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모범적인 사회공헌사업'으로 내세워온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사업과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 등을 대폭 축소하거나 중단하자 자원봉사자들인 '퍼피 워커'(puppy walker)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퍼피 워커'란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할 강아지를 1년 동안 자신의 가정에서 돌보며 사회에 적응시키는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가리킨다. 삼성은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사업과 인명구조견사업을 중단한 데 이어 시각장애인 안내견사업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안내견학교의 한 관계자는 "인력을 일부 줄이긴 했지만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분양은 기존 규모를 유지할 것"이라며 "안내견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22일 "삼성은 최근 청각 도우미견과 인명구조견 등의 사회공헌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하고 75명의 관리인력 중 73%에 해당하는 55명에게 퇴직을 통보했다"고 삼성의 안내견사업 축소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관련기사 :
<삼성 모범사회공헌 '안내견사업' 축소하나?>)한 바 있다.
1년여간 '퍼피 워키' 과정 거쳐 40-50% 정도만이 안내견으로 활동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되기 위해서는 '퍼피 워킹'(puppy walking)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퍼피 워킹'이란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양성하기 위한 첫 단계다. 7주 정도의 강아지를 일반 가정에 위탁해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이다. 안내견으로 활동시키기 위한 일종의 '사회화 훈련 과정'이다.
퍼피 워킹에는 복종과 배변, 사회시설 적응 등의 훈련이 포함된다. 퍼피 워킹은 약 12~14개월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퍼피 워킹 결과에 따라 안내견 활동 여부가 결정된다. 그만큼 안내견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퍼피 워킹이 중요하다. 이렇게 시각장애인 안내견들을 훈련시키는 자원봉사자들을 '퍼피 워커'라 부른다. 월 1회 안내견학교에서 방문하긴 하지만 시각장애인 양성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퍼피 워킹 과정을 거친다고 모두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1년의 퍼피 워킹 과정이 끝나면 다시 안내견학교로 돌아가 6~8개월 동안 보행시험 등을 거친다. 실제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후보견은 전체의 40~50%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재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는 보통 라브라도 리트리버(Labrador Retriever)와 골든 리트리버(Golden Retriever), 세퍼드 등의 종들이 사용된다. 현재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수백~1만여 마리가 길러지고 있다. 안내견 양성과 분양 등은 대부분 민간단체에서 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93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근처에 '삼성안내견학교'를 세웠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을 양성하는 역할은 삼성에버랜드('국제화 기획실')에서 맡고 있지만, 운영자금은 삼성화재 등 각 계열사들이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있다.
삼성안내견학교에서는 지난 94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분양한 이후 2009년 말 현재까지 총 130마리를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했다. 현재 안내견학교에 소속된 안내견은 은퇴견 34마리를 포함해 180여 마리에 이른다. 여기에는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63마리, 퍼피 워킹을 받고 있는 46마리, 퍼피 워킹을 마치고 훈련 중인 16마리 등이 포함돼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고 뽑힌 퍼피 워커들은 안내견학교에서 4주(1주 4시간)에 걸쳐 관련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양성된 퍼피 워커들은 16년간 수백 명에 이른다.
문제는 삼성이 청각장애인 도우미견과 인명구조견 사업을 중단한 데 이어 퍼피 워커들의 자원봉사활동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사업까지도 축소했다는 데 있다.
삼성안내견학교 사정에 정통한 한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 전담 인력이 20명이었는데 14명이 잘리고 6명만 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안내견사업이 삼성의 사회공헌사업이라고 하지만 삼성의 힘만으로 진행될 수 없는 사업"이라며 "안내견사업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들을 보고 자원봉사하지, 삼성을 위해서 자원봉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들과 퇴직당한 훈련사들의 목소리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안내견사업은 자원봉사자들의 땀으로 만들어져... 삼성 전유물 아니다"실제 지난 26일 서울에서 만난 퍼피 워커들은 삼성에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이들은 "삼성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떤 통보나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안내견사업을 일방적으로 축소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A씨는 "안내견을 관리하는 인력이 수십 명 있다고 해도 '퍼피 워킹'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으면 운영하기 힘들다"며 "그런데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사업을 축소한 것에 배신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팡이, 전자신호기, 안내견 중에서 시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제일 우수한 수단이 안내견"이라며 "안내견사업은 시각장애들이 정상적인 사회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B씨는 "삼성 측은 에버랜드의 경영악화 때문에 사업을 축소했다고 하지만 에버랜드의 경영악화를 안내견학교에 적용할 수는 없다"며 "삼성화재 등 각 계열사들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안내견학교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내견학교는 비영리기관으로 출발했는데 거기에다 경영분석을 들이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가가 하지 않는 걸 삼성이 해온 덕분에 시각장애인의 삶의 격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안내견사업을 축소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C씨는 "글로벌기업인 삼성이 안내견사업을 시작해 기꺼이 자원봉사활동에 동참했다"며 "안내견사업이 더 이상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라고 해서 사업 축소를 결정하는 마인드로 글로벌기업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내가 듣기로는 안내견학교에 들어가는 돈이 1년에 40~50억 원 정도"라며 "하지만 안내견학교로 인한 삼성 홍보 효과가 그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안다면 사업을 축소하거나 접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물건을 많이 판다고 선진국이 아니라 장애인 등의 복지수준이 높아져야 선진국"이라며 "특히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장애인복지사업인 안내견사업을 축소한다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꼬집었다.
D씨는 "안내견사업은 자원봉사자들(퍼피 워커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삼성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특히 안내견으로 훈련받을 강아지가 50마리나 태어난 해에 구조조정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2층 건물이라도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지어야 한다"며 "시각장애인이 정상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안내견사업을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보건복지부)와 안내견 사용 시각장애인, 퍼피 워커들이 모여서 축소된 안내견사업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삼성이 안내견사업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삼성측 "선진국에 비해 인력 많은 편... 안내견 사용자들 안 불편하도록 하겠다"하지만 삼성안내견학교의 한 관계자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과 인명구조견사업은 중단했지만 시각장애인 안내견사업은 기존에 분양하던 규모(5~10마리)를 유지할 것"이라며 "사육사가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마케팅이나 홍보팀 인력이 많이 줄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안내견학교의 경우 영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안내견 학교보다 관리인력이 많은 편이었다"며 "마케팅이나 홍보팀 인력을 줄이고 사육사 등 전문부서 인력이 겸직하는 형태의 기능적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퍼피 워킹 하시는 분들은 사육사가 그만둔다고 해서 서운한 감정이 있는 것 같다"며 "기존 안내견 사용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측은 75명의 관리인력 중 20명 정도만 구조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한 결과, 실제 구조조정 대상은 희망퇴직과 계열사 전배 등을 통틀어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