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심했다. 아기였을 때는 심심하면(?) 경기를 일으켜 부모님을 놀라게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열감기로 앓아 눕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천식 때문에 이틀간 학교를 못 갔고 맹장염 때문에 우리 가족 최초(?)로 병원에 입원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자랄수록 병에 걸리는 일이 없었다.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몸을 심하게 다친 적도 없었다. 군대 신체검사에서는 '자랑스런'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이등병 시절 힘겨운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대체 내 몸은 왜 이리 건강한 거냐? 좀 픽픽 쓰러지고 해야 하는데 왜 아픈 곳도 없냐?'는 배부른 한탄을 할 정도로 몸에 이상이 전혀 없었다.
내 몸은 왜 이리 건강한 걸까?3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조금씩 몸을 망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고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정말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일이 계속 됐다. 그나마도 저녁은 밥이 아닌 술로 채운 적도 많았다. '주6일 음주'가 자행됐던 시기도 이때였고 주량이 소주 한 병에서 한 병 반으로 늘어난 것도 이때였으며 주량을 무시하고 무조건 퍼마시는 데 열중한 시기도 이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여전히 깨지 않는 술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그 때문에 화장실을 열 번, 스무 번을 드나들고 양치질을 하다가 헛구역질을 하고 두통 때문에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일이 계속됐다. 그 때마다 '술 좀 줄여야지', '간이 나빠졌구나'하며 몸을 챙기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몸이 나아지면 또 술을 향해 전진했다. '그래도 난 담배는 안 핀다' 이것을 위안삼으며.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올해 결국 탈이 났기 때문이다. 생전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졸도'를 경험한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몸에 신경쓸 때'를 비로소 느낀 해가 2010년이다. 그야말로 '특종'이다.
술 퍼마신 다음날, 빈 속으로 버티다...사건은 지난 11월, 공교롭게도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날과 같은 날이다. 이 날 저녁 나는 다니고 있던 신학원에서 발표를 맡았다. 복사비를 아끼려고 수업 시작 직전에 복사실에서 복사를 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나도 모르게.
그 당시 나는 사회복지사 교육과 신학을 병행하면서 저녁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술을 마시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일과가 아니다 보니 새벽 서너시나 돼서 겨우 자고 아침 열시 반 정도 되어야 눈을 뜨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다고 새벽까지 공부했냐고? 그것도 아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넷 서핑만 했다. 운동 부족에 식사 생략, 잦은 음주가 있었지만 역시나 '담배를 안 핀다', 그리고 '아직 몸에 이상이 없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안심 속에 지냈다.
쓰러지기 전날, 기말고사를 보고 시간이 남아 신학원 발표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오랜만에 학교 후배를 만났다. 그래서 저녁을 먹다가 신학원으로 가고 끝난 뒤 다시 모임에 참가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속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 신학원 수업을 하려던 참이었다.
이런, 울엄마 알면 안 되는데!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고 나는 어딘가에 누워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머리는 엄청 아프고 사람들은 보이는데 누군지를 모르겠고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화장실만 찾았다. 구토가 나오려 했으니까.
구토를 네댓번을 하고 겨우 누군지를 알아보던 차에 앰뷸런스가 왔다.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부근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순간적으로 이런 느낌이 왔다. '이런! 울 엄마 알면 안 되는데!!'
어쨌든 피 검사와 소변검사 등이 이어지고 CT 촬영까지 했다. '부모님을 모셔와야 한다'는 의사와 같이 간 사람들의 말에 결국 나는 전화기를 들었고 엄마가 달려왔다.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다행히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머리에는 이상이 없는 셈이다. 당초에는 비디오 뇌파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지만 일단 그 검사는 뒤로 미뤘다. 돈도 많이 드는데다 24시간 동안 검사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몸이 드디어 술을 거부하기 시작한다그런 '생쇼'를 겪으니 이제 드디어 내 몸을 돌봐야 할 때가 왔다는 느낌이 절실히 들었다. 때마침 이 날을 전후해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이고, 30대가 이제 건강할 때가 아니로구나. 적신호의 시작이 바로 30대로구나.
술이 줄어들었다. 아니, 내 의지로 줄였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몸이 허락하면 사실 과음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꼭 징조가 안 좋다. 뭔가 마비되는 느낌이 올 때마다 섬뜩해진다. '아이고, 이러다 또 쓰러지는 거 아닌가?' 움츠러든다.
식사를 챙기기로 했다. 입맛 없어도 속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도 많이 마시고 잠도 일찍 자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종합해보면 이렇다. '난잡한 생활을 멀리 하고 바른 생활을 하자.'
어떻게 보면 올해 이 사건이 고맙기까지 하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주7일 음주에 빠져 허우적댔을지도 모른다. 건강 챙기고 정말 내 몸, 내 마음이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착실하게 보내자. 2010년을 보내며 몸으로 느낀 최고의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