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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회의실 출입이 저지되자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해머로 부수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2월 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회의실 출입이 저지되자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해머로 부수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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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18일 오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 회의장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나라당이 쌓은 '바리케이드'를 뚫기 위해 민주당이 동원한 해머와 전기톱에 회의장 문고리는 잘려나갔고,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은 질서유지권 발동에 따라 배치된 국회 경위들과 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서로를 향해 물 세례를 퍼붓고 소화기 분말을 뿜어대는 통에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국회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충돌이 벌어진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반대를 바리케이드로 막고 비준동의안을 외통위에 단독 상정했다. 이어 이듬해 4월 비준동의안은 외통위를 통과했다.

2년 전 아수라장 됐던 국회 외통위 

한나라당이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나선 이유는 "한국이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미국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 "먼저 비준해야 미국이 재협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는 등의 단순 논리였다.

하지만 상임위 통과 후 본회의 상정 대기 중이던 비준동의안은 사실상 휴짓조각이 됐고 한나라당이 내세운 '선 비준을 통한 압박' 전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 착오로 드러났다. 그동안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끊이지 않았고 불과 2년 만에 정부가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재협상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밀실 협상 끝에 자동차 분야에서 대폭 양보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상황에 처했다.

외통위 충돌 당시 '해머'로 문고리를 내리쳐 벌금형까지 받은 문학진 민주당 의원은 "허탈하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당시 민주당 외통위 간사로 "2009년 하반기나 돼야 미국 의회에서 한미FTA가 논의될 텐데 우리가 서두를 이유가 없다"며 '선 대책 마련 후 비준안 처리'를 주장했었다.

문 의원은 "2008년 당시 야당의 우려가 그대로 현실이 됐다"며 "야당의 요구를 무시한 채 아무런 대책 마련 없이 무조건 통과시키고 보자는 조급증이 망신을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 막은 한나라당의 바리케이드... "판단 착오이자 오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5당은 지난달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가 진행중인 한미FTA 협상은 일방적인 양보로 이뤄지는 굴욕적인 퍼주기 협상"이라며 국회비준 거부 입장을 밝혔다. 앞줄 왼쪽부터 국민참여당 이재정, 진보신당 조승수, 민주당 손학규, 민주노동당 이정희,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5당은 지난달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가 진행중인 한미FTA 협상은 일방적인 양보로 이뤄지는 굴욕적인 퍼주기 협상"이라며 국회비준 거부 입장을 밝혔다. 앞줄 왼쪽부터 국민참여당 이재정, 진보신당 조승수, 민주당 손학규, 민주노동당 이정희,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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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준안 날치기 상정을 감행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패를 집어던지며 "더러운 이름들"이라며 분노를 나타냈던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정부의 판단 착오가 아쉬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동차 분야 재협상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당시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며 "정부는 이 같은 야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무조건 비준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분명 정부의 판단 착오이자 오류였다"고 지적했다.

외통위 회의장의 문을 걸어 잠그고 비준안 단독상정에 참여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당시 비준안 처리에 있어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 맞았고 나도 같은 입장이었다"며 "우리가 먼저 비준안을 통과시켜 미국을 압박하자는 주장은 지금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홍 의원은 "여당 내에서도 그런 지적이 나왔지만 결국 당대 당의 대결이 되면서 그런 불상사가 생기게 됐다"며 "하지만 야당의 주장이 백번 맞다고 해도 폭력이 용납될 수는 없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현재 미국과의 재협상을 끝낸 정부는 한미FTA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먼저 비준안 처리 절차에 대한 여야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먹구름 낀 국회... "제2의 해머 사태 날 수도"

야당은 이미 협정문의 내용이 바뀐 만큼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무효라며 전체 협정문이 상임위 처리 과정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 여당 내에서는 새로 합의한 내용은 부속서 형식의 새로운 문서에 담을 예정인 만큼 이 부분만 비준동의를 받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부가 들고온 협상 성적표에 대한 여야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또 한번의 여야 충돌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문학진 의원은 "보수 진영에서도 우리가 더 주고 덜 받은 협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쉽게 비준안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 여당이 다시 바리케이드를 쌓고 강행 처리에 나선다면 '제2의 해머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정희 대표는 "정부가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는 한 비준안을 국회에 가지고 온다고 해도 논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정욱 의원도 정부에 대해서 쓴소리를 했다. 그는 "재협상을 투명하게 하지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가져온 성과도 미미했다"며 "정부가 국가 안보 등 전략적 이유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설득해 가야지 이익의 균형점을 맞췄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들고온 협상 결과는 삼키기엔 쓰고 그렇다고 뱉을 수도 없는 열매"라고 평가했다.

홍 의원은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 원죄가 있는 만큼 단독 처리 유혹을 뿌리치고 야당 설득 노력을 진지하게 해나가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기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식의 강압적인 비준안 처리에는 동참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밀실·졸속 협상 막을 통상절차법 제정 서둘러야"

이참에 중단된 통상절차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상협상 진행 과정의 국회 보고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통상절차법이 제정됐다면 이번 한미FTA 재협상에서도 반복된 정부의 일방적인 밀실 협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여야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촛불'로 타오르자 통상절차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정부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정희 대표는 "2008년 말까지 여야가 통상절차법을 제정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정부의 졸속 협상을 막지 못했다"며 "한미 FTA 비준 문제와는 별도로 통상 협상에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절차적 문제를 보완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태그:#한미FTA, #문학진, #이정희, #홍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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