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연말 책도 잘 안 읽힌다면 연말이면 술자리도 많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솔솔 올라와서 책 읽기가 어려워진다. 빼곡한 텍스트는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그렇다고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려고 해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한쪽에 생긴다. 만약 이런 마음이 든다면 <개념만화>를 읽어보는 게 좋겠다. 다른출판사에서 나온 다른만화시리즈는 인문사회의 지적 욕구와 세련된 이미지가 주는 감각적인 만족감을 함께 준다. 짧은 시간 동안 책장을 펼치면서 흥미로운 만화를 보면서도 독서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첫 번째 시리즈는 얼마 전에 타계한 미국의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 원작의 <만화 미국사>다. 이 책은 <미국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를 만화로 재구성하였다.
미국을 제3세계 독재 후원국, 제국주의 국가, 악덕자본국, 인종차별국가라고만 본다면 반쪽만 알고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민권운동, 독재·전쟁에 대항하는 반전운동, 악덕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시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곳 또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인 풀먼 파업,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 이야기 등 풍부한 사례가 만화와 함께 실려 있다.
불편하지만 진실을 그려낸 만화
두 번째 만화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다. 1982년 9월 16일.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자행되었던 학살을 소재로 다룬 동명의 만화영화와 만화가 함께 출시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은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를 유대인들에게 할당하면서부터였다. 이듬해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아랍 연합군과의 1차 중동전이 시작되었고. 1973년까지 4차에 걸친 중동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전쟁을 하게되었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과의 전쟁과 이어진 대학살로 인해 결과적으로 레바논에 과격테러단체인 헤즈볼라가 생겨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이 계기가 되어 최근 레바논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실제로 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군 출신 아리 풀먼이 만들었으며 작품 발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으로부터 모두 거센 비난을 들었다. 이스라엘은 "배신자"라며 낙인찍었고, 팔레스타인은 너무 약하게 심지어 미화시켜 그렸다며 비판했다.
세 번째 작품은 뉴욕 타임즈에 연재하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전격 연재가 중단된 것으로 유명한 세스 토보크먼의 <나는 왜 저항하는가>이다. 부제가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이다. 상당히 시민적인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세스 토보크먼은 만화를 통해 세상에서 은폐된 진실, 정치적 야합을 고발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는 정치만화 <그림으로 읽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유명세를 얻었으며, 전 세계의 시민운동가들이 그의 만화를 포스터와 플래카드로 쓰고 있을 정도로 메시지와 작품성에서 뛰어나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항을 하는 이유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독점
자본이 돈을 버는 방식, 국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와 세계를 대상으로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구조적으로 잘 드러내 준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64쪽에 그려진 2001년 9월 11일 9·11 사건이 발발한 아침의 한 장면이다. 워싱턴의 한 고급 호텔에서 열린 칼라일 그룹 회의에서 아버지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의 형이 함께 참석했다. 이는 악덕 자본과 국가폭력, 테러리즘 등이 모두 한 핏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보시다시피 <다른만화 시리즈>는 은폐된 역사나 저항하는 시민의 관점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거부될 수 없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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