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모바일닷컴 홈페이지 프로요 업그레이드를 알리는 팝업창
▲ 삼성모바일닷컴 홈페이지 프로요 업그레이드를 알리는 팝업창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명색이 나름 얼리어답터인 내가 갤럭시S를 장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때는 바야흐로 아이폰4가 곧 출시된다는 시점이었고, 아이폰3는 이미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이폰4를 기다리자 했으나 의외로 갤럭시에 대한 평도 좋았고 팔리기도 많이 팔리던 때였다. 기다리면 살 수 있는 아쉬움 쯤  갤러시S가 대신해줄 걸로 알고 미련 없이 구입했다.

덕택에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행렬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이름도 생소했던 어플리케이션의 세계도 실컷 맛보았음은 물론이다. 아이폰을 써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내 수준에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도 그리 만만한 기계는 아니었다.

어쨌든 갤럭시S는 스마트폰 속 경이로운 IT세상으로 나를 인도한 선지자였다.

애플사의 야심작인 아이폰의 대항마로 갤럭시S를 창조한 삼성은 그 후 두 번에 걸쳐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매번 삼성서비스 센터를 찾아가 전문가들로부터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내가 직접 할 경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도 우려되었지만 적어도 이런 첨단의 장비만큼은 나보다 전문가가 훨씬 믿을 만하다는 소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다.

갤럭시의 프로요 업그레이드는 지난 11월 15일 삼성모바일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떠들썩하게 시작되었고, 전문 서비스 점에서는 다음 날인 11월 16일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시내 나갈 일이 있었던 나는 알뜰하게 서비스점을 방문했다.

소식을 듣고 업그레이드를 하려는 손님들이 많아서인지 별도의 갤럭시 업그레이드 접수창구가 만들어져 있었고, 별도의 접수증에 기록을 하고 사인을 한 후 접수를 했다(뒤에 무심코 사인을 한 접수증에 얽힌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무심코 서명한 접수증, 함정이었네!

서비스 접수증 갤럭시 프로요 업그레이드 요청서. 이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접수 자체가 안된다.
▲ 서비스 접수증 갤럭시 프로요 업그레이드 요청서. 이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접수 자체가 안된다.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접수를 하면서 직원은 프로요 업그레이드는 핸드폰을 초기화하기 때문에 어플리케이션까지 다 삭제된다는 말을 했다. 아주 잠깐 공들여 깔아놓은 어플리케이션을 다시 까는 번거로움을 계산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업그레이드의 기본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장된 주소록(전화번호)은 서비스 직원이 직접 백업 후 원위치 시켜줄 거라는 얘기를 들었고, 직원은 주소록 데이터를 확인한 후 저장된 숫자를 접수증에 기록했다. '227'이라는 숫자가 내 주소록에서 확인된 전화번호 개수였다. 갤럭시S는 그렇게 내 손을 떠나 서비스센터의 기술부 직원 손으로 넘어갔다.

대기실에 앉아 잡지책을 보며 프로요 업그레이드 후 새롭게 변신할 갤럭시S를 기다렸다. 2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서비스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 손님… 업그레이드는 다 마쳤는데요. 주소록에 있는 이름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직원이 내게 건네 준 핸드폰 화면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이름들이 전혀 알아볼 수 없게 글자들이 모두 깨져있었다. 전화번호는 그대로 남았지만 이름이 이런 상황이라면 주소록은 의미가 없는 거였다. 전화번호야 굳이 저장을 하지 않아도 발신번호로 다 뜨는 거 아닌가.

갤럭시S 프로요 업그레이드 후 주소록에 있는 이름들이 모두 깨졌다.
▲ 갤럭시S 프로요 업그레이드 후 주소록에 있는 이름들이 모두 깨졌다.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아니 이거 문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상황인데요? 그쪽에서 알아서 백업하고 업그레이드 후 다시 돌려놓기로 하지 않았나요?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거죠?"

"백업을 해서 업그레이드를 하고 다시 저장을 했습니다만 백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럼 본사에 의뢰해서 복구를 해보세요. 내 손을 떠나 기술자 손에 넘어간 핸드폰이 문제가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그냥 가지고 가겠습니까?"

문제의 직원과 그보다 상사인 직원까지 가세해서 문제해결을 하고 있는 사이에 온갖 복잡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전화번호를 010 통합번호로 바꾼 때가 6년이 넘었고, 그 기간 동안 서울에서 경상도로 다시 경상도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오면서 맺은 인연들은 차곡차곡 핸드폰 안에 저장이 되어 있었다.

굳이 주소록을 찾지 않아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인연도 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 인연도 있다. 그리고 그 인연이란 게 검은색 흰색처럼 호불호를 구분 지을 수 없는 복잡한 것이다.

스스럼없는 인연이 있고, 약간은 부담스러운 인연도 있다. 순전히 일로만 맺어진 인연이 있고, 싫지만 연락을 끊지 못하는 인연도 있다. 약간 서먹서먹한 인연이 있고, 아주 가끔 통화만 하는 인연도 있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순조롭게 연결되는 인연이 있고, 딱 그 한 사람만 맺어진 인연이 있다.     

말하자면 이렇게 복잡한 모든 인연의 고리가 한 순간에 툭, 하고 끊어져 버린 것이다. 생각할수록 심각한 문제였다.

처음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선 시각이 오후 세 시경이었다.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6시까지 기다렸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대신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이 기종은 핸드폰에서 컴퓨터로 백업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핸드폰 자체의 내장 메모리에 백업하고 업그레이드를 한 후 다시 불러내는 방식입니다. 아마 내장 메모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사 기술진에서도 현재로서는 복구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죄송하지만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업그레이드를 직접 하기 부담스러워 일부러 센터를 찾았는데 그쪽에서 발생시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결론은 복구가 안됐으니까 그냥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네요? 도의적인 책임도 안 지겠다는 겁니까?" 

"손님, 책임 묻지 않겠다고 사인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비스센터 직원 손에 의해 사라진 이름들 때문에 막막해하고 있는데 해결할 수 없으니 그냥 가시라는 말을 듣고 나니 허탈해진 마음에 억울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의를 했다.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핸드폰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 소중한 기록들을 날려 버리고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가라는 투의 결론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 직원이 내게 하는 말이 이랬다.

"손님. 접수증에 초기화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사인하셨습니다."

"네?"

직원이 건네 준 접수증을 빨리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위 주의 사항을 확인하였으며 귀사에서 업그레이드(데이터 이동 포함)중 발생되는 모든 고객 데이터 초기화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접수증 접수를 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사인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법적 면피용이었다. 설사 일찍 알았더라도 사인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접수증이 있어야 업그레이드가 시작된다.
▲ 접수증 접수를 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사인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법적 면피용이었다. 설사 일찍 알았더라도 사인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접수증이 있어야 업그레이드가 시작된다.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접수증이란 것이 접수가 되지 않으면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는 그러니까 반드시 접수를 시켜야 하는 서류인데 그래서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애초에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데 이런 글귀를 써 놓고 책임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렇다.

"그렇다면 그 쪽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조차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로군요. 동의하기 어려운 글귀에 사인을 안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말이죠."

억울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본사 기술진에 의뢰할 것을 부탁하고 일단 대여폰을 받아들고 왔고, 이틀이 지난 후까지 전화 한 번 직접 걸어오지 않는 서비스센터의 행태에 분노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틀이 지나도 주소록은 복구되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찾아오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만만치 않았던 핸드폰 가격에 분명 사후서비스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을 건데 내 손을 떠나 기술자의 손에서 터진 문제조차 내가 감당해야 한다면 도대체 이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공정함이란 단어가 낄 여지는 없다. 

게다가 서비스를 받는데 반드시 필요한 접수증에 순전히 회사에 유리한 글귀를 써 넣고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사인을 해야 절차가 이행되는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소비자가 다 뒤집어 써야 하는 이런 황당한 거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나는 무기력했다.

그래도 어쨌든 지난 6년 동안의 기록들을 다시 찾아 복구해야 한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 전화를 하고 메일을 써 보내기 시작했다.

갤럭시S 이름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깨져있는 화면
▲ 갤럭시S 이름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깨져있는 화면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핸드폰에 저장되었던 주소록이 삼성서비스 센터에서 날아가 버렸다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그냥 조용히 센터를 나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네. 혹시 네가 아는 사람들 중에 나를 알만 한 사람들 이름과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겠나?

그래도 아마 끝내 찾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은 나오지 싶다. 그렇게라도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지리한 시간도 순전히 내 몫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섬성전자#갤럭시S#프로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