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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앞두고 있는 시인 강민 지난해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 창작>이 꾸리고 있는 제8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에 뽑힌 강민 시인이 세 번째 새 시집 <미로에서>(책만드는집)를 펴냈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시인 강민지난해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 창작>이 꾸리고 있는 제8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에 뽑힌 강민 시인이 세 번째 새 시집 <미로에서>(책만드는집)를 펴냈다 ⓒ 이종찬

"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다 / 이상 고온으로 무더운 가을날 / 2008년 한국의 하늘 밑 / 시계바늘이 일제히 거꾸로 돌고 있다 // 어디선가 실성한 듯 / 거대한 손들이 춤을 추며 웃고 있다 / 무리들은 그들만의 기쁨에 겨워 / 바늘을 /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 어둠은 허리케인을 타고 / 태평양을 건너와 / 이 땅에도 몹쓸 비바람을 뿌린다 // 만나야 할 사람들의 거리는 / 더 멀어지고 / 우리들의 사랑은 / 몽땅 미분양이다" -'기상도' 모두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인, 시력 60여 년이나 되는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은 어떠한 곳일까. 4대강 숨통을 끊으려 하는 개발지상주의와 물질자본주의가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이 세상은 뭇 생명들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일까. 아니면 사람이 주인이 되어 뭇 생명을 사람 중심으로 다시 재편하는, 거꾸로 돌아가는 그런 세상일까.   

 

시인 강민. 그는 지금 그 누군가를 그림자 동무로 삼아 미로로 뒤엉켜 있는 이 세상을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 동무란 다름 아닌 "열두 곳 조직을 떼어내 검사 결과 / 다섯 곳에서"(동오리 24-동행) 나온 악성종양이다. 그 악성종양은 "언젠가부터 오줌발 가늘어지더니 / 밤이면 미열이 나고 / 해우소행이 잦아"질 그때 나타난 참으로 못된(?) 동무다.

 

시인은 하지만 웃는다. "아, 드디어 그 길 동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길이란 생명 있는 것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저승길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 수술을 거부하며, 약물과 방사선 치료로 빠른 진행을 막으며 여전히 만나는 이들과 즐거이 지내고 있는 것도 그 못된 악성종양을 그 길로 함께 가는 그림자이자 동무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시인이 꿈꾸는 이 세상은 몹시 뒤틀려 있다. 대자연이 사람에게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주는 모든 것을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람스럽게' 억지로 바꾸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성종양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시인에게 "한국의 하늘 밑 / 시계바늘이 일제히 거꾸로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래 벼리고 발효 충분히 시킨 시가 '한 시대 역사'로 새겨져

 

"이번에는 좀 부지런을 떨어보자 스스로 다잡아봤지만, 또 이렇게 느린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변명이야 왜 없으리오. 번다한 세속 잡사에 '암'과 싸우게 되고, 뜻하지 않은 아내 소국당이 맞은 병마와 타계...... 정말 정신이 없었다. 작년이 희수(77살)였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하여 기념으로 지지난해 연말쯤에 이 시집을 엮을 심산이었다." -'책머리에' 몇 토막

 

지난해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 창작>이 꾸리고 있는 제8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에 뽑힌 강민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책만드는집)를 펴냈다. 지난 2002년 두 번째 시집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 보다>를 펴낸 지 8년 만이다. 오래 벼리고 충분히 발효된 시들이 '한 시대 역사'로 새겨져 있는 이번 시집은 시인이 살아온 삶이 분칠하지 않은 맨얼굴 그대로 비추고 있다.

 

<미로에서>는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이 금호동 한강가에서 놀았던 소년시절부터 몇 달 앞까지 살았던 양평 남한강가를 품고 있는 동오리 생활을 거쳐 지금 다시 서울 인사동에 들르며, 이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민병산 시인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미로처럼 얽혀 있다. "목표물이 전혀 없는 눈 덮힌 벌판에선 앞선 사람의 발자국만 밟고 따라갈 수밖에 었었"(미로)던 그때처럼. 

 

이 시집은 모두 5부에 69편이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상도' '그날을 위하여' '명동, 추억을 걷는다' '송년열차에서' '강산이 운다, 사람이 운다' '물은 속이지 않는다' '편지' 연작 5편, '동오리' 연작 22편, '5월, 바보새에게' '하얀 박꽃의 시인' '다시 세월의 언덕에서' 등이 그것.

 

지난 11월 들머리 인사동 한 주점에서 이행자 시인과 함께 만난 시인 강민은 "시국과 관련된 글과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느낌을 1, 2부에 담았다"며 "3부에는 훼손되는 자연, 울부짖는 자연의 비명과 역사적 감상을, 4부에는 양평 동오리에 살며 서울을 오가며 쓴 연작시와 아내의 입원과 수술, 타계로 이어지는 망부가를, 5부에는 그리운 사람들에 관한 글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5부에는 시인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두 전직 대통령과 존경하는 선배, 아쉽고 그리운 친구들에게 바치는 헌시로 가득하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후학들이 차리는 회갑연 마다하고 그 전날 밤 / 황급히 이승을 뜨신 선생님"(당신이 그립습니다) 민병산, 신동문, 천상병, 박이엽, 장문평, 성춘복, 최재복, 박진섭, 홍기삼이 그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철거민 폭력 언제까지? 

 

시인 강민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 시인 강민이 펴낸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에는 지난 193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80년에 걸친 우리 역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분칠 덕지덕지한 우리들 가슴을 바늘처럼 콕콕 찌른다.
시인 강민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시인 강민이 펴낸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에는 지난 193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80년에 걸친 우리 역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분칠 덕지덕지한 우리들 가슴을 바늘처럼 콕콕 찌른다. ⓒ 이종찬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셨다

오후 다섯 시까지 철거하라는 통지를 받고

그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서울 중구 광희동 2가 65의 2

그 험한 전쟁에서도 용케 견뎌

늙으신 어머니와 우리 삼 남매에게

풍상을 막아주던 남루하지만 따뜻했던 판잣집 -'비망록에서 2' 몇 토막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은 서울이 개발지상주의란 해머 앞에 모조리 무너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몸소 겪는다. 오후 다섯 시까지 철거하라는 시인이 살던 집은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돌연 밖에서 쿵 하는 굉음과 함께 / 천장에서 풀썩 먼지가 일며 와르르 깨어진 기와가 쏟아져" 내린다. 그것도 그 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찰나에 말이다.

 

시인은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 시커먼 얼굴로 해머를 휘두르고 있는 건장한 사내들 팔에 매달리며 "야, 이건 살인 아냐. / 어떻게 사람이 안에 있는데 집을 허물어"라며 악을 쓴다. 그때 그 사내는 싱겁게 웃으며 "난 몰라요.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저 사람한테 가서 말해봐요"라고 턱짓을 한다. 시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 사내에게 다가가자 "공무집행방해"라고 당당하게 내뱉는다.

 

환장할 일이다. 하긴 개발지상주의를 부르짖는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기가 막힌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글쓴이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철거반원'이라는 붉은 색 글씨가 씌어져 있는 완장을 팔뚝에 찬 사내들이 우리 집 창고를 마구 부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께서 초가집인 창고를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창고를 약간 넓힌 게 '무허가'였다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글쓴이 고향에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주민들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철거대상지역'이란 팻말 아래 하루아침에 집과 논밭을 잃은 철거민들이 무더기로 생겨나곤 했었다. 시인도 그랬었나 보다. "상계동에 대토를 줄 테니 / 자진 철거하라고 회유"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상계동은 우리 고향 철거민들이 대토로 받았던 그 허허벌판처럼 "사람이 가서 살 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같은 일들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어디 용산참사와 대추리뿐이던가. 지난 5월에는 동작구 사당동 정금마을을 철거하기 위해 용역깡패 100여 명이 들어가 주민들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앞세워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지 않았는가.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신곡6지구 철거민들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까지 이주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화할 상대조차 없지 않다고 하소연하지 않는가.

 

생긴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강이 운다

산이 운다

 

백두대간 척추를 뚫어

물길을 만든단다

모래를 파고 양회를 발라

얕은 곳은 더 깊이

굽은 곳은 똑바로 펴

뱃길을 만든단다 -'강산이 운다, 사람이 운다' 몇 토막

이 시는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구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살리기=대운하'를 비꼬며 울분을 터뜨리는 시다. 왜 산이 울고 강이 우는가. "왈, 대운하 / 그게 경제 회생을 위한 수로이고 / 그게 환경을 보전하고 / 자연을 지키는 짓이란다 / 관광 한국의 얼굴이 된단다"라며 굴삭기로 산과 강을 마구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살갗이 마구 벗겨지면서 핏줄이 터져 죽어가고 있는 강가에 서서 물고기가 울고, 세가 울고,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시인이 서 있는 강 주변에는 "온통 울움소리, 통곡의 소리"만 들린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 생긴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고 / 생명이 사는 것"인데, 그들은 철면피처럼 막무가내다.

 

시인은 몸서리를 친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졸지에 "고향 땅을 잃고 생계를 잃을 / 농민들, 어민들" 울음소리가 가슴을 후벼 판다. 시인이 한때 살았던 중구 광희동 2가 65의 2번지, 남루하지만 따뜻했던 그 판잣집이 순식간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허물어지는 소리가 4대강 가에서 또다시 아우성으로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연을 자신이 아껴 쓰는 시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이 시집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강물 위에 산이 있고 / 강물 밑에 산이 있었다"(섬진강에서)라거나 "물은 속이지 않는다 / 산은 속이지 않는다 / 지키는 이에게 축복을 내린다"(물은 속이지 않는다), "두물머리 남북의 강물을 만나고"(동오리 22), "초록물빛 흘러라 / 흘러라 / 흘러 흘러서 / 이내 먹물 가슴 씻어내리고"(5월, 바보새에게) 등이 그러하다.    

 

시인 강민 인사동 한 음식주점에서 시인 이승철(오른쪽)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인 강민 선생
시인 강민인사동 한 음식주점에서 시인 이승철(오른쪽)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인 강민 선생 ⓒ 이종찬

 

분칠하지 않은 맨얼굴로 다가와 분칠한 가슴 콕콕 찌르는 시

 

바람이 분다

촛불 꺼진 거리에

낙엽이 진다

낙엽이 구른다

낙엽이 운다 -'동오리 25' 모두

 

문학평론가 구중서는 '인문주의의 바보새'란 발문에서 "강민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서울 태생인 그가 금호동 한강 가에서 놀던 소년시절부터, 최근까지 살았던 양평동 남한강 가의 동오리 생활 등 그가 겪은 긴 세월의 그림자가 올올이 담겨 있다"며 "강민 시인의 생애 역정을 보면 바로 우리 현대사를 생생하게 목도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시인 강민이 펴낸 세 번째 시집 <미로에서>에는 지난 193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80년에 걸친 우리 역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분칠 덕지덕지한 우리들 가슴을 바늘처럼 콕콕 찌른다. 그 뾰쪽한 바늘 끝에는 참외밭과 수박밭이 차지하고 있었던 한강이 흐르고, 3.15와 4.19,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 개발지상주의가 핏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다.

 

시인 강민이 이번에 낸 새 시집은 특히 20대 끝자락에 문단에 나와 지금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순을 앞두고 낸 세 번째 시집이라는 것이 더욱 눈에 아리게 밟힌다. 시인이 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요즘 1년이 멀다하고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시'를 시집으로 마구 묶어내는 시인들이여! 낯 뜨겁지 않은가.  

 

시인 강민(본명 성철)은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2년 <자유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동인지 <현실> <네오 드라마>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 뒤 <학원> <주부생활>에서 편집부장과 국장을 지냈으며, 한국잡지기자협회 회장, 금성출판사 상무이사, 동국문학인회 회장 등을 지냈다.

 

시집으로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 보다> <꽃, 파도, 세월> 이 있다. 지금은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윤동주문학상 본상(1993), 동국문학인상(2006), 문학아카데미 제정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2006) 등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미로에서

강민 지음, 책만드는집(2010)


#시인 강민#미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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