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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G20 특별 만찬 및 문화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만찬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G20 특별 만찬 및 문화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만찬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지난 12일. 한 공기업에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마음 한켠이 내내 먹먹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퇴근 후 그간 쌓아놓은 그릇들을 씻어놓고 밀려있던 빨래까지 탁탁 털어 널었지만 개운치가 않다. 혼자 늦은 저녁을 먹으며 보는 TV에서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며칠 지난 인터넷 기사만이 맴돌고 있었다. 대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G20 열리던 때, 700만원 때문에 세상 등진 한 청년

 

여대생 학자금 못 갚아 자살

모 대학교에 휴학중인 21살 여대생이 학자금 700만원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오다가 이것도 여의치 않아 직장을 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학자금 원리금 납입이 수 회 밀려 심한 심적고통을 받다가 끝내 목을 매 숨져...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어 자살로 추정.
 

미안하고도 슬픈 현실이지만 작년, 올해 계속되는 사람들의 '자살' 소식에 이제는 그 충격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학자금 700만 원'이라는 기사 내용은 무뎌지고 있던 나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하나는,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삶을 놓아버린 그 친구에 대한 원망이었고,

하나는,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21살 청년을 보내버린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학자금 대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나도 4년제 대학을 다니면서 생활비 포함 학자금 대출을 총 2800만 원이나 받았다. 한 달에 최고 60만 원에 달하는 원리금 상환을 위해 졸업도 하기 전에 무작정 알바부터 시작해야 했다. 졸업도 안한 나에게 정규직 일자리는 면접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심적 고통', 빚져 본 사람만이 안다. 공부하는 학생임에도 원리금 상환이 하루만 지나도 빚쟁이 취급을 당한다. 만약 한 달이라도 연체될라치면 '신용불량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가해진다.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당해 본 사람만 안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아르바이트로도 학자금 대출 빚이 감당 안 돼 직장을 구하려고 몇 번이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감당했던 그녀가 마지막까지 느꼈을 심적고통을.

 

학자금 상환할 때마다 그녀를 기억하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이 낙제점이라고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퍼포먼스 모습.
이명박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이 낙제점이라고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퍼포먼스 모습. ⓒ 권우성

그런데 이 사회는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났던 날마저 시작도 안 한 'G20 정상회의'에 대해서만 열을 높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청년들의 자살과 학자금대출, 취업대란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책마련도 너무 중요한데 그저 일상적인 사건사고로 여겨지는 것만 같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현 정부가 대학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며 자신있게 '대학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를 발표한 게 언제라고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졸업도 안 한 21살 학생이 자살을 택해야 하는지, 취업대란에서 '눈높이'가 아닌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청년 자살률이 왜 점점 증가하고 있는지. G20에만 눈이 팔려있던 이 사회는 그렇게 한 청년의 죽음을 묻어 버렸고 사람들은 그녀를 잊어 버리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년유니온'은 지난 두 달간 서울과 인천 등 각지에서 청년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했다. 청년들의 절반이 빚을 지고 있었고 다시 그들 중 절반이 1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고 답했다. 빚을 진 가장 큰 이유는 '학자금'이었다. 그 무슨 경제효과가 수백조, 수십조라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나? 그 수십조, 수백조의 경제효과가 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그녀에게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녀의 학자금 빚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세상에 나는 남아있다. 2014년 8월은 내가 진 학자금 빚 상환이 모두 끝나는 때이다. 아마도 최소한 그때까지라도 난 매달 학자금 융자 빚을 갚을 때마다 그녀가 생각날 것이다. 그것이 잊혀져가는 그녀를 내가 기억하는 방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지혜 기자는 청년유니온 기획위원입니다.  


#학자금#자살#청년#청년실업 #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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