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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모델하우스와 홍보책자만큼 한국사회 구성원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없다. 서울 근교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경우, '친환경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이미지와 미사여구로 홍보책자를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라도 아파트를 분양받겠다고 몰린다.

'상기 이미지는 입주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개략도로 실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이미지 아래, 위와 같은 작은 글씨를 눈여겨 보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다. 주택선분양제도 하에서 분양하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경우, 건설사가 홍보한 내용과 다르게 아파트가 지어졌다고 해도 다른 상품과 달리 반품이나 환불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집값이 하락할 경우, 집값 상승을 기대했던 계약자들의 후회와 불만은 더 커진다. 곧 입주거부와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계약자와 건설사 모두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계약자와 건설사의 소송전으로 비화된 '호평 파라곤'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동양건설산업이 경기 남양주시 호평동에 지은 1275세대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선분양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일 입주가 시작됐지만 대다수 계약자의 입주 거부로 단지는 썰렁한 모습이다. 지난 6일 이곳 현장을 찾았다.

10m 옹벽과 하천 복개가 친환경 생태하천?

 '호평 파라곤'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호만천의 이미지(위)와 실제 호만천의 모습(아래).
'호평 파라곤'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호만천의 이미지(위)와 실제 호만천의 모습(아래). ⓒ 동양건설산업 / 선대식

"비싼 값을 주고 불량품을 산 셈입니다."

호평 파라곤 계약자 김진애(가명·49)씨의 말이다. 그는 약 6억 원짜리 분양면적 182㎡(옛 55평)형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3.3㎡당 분양가는 1080만 원 수준으로, 800만 원대인 인근 아파트보다 30% 이상 비싸다.

자리를 함께한 다른 계약자들도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며 "친환경 아파트라는 홍보 책자를 믿고 시세보다 더 비싼데도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을 기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양건설산업은 2007년 12월 분양 당시 친환경 설계를 강조했다. 홍보 책자에는 단지 앞에 숲으로 둘러싸여 흐르는 호만천의 이미지와 함께 "청계천과 같은 명소를 만들고자 자연형 하천으로 재조성하는 호만천 상류에 (호평 파라곤이) 위치, 호만천 프리미엄의 주인공이 됩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담겼다.

하지만 계약자들과 찾은 호만천은 홍보 책자에 나온 자연형 하천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일부 구간은 복개됐다. 나머지 구간도 하천 주변으로 10m가 넘는 옹벽에다 울타리가 설치돼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한 계약자는 "많은 사람들이 호만천을 보고 이곳 아파트를 계약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약자들이 전혀 모른 상태에서 호만천의 모습이 바뀌었다"며 "계약자들은 '호만천을 살려 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들은 체를 안 했다"고 비판했다.

계약자들, 잔금 납부와 입주 거부에 소송까지... "살고 싶지 않다"

아파트 단지 북쪽 산을 깎은 곳에 세운 옹벽도 논란거리다. 홍보 책자에는 옹벽 대신 나무로 둘러싸인 인공 폭포의 모습이 나와 있다. '물빛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는 거대한 옹벽이 세워졌다. 동양건설 쪽에서 최근 인공 암벽으로 옹벽을 가렸지만 여전히 홍보 책자의 친환경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한 계약자는 "너무나도 흉물스러운 모습"이라며 "물빛 정원이 아니라 귀곡산장과 다름 없다, 동양건설이 사기 쳤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누수 등 여러 하자가 있다는 게 계약자들의 주장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평 파라곤'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물빛 공원 이미지, 물빛 공원 대신 설치된 옹벽(오른쪽 위), 현재 옹벽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인공 암벽 모습(아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평 파라곤'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물빛 공원 이미지, 물빛 공원 대신 설치된 옹벽(오른쪽 위), 현재 옹벽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인공 암벽 모습(아래) ⓒ 동양건설산업 / 선대식

현재 1275세대 중 600여 세대가 동양건설을 상대로 계약취소 소송을 낸 상태다. 이들은 소장에서 호만천과 물빛 정원 등을 언급하며 "(호평 파라곤의) 선전·광고는 일반 상거래의 관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시인될 수 있는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가 아니라 비난 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 고지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들은 중도금과 잔금을 합쳐 전체 분양가격의 40%를 내지 않고 있다. 입주 역시 거부하고 있다. 계약자 최순자(가명·57)씨는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많은 계약자들은 계약 취소를 원하고 있다"면서 "동양건설이 최소한 보상이라도 해준다는 식의 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자들의 분노는 동양건설뿐만 아니라 준공허가를 내준 남양주시청으로도 향했다. 남양주시청은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준공허가를 내줬다. 한 계약자는 "30일과 31일 남양주 시장과 도시국장은 계약자들에게 건설사와 계약자간의 협의를 중재하기로 해놓고선 갑작스레 준공허가를 내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호석 남양주시 주택과장은 "준공허가와 계약자들이 말하는 허위 과장 광고와는 상관이 없다, 1275세대 중 샘플로 몇 군데의 품질을 살핀 후 사람이 살기에 큰 문제가 없어 준공허가를 내준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건설사와 계약자간의 문제는 법원에서 판결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동양건설 "집값이 떨어져 계약자 반발 거센 것"

한편, 동양건설 쪽은 "집값이 오르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양건설 홍보부 관계자는 "현재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계약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이라며 "집값이 오르고, 봄이 돼 주변 환경이 보기 좋아지면 건설사와 계약자들 사이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호만천과 관련해서 "홍보 책자에는 '단지 앞 호만천'이라고 언급돼 있지 않다, 시에서 자연형 하천을 만들고 있는 단지 아래 쪽을 언급한 것"이라며 "단지 앞의 경우 계약자들은 왜 복개를 했고 홍보책자와 다르냐고 하지만 동양건설에서 큰 돈을 들여 무허가 가구공장을 이전시킨 노력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홍보 책자에는 '상기 이미지는 입주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개략도로 실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표기돼 있다"며 "홍보 책자와 실제 현장의 모습이 100% 똑같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수 등 계약자들이 언급한 하자에 대해서는 "어느 아파트나 하자는 있을 수 있다, 하자 보수 기간 내에 최선을 다해 보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옹벽에 당초 설계보다 4.5배 더 큰 인공 폭포를 만들어 가동을 할 예정"이라며 "단지 내 도로에 단지 열선을 깔고, 수영장과 헬스클럽을 최소 6개월 무료 운영하는 등 입주민을 위한 특화사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호평 파라곤#허위 광고#과장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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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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