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다섯 번째 이야기는 교육 강국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다. 인구 530만 명의 핀란드는 수준 높은 복지와 교육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 꾸준히 '누구에게나 질 좋은 교육을'이라는 목표를 실현시켜 왔다. 그 결과는 2000년부터 국제학력평가시스템(PISA) 4번 연속 최상위권 기록으로 나타났다. 경쟁과 획일적인 시험이 거의 없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핀란드. 그들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복지제도와 삶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편집자말] |
글 : 윤정현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핀란드 평등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쟁과 입시 부담이 없는 나라로 소개되는 핀란드. 정말 그 나라에는 사교육이 없을까? 그 나라 고3은 입시에 대한 중압감이 정말 없을까?
핀란드 투르쿠 대학 1학년 이리스(19)를 통해 입시와 대학 새내기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리스는 <오마이뉴스> 취재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인터뷰가 진행되자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라고 쑥스러워할 만큼 부끄러움이 많은 10대다. 그는 주위의 친구들처럼 18세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투르쿠 시에 있는 학생용 주택에 살고 있다.
이리스는 다른 나라에 10대가 그렇듯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어, 일부러 부모님이 계신 헬싱키 근처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투르쿠에 있는 대학을 선택했다. 한국으로 치면 일부러 지방유학을 선택한 셈이다. 이리스는 부모님께 용돈을 약간 받기는 하지만,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학생용 주택에 거주하면서, 나름대로 독립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대학교육이 무상이라 가능한 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등록금과 취업경쟁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을 한다는 것을 꿈꾸기가 쉽지 않은 한국 10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원하는 대학 입학하려고 과외도 받았어요"
-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좀 들려달라.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8학년(우리나라 중학교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별로 열심히 안 했다. 그러다가 9학년이 돼 헬싱키에서 성적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입학 경쟁률이 제법 셌는데, 점수가 10점 만점에 9.2가 커트라인이었다. 보통 시내 중심에 있는 학교들이 인기도 많고 커트라인 점수도 더 높다."
- 종합학교(초등학교+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사교육 받아본 적 있나. 대학 입시 준비한다고 과외 받거나 학원 다녀본 적은 없는지?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학 입시 준비하면서 과외를 받았다. 투르쿠 대학 법대를 지원했는데, 이미 법대에 다니고 있는 선배들이 나 같은 수험생들에게 그룹 과외를 해주는 형태였다.
수강료는 5주에 700유로(약 105만원) 했으니까 우리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크게 비싼 편은 아니다. 특히나 의대, 법대, 경제대에 합격 하려면 이런 과외를 받지 않고서는 좀 힘들다. 특별하게 머리가 좋다면 학교 공부만으로 가능하겠지만."
핀란드는 종합학교를 마치면, 적성에 따라 일반고등학교에 가거나 직업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일반고등학교에서 코스를 마친 학생들은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실시되는 대학입학자격시험(메트리큘레이션)을 통해 대학교를 선택한다.
- 대학 입시 준비가 힘들지는 않았는지? "내가 지망한 법대의 경우에는 수험서가 해마다 바뀌고 새 책이 그해 4월 초에 출판되기 때문에 그 전에는 미리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입학시험이 6월 중순에 있었으니까 시험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건 두 달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물론 모든 학과의 상황이 이런 건 아니다. 그리고 학과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대학입학자격시험 성적과 학부 자체 시험 성적을 합산한 결과로 신입생을 뽑는다.
핀란드 고등학교 학제는 유연한 편이라서 내가 졸업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보통 3년 만에 졸업하지만 4년 만에 졸업할 수도 있다. 나는 3년 반 만에 졸업했고, 졸업하기 전까지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쳤다. 졸업하고 나서 입시 준비하기 전까지 영국에서 영어 연수도 잠깐 하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 사람마다 공부하는 속도가 다른데 그걸 인정해주니 참 좋았을 것 같다. 한국에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부모님도 수험생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선 어떤지 궁금하다. "입시 준비생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건 없다. 우리 부모님은 헬싱키 근처 반타에 사시는데 나는 대입 준비 기간 동안 혼자 투르쿠에 와서 기숙사에 머물면서 아침 챙겨먹고 그룹 과외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 과외비가 비싼 게 아니라고 해도 집안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은 과외를 못 받고, 그럼 대학 입시에서 어쨌든 불리한 건데, 핀란드처럼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 받을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에서는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서 서서히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누구나 다 대학에 가야 되는 건 아닌데, 대학 온 이유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최소한 4년 정도 대학 생활이 남아 있는데 대학 생활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일은 뭐가 있나? "앞으로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다. 아무래도 대학을 졸업하면 내가 원하고, 좀 더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진학을 결심했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 생활을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핀란드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안목을 키우고 다양한 지식도 쌓고 싶었다. 내 전공 분야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학이나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 분야를 공부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러모로 성숙해 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할까.(웃음)."
"학생수당 도움 된다, 그러나..."
- 이성 친구를 고를 때 혹시 학력 수준이나 직업, 경제력, 집안 같은 걸 중요하게 따지나?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를 거다. 그래도 대체로 사랑의 감정을 이성 친구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생들 같은 경우엔 대학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다가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학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학력이나 집안 배경보다는 이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인가, 나와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 한달에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돈을 주로 어떻게 쓰는지. "학생 수당이 450유로(약 67만 5000원)고,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 약간하고 내가 이전에 아르바이트로 벌어놓은 돈을 통장에 저축해 찾아 쓰고 있다. 한 달 평균 800유로(약 120만원) 정도 쓴다. 지금 있는 학생용 주택은 세 명이 부엌, 화장실, 거실을 같이 쓰고 방은 따로 쓰는 아파트라서 원룸형보다 싼 편이다. 그래서 한 달에 240유로(약 36만원)를 월세로 내고 있다. 그 나머지는 식비, 교통비, 친구들 만나서 노는 용도로 쓰고 있다."
- 핀란드의 학생 수당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시스템에 만족하는지? 더 바라는 점은 없나. "그런 대로 만족스런 수준이긴 하지만 더 주면 당연히 더 좋겠다(웃음). 사실 이 수당만으로는 문화 생활까지 하긴 힘들다. 그래서 부모님이 용돈을 대 줄 형편이 못 되는 학생들은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공부할 시간도 줄어들고 개인 시간도 많이 부족할거다."
- 언론에서 핀란드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고 하던데, 핀란드 대학은 정말 서열이 없나?"각 학과마다 상황이 달라서 뭐라고 한 마디로 말하긴 힘들다. 경영학과 같은 경우에는 학교별로 선호도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들이 보통 헬싱키, 탐페레, 오울루, 투르쿠, 로바니에미, 위바스킬라 같이 큰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가는 걸 선호한다. 특히 우리 나이엔 큰 도시에서 다양한 것도 경험해 보고 싶고, 부모님이랑 떨어져서도 살아보고 싶고 그렇지 않은가."
- 이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한 학기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해 보니 그 질이나 시스템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대학생은 자기 공부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계획을 짜고 공부하고 싶은 내용도 본인이 찾아야 한다. 그게 고등학교 때랑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러피언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 박수원 기자(팀장), 임정훈 시민기자, 윤정현 해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