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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한 <세렌디피티>, 솔로돌의 꿈이 담긴 영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한 <세렌디피티>, 솔로돌의 꿈이 담긴 영화다
ⓒ Simon Fields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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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솔로들에게 공포의 시간 크리스마스 이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째깍째깍 빠르게 지나는 시간은 대한민국 '솔로 게릴라' 중 한 명인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빙하기처럼 추워진 날씨도 서럽건만, 24일과 25일 저녁 대한민국 시내를 백만 커플 군단에게 내줘야 하는 반년 차 솔로 게릴라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직년 이맘때. 만나는 사람과 행복한 파티를 할 때는 '혼자된 자'들의 슬픈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 케이크만 먹지 말고, 이 땅의 솔로들을 위해 기도라도 했어야 했다. 또 펑펑 내리던 함박눈을 보며 "아, 눈 참 예쁘게 내린다"라는 이기적인 말 따윈 내뱉지 말았어야 했다. 그로 인해 솔로신의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니까.

솔로신의 저주라도 받은 듯, 올해 입장이 반대가 되어 버린 난 '아, 이래서 크리스마스에는 폭우가 내려야 하는구나!'를 실감한다. 교통을 마비 시키고, 전국의 국군 장병들을 고생 시키는, 그리고 무엇보다 전국의 커플들 연애지수만 높여주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따위 우리나라에 백해무익(?) 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비가 주르륵 내리기를 바라며, 일기예보 사이트에 접속해 날씨를 확인했다. 그런데 으악, 기대와는 달리 충격의 예보를 보고 말았다. 내가 사는 대전 지역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아닌가.

'으악! 화이트 크리스마스? 쳇, 커플들에게 유리한 기상 예보, 믿지 않겠어!'

25일, 내가 살고있는 대전지역엔 눈이 내린다고 한다. 딱 대전에 걸친 눈 소식에 솔로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해진다
 25일, 내가 살고있는 대전지역엔 눈이 내린다고 한다. 딱 대전에 걸친 눈 소식에 솔로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해진다
ⓒ 기상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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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예보에 기분 전환을 하려고 웹서핑을 해도, 눈에 띄는 것은 '연인이, 크리스마스때 갈 만한 장소' 같은 류의 반솔로적 정보뿐이다. 어디에도 '크리스마스 때 솔로가 은둔할 만한 장소' 같은 건, 나와 있지 않았다. 사막 같이 황량했던 내 눈가에선 갑자기 오아시스라도 터진 듯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쓸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순간, 이 상황에서 믿을 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때 한턱 쏠게"라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런데 들려온 "앗, 미안. 형, 나 그때 약속 잡아놨어. 형 설마 약속 없는 거야?"라는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누나와 부모님께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한 달 전에 '24, 25일 크리스마스 전타임' 약속이 완료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으면 이번 크리스마스를 혼자 집에 콕 박혀서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친구 목록을 살폈던 것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솔로들의 크리스마스 친구 케빈! 우리 이제 절교하자

핸드폰 목록을 뒤적거리며 든 결론은... 이 크리스마스의 위기를 함께 넘길 사람은 역시 절친들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켰던 믿음직한 친구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나무꾼'이 얼마나 서러웠을지 알게 됐다. 두 녀석 다 일이 있었다. 한 명은 여자친구와의 약속, 또 한 명은 타지에 있어 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야, 친구 사이에 그럴 거야? 뭐, 여자친구 약속? 그게 밥 먹여줘?"

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참 말도 안되는 투정인 걸 안다. 사실, 나도 작년에 같은 이유로 친구와의 약속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친구 제일주의' 타령이라니, 친구들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결국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한 번쯤, 약속을 잡아 봄직한 사람들이 생각났지만, 왠지 민폐일 것 같아 그냥 마음을 접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집에서 혼자 보내기로 어려운 선택을 했다. 까짓것 크리스마스 약속 없어도 내 친구가 TV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란 사실에 조금 위안이 됐다.

크리스마스때면 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던 케빈, 그런데 올해 크리스마스엔 어디로 갔니?
 크리스마스때면 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던 케빈, 그런데 올해 크리스마스엔 어디로 갔니?
ⓒ 20세기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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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크리스마스날의 쓸쓸한 솔로들에겐, 케빈이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지 않은가. 영화 <나홀로집에> 시리즈의 주연 그 케빈(맥컬리 컬킨) 말이다.

어린시절부터,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나타났던 그는 이번에도 하루 종일 나타나, 솔로들의 크리스마스를 쓸쓸하지 않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케빈이 어디 갔을까. 지상파 편성표를 아무리 뒤져봐도 케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으악, 마지막으로 믿었던 케빈마저, 지상파 TV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올해 케빈은,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영화 채널들에서 25일 오후에 만나볼 수 있다).

크리마스 오후에 케이블 채널에서 킬링타임용으로 잠깐 만나 볼 수 있는 케빈은 험난했던 과거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주'를 함께 이겨냈던 그 친구가 아니었다.

그래, 다시금 생각해 보니 케빈과의 짧은 만남으로 크리스마스를 대체하기엔 무리였다. 어쩌면 그는, 크리스마스만을 넘기기 위한 계약형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계가 벌써 20년 가까이 계속되는 것은 잘 못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솔로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에게 의지한 것 같다. 나부터 그랬다. 그래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케빈을 떠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겠다. 굿바이, 케빈! 우린 오늘부로 절교다. 하지만 케빈을 보낸 자리에, 마땅한 대안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태연하게 눈감고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다가올 이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때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운명처럼 마주친 조나단(존 쿠삭)과 사라(케이트 베켄세일)의 모습이 참 예뻤던 <세렌디피티>. 이 영화가 준 교훈은, 크리스마스때 용기를 냈기에 새 인연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운명처럼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게 다가오는 거예요"라는 영화 속 대사는 솔로들에게 자그만 희망을 준다. 그래, 솔로들이여 크리스마스라고 기죽을 것 없다. 솔로 핑계를 대고 집에서만 뒹글 이유도 없다. 백만 커플 군단이 점령한 시내로 나가자. 영화 <세렌디피티> 같이 운명적인 사랑이 기다릴지도 모를일이니까,

친구들과의 약속이 어긋나고, 케빈과도 절교(?)한 나 역시,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내봐야겠다. 비단 내게 어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부디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며, 이 말을 전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미리 해피 뉴 이어!"


태그:#크리스마스, #솔로들이 크리스마스에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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