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란이 궁을 나가자 남치옥은 '사포루(司圃樓)'를 차려 중인들을 상대로 기방 영업을 시작했다. 남별감도 함께 궁을 나왔으니 벌써 삼십년이나 지난 일이다.
어느덧 쉰다섯, 세자궁 별감을 지낼 때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자 액정으로 옮겨 사포(司圃)란 관직에 십여 년이나 있었다. 그 당시 걸친 화려한 옷차림이 거뭇거뭇 눈에 스치니 <한양가>에서 노래한 그 모습이었다.
다홍생초 고운 홍의 숙초창의 받쳐 입고보라누비 저고리에 외올뜨기 누비바지양색단 누비배자 전배자 받쳐입고금향수주 누비토수 전토수 받쳐끼고 별감 특유의 옷인 홍의는 삶지 않은 명주실로 짠 비단이다. 그 안에 삶은 명주실로 짠 비단, 숙초를 받쳐 입은데 창의 속엔 보라색 누비저고리를 입고 외올뜨기 누비바지를 입었다.
외올뜨기가 뭔가. 망건이나 탕건처럼 한 가닥으로 떴다는 것이다. 손이 가는 누비를 입었으니 이 역시 사치품이다. 외올뜨기 누비바지 역시 여간 정성을 기울인 것이고 양색단(兩色緞)을 썼다는 건 다른 색의 씨실과 날실을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런 감으로 만든 배자에 솜을 넣었으니 아주 호사스러운 옷이다. 거기에 받쳐 입은 게 전배자(氈褙子)라 했다. 즉, 짐승의 털가죽을 안에 댄 조끼와 같은 옷으로, 거기에 검붉은 빛의 고급 비단으로 만든 토시를 받쳐 끼었으니 혜원 신윤복의 <유곽쟁웅>에 나온 그 모습의 옷치레다.
사포(司圃)이던 그가 밖에 나갈 때엔, 중국제 비단 허리띠에 장식용 괴불주머니를 다는 데 그 안엔 향낭(香囊)이 있었다. 그 곳에서 풍겨나는 향은 중국에서 들여온 대방전과 이궁전이고, 은으로 만든 네모꼴 향갑에 한충향(漢沖香)을 넣어 노리개로 사용했다. 가끔 곽란같은 급한 증세엔 약으로도 사용했는데 향낭 뒤엔 칼집있는 작은 칼을 찼다. 대부분 사치용이다.
남에게 보이게 한 물건이니 물소 뿔로 만든 장도를 차고 둘레가 모가 진 귀주머니를 차고 은근 슬쩍 오입쟁이 시종별감과 침기·의녀·기생들을 불러 풍악을 잡았다.
궁에서 나온 후 남치옥은 어슴프레 눈을 감고 승전놀음을 떠올렸다. 별감의 놀이인 만큼 놀이판도 사치스러웠다. 놀이가 벌어지는 곳은 경희궁 북쪽 훈련도감 분영이다. 휘장을 치고 햇볕을 가리느라 차일을 치고, 그 아래 기름 먹인 종이를 깔고 좌석을 넓히려 판목을 댔다.
단청을 올린 서까래엔 여러 빛깔의 비단을 겉씌운 사촉롱(紗觸籠)과 양의 뿔을 투명할 정도로 얇게 편 양각등(羊角燈), 꽃 모양으로 만든 화초등을 걸어 좁쌀구슬이나 꽃으로 장식을 더하고 여러 모양의 조화를 붉은 비단으로 묶어 얼음무늬가 진 병에 꽂는다.
사람들이 앉을 자리도 여간 호사스럽다. 꽃무늬를 넣어 짠 왕골방석과 검은 헝겊을 두른 푸른 돗자리를 깔고 옥으로 만든 타구와 요강, 은재떨이를 갖추었다.
먹을 것은 어떤가. 밖으로 나왔으니 일본에서 들여온 왜찬합(倭饌盒)과 중국제 당찬합(唐饌盒)이 교자상에 오르고 잔칫상 뒤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병풍, 새를 그린 영모병풍, 산수병풍과 글씨병풍이 놓인 채 넘어지지 않도록 구멍을 뚫어 홍융사로 묶어놓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노래와 거문고 연주를 하는 가객(歌客)과 금객(琴客)이 온갖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남치옥은 승전놀음을 벌일 때 범상치 않은 기생의 꾸밈이 떠올랐다. 그녀들의 모양새를 노래한 <한양가>를 살펴보자.
어름같은 누런 전모 자지갑사 끈을 달고구름같은 허튼 머리 반달같은 쌍얼레로솰솰 빗겨 고이 빗겨 편월 좋게 땋아 얹고모단 삼승 가리마를 앞을 덮어 숙여 쓰고산호잠 밀화비녀 은비녀 금봉차를이리 꽂고 저리 꽂고 당가화 상가화를 눈을 가려 자주 꽂고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처럼 전모를 쓴 여인이 보인다. 대나무를 쪼개 우산 살을 만들고 기름 바른 종이 위에 쓰개를 바른다. 품질 좋은 자줏빛 비단 끈을 턱 밑에서 매고 구름같이 흩어진 머리를 얼레빗으로 빗는다.
산호로 만든 잠과 밀화, 호박으로 만든 비녀나 은비녀 또는 봉황을 새긴 호사스런 금비녀를 꽂으니 영락없이 그림 속의 미인이다. 이러한 차림의 기생들이 머리에 성성이의 핏빛같은 모전(毛氈)을 쓰고 삼현육각에 맞춰 춤을 춘다. 무당의 춤으로 통하는 항장무(項莊舞)다.
초나라의 항우가 홍문(鴻門)에서 유방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을 때, 항우의 산하 중 항장이 유방을 죽이고자 칼춤을 춘 것을 가리킨다. 이 춤이 끝나면 12가사 12잡가의 막이 올라 본격적인 놀이판으로 들어간다.
남치옥이 궁에서 나오기 직전 보았던 승전놀음은 사치의 극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날 금객(琴客)으로 나선 한 사내의 목소리가 지금껏 마음에 남아 있었다. 둥기당 둥당! 줄이 울자 사내는 목청을 돋우었다.
이 몸이 어인 몸인가동궁마마 가까이 모시던 몸이라네이 거문고는 어떤 거문고인가세자께서 즐기시던 거문고라네꽃다운 젊은 세월 머물지 않아이내 몸은 떠돌이가 되었다오거문고여, 거문고여!누가 너를 알아줄까노래에 맞춰 거문고 타는 소리가 끝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쏟았다. 그게 누구를 빗대어 부른 노래며 무엇을 한탄하는 노래인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거문고 소리가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를 그리워 한다는 걸 사람들은 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남치옥은 금객을 따로 불러 조촐한 주안상을 마련하고 술 잔을 내밀었다.
"가야금을 어루만지는 금객(琴客)께선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와 인연이 있으신 모양입니다.""그것은 내 음(音)을 알기 때문입니다."
"음을 알아요?""그렇지요."
사도세자가 도성 안의 유곽을 돌아다니고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낼 때, 항상 그의 곁엔 금객(琴客)이 있었다. 술을 마실 때도 사랑을 나눌 때도 병풍을 친 뒷전에서 가야금을 뜯었다. 그렇다 보니 사도세자의 어지러운 일상은 노인이 모두 알고 있었다. 사도세자가 말했었다.
"악공은 <열자(列子)>를 읽었느냐?""아니옵니다."
"허면,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읽었느냐?""아니옵니다."
"에잉,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모르고 어찌 악공이랄 수 있느냐?""백아절현이라면,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兪伯牙)의 얘기가 아닙니까."
"아느냐?""들은 바 있습니다."
"오호, 말하라!""춘추시대 진(晉)나라에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가 살았나이다.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어떤 이유인 지 그곳에 와서 살았던 모양입니다. 맹인이었던 유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릴 이해한 것은 뜻밖에 초라한 나무꾼 종자기(種子期)였나이다. 유백아가 거문고를 타 높은 산울림으로 표현하면 종자기는 그것을 소리의 웅장함이 태산과 같다 평하였고, 흐르는 물을 거문고에 실으면 소리의 양양함이 양자강같다 하였나이다. 어느 때인가 유백아가 종자기를 찾아갔는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 그의 무덤 앞에서 한 곡을 뜯고 거문고를 부쉈다고 들었나이다."
"어째서 그랬느냐?""자신의 음(音)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거문고를 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하하하, 넌 어떠냐. 내가 세상을 떠나면 너도 거문고를 부수겠느냐?""마마···, 소인은···."
"아까우냐?""아니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인지라···."
"내가 평양길에서 만난 점쟁이가 있었다. 그 자가 두 장의 그림을 내놓았는데 하나는 '금시조(金翅鳥)'요 다른 하난 '뇌공도(雷公圖)'였다. 이 그림 중 어느 게 마음에 드느냐 묻기에 '금시조'라 했더니 점쟁이 말이, '이 새는 용을 잡아먹는 신령스런 새니 사나운 새의 노림을 피하려면 토굴을 파고 숨어야겠다'고 하셨는데 세자마마는 뒤주에 갇혀 죽고 말았소.""으음."
"그 후 점쟁이를 찾아 평양길을 몇 차례 나섰으나 찾질 못했소. 내가 궁금한 건 '뇌공도'요. 세자마마가 '뇌공도'를 선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묻고 싶어서말입니다.""아직도, 점쟁이는 못 만났소?"
"이번 평양길에 만났었지요.""뭐라 들었소?"
"점쟁이가 하는 말이, '금시조'는 살았을 때의 운(運)이고 '뇌공도'는 죽었을 때의 운이라 했소. 그림에 대해선 휴수(休囚) 시기가 오면 알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었소.""휴수시기라면 언제를 말하는 것이오?"
"무덤을 쓴 지 삼십 년 안쪽입니다."다시 말해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서 죽은 후 양주 배봉산 갑(甲坐) 언덕에 묻고 수은묘(垂恩墓)라 불렀는데, 그 자리는 묏자리에 물이 고이고 정자각(丁字閣)에 뱀이 멋대로 출입하는 흉악한 곳이었다.
삼십 년이 지나 수은묘는 영우원으로 바뀌고 이젠 그 분의 아드님 정조 대왕의 명으로 수원부의 관가 뒷산에 현륭원이란 이름의 장지에 모셔진 상태였다. 그런데 남치옥은 무슨 이유로 <뇌공도>를 그린 김덕성을 가까이 두고 뒤를 돌봐 주는 지 모를 일이었다.
[주]
∎한충향(漢沖香) ; 지난날, 여자들이 차던 노리개
∎휴수(休囚) ; 3년에서 30년 사이에 무덤을 열어 이상이 있는 지를 살피는 것
∎백아절현(伯牙節絃)과 지음(知音)은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