는 400cc로 바꾸었고 지금 성분헌혈로 500cc씩 합니다. 내가 헌혈을 열심히 하게 된 것은 세 번째인가 네 번째 헌혈할 때, 간호사의 말을 듣고 결심하였습니다.

"아저씨 혈액은 빛깔이 참 좋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요?"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모임 자리 사정상 소주 두세 잔이나 맥주 한 병 정도를 마시는 정도였거든요. 2차, 3차 하는 모임은 체질상 싫고, 신앙생활에 충실하려고 나쁜 짓거리는 피하려고 노력해 왔었습니다.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고, 혈액이 참 좋다니 나 같은 사람이 헌혈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짝수 달 11일에는 어김없이 헌혈을 하다가 나중에는 부산광역시 헌혈봉사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산적십자혈액원에 성분 헌혈기를 도입하고 첫 실험대상자가 회장인 내가 되었지요. 성분 헌혈은 500cc씩 한 달에 두 번도 가능하여, 나중에는 매달 1000cc씩 하였습니다. 매달 두 번씩 성분 헌혈을 하였고, 많이 한 기록은 500cc씩 세 번 1500cc를 하기도 하였지요.

헌혈을 하려면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말고 잠을 푹 자는 게 좋습니다. 피곤하거나 피로하면 혈중비중이 낮아서 헌혈을 할 수가 없습니다(혈액원에서 헌혈 직전에 혈중비중 검사를 합니다. 혈중 비중이 낮으면 헌혈을 받지 않습니다. 헌혈자의 건강을 위해서지요). 힘든 일을 하는 분들과 여성들이 헌혈을 하러 갔다가 불합격(?)을 당하는 것은 그 이유입니다.

헌혈을 하려는 사람은 미리 준비를 하고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헌혈을 많이 한 사람은 그 만큼 건강한 사람이라는 반증이 됩니다. 나는 미리 잘 준비해서 헌혈을 하러 갔다가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불합격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내 헌혈 기록은 12년 동안(1988년 가을- 2000년 가을) 132회를 하였는데, 약 5만cc나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헌혈 5만cc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날짜를 정해 놓고 정말 참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지병이 생기면서 약을 먹게 되어 중단하였지요. 겨울이 되면 헌혈자가 줄어 큰 수술을 앞둔 병원에서 비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혈액원을 찾아서 헌혈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나는 헌혈한 날 고기를 먹거나 특별하게 좋은 음식을 먹어 본 일이 없습니다. 음료수나 우유를 평소보다 좀 많이 마시는 정도면 충분하였습니다. 500cc의 혈액이 몸 밖으로 나왔으니 그 만큼의 수분을 보충한다는 정도지요.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 왔어도 혈액만큼은 사람 몸속에서 얻어다 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나누면서 사랑하라고, 혈액 대용품이 나오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혈액이 부족하다면 의사나 가족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건강관리 잘 하고 오늘은 헌혈을 한번 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헌혈은 작은 사랑 나눔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www.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헌혈#사랑나눔#성분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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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시민 사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2007년 봄에 밀양의 종남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귀촌하였습니다. 지금은 신앙생활, 글쓰기, 강연, 학습활동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 있는 1948년생입니다. www.happ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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