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용학교 학생들이 성남 모란역에서 미용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아내 김령희 모습.
미용학교 학생들이 성남 모란역에서 미용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아내 김령희 모습. ⓒ 윤태

 

뼈를 에이는 듯한 혹한이 2월 1일을 기해 완전히 풀렸다. 경기도 성남 모란역에 위치한 미용예술직업전문학교 학생들이 미용 봉사하는 모란역 분당지하철 역사를 찾았다. 완전히 풀린 날씨라고는 하지만 미용봉사가 펼쳐지는 지하철 대합실은 제법 추웠다.

 

미용직업전문학교 학생들이 펼치는 미용봉사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무료로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것과 동시에 이들을 대상으로 커트 기술을 익히는 것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실습과 경험만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설 연휴 전날 오후라 그런지 무료인데도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란시장(5일장)이 서는 날이면 머리를 자르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한다고 현장에서 한 수강생이 말했다.

 

머리를 자르는 분들은 역 주변 노숙인들과 노인분들이 대부분이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술이 과하게 취한 노숙인이 '빡빡' 머리로 잘랐다. 빡빡머리 노숙인은 미용봉사가 펼쳐지는 바로 옆 대합실 의자에 앉아 다른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고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빡빡 머리를 깎아준 수강생에게 다가가 스님처럼 완전하게 밀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것은 이발소에서 면도날로 해야 한다고 말해주자 그 노숙인은 칼대는 것은 싫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서 술과 담배를 즐겼다. 이미 술이 과한 상태에서 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내 김령희에게 '박박' 머리를 자르고 난 한 노숙인(사진)이 스님처럼 완전하게 밀수 있냐고 묻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내 김령희에게 '박박' 머리를 자르고 난 한 노숙인(사진)이 스님처럼 완전하게 밀수 있냐고 묻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 윤태

지하철 관계자가 달려와 옥신각신 하는 동안, 담배연기가 피어올라도 미용학교 수강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 머리를 자르거나 다른 손님들을 기다렸다. 이들 수강생들은 굳이 노숙인이거나 아니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머리모양을 제대로 살려 깎아낼까 하는 게 관심사였다. 노숙자들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또 몇 달째 머리를 감지 못해 온갖 오물과 비듬이 떨어져도 수강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머리만을 생각한단다.

 

한 수강생은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날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미용 봉사를 했는데 너무 추워 손이 떨리는 바람에 머리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손을 베기도 했다"며 "날이 너무 추워 손님 머리에 물을 뿌리지 못하고 머리를 잘라야 했다"며 그 당시 어려운 상황을 회상했다. 한 시간 남짓 무료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지켜보며 한 수강생과 짧게 인터뷰를 나눠봤다.

 

 하루종일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 일이라 쉽진 않지만 아내 김령희는 결코 쓰러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루종일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 일이라 쉽진 않지만 아내 김령희는 결코 쓰러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 윤태

 

 

입에 바나나 물려 주시고 커피 주시는 분 눈물나게 고마워, '인간애' 느껴져

 

다음은 미용학교 수강생 김령희씨(37세)와 나눈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헤어미용 기술을 배우게 됐나?

"미용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7개월째이다. 어려서부터 손재주도 있었고 헤어미용에 관심도 있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배워서 아이들이나 남편 대상으로 집에서 간단하게 커트해주려고 했는데 이 분야로 취업까지 생각하게 됐다."

 

- 미용학교 다니면서 가장 힘든 일이 있다면?

"아무래도 하루종일 서 있으려니까 종아리와 허리가 많이 아프다. 미용실 하시는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그냥 견딜만 하다고 하던데, 아직 내가 습관이 안 돼 그런 것 같다. 서서 하는 일에 대해 남편이 많이 걱정하고 있지만 이 일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만약에 이 분야로 취업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일명 '시다'라고 불리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알고 있다. 미용 기술을 몸소 익히는 것보다는 미용실 청소부터 온갖 잔심부름을 하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혀야한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점심밥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다. 뭔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미용학교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기술을 익혀야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봉사와 실습을 나와 있는게 아닌가. 우리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바로 미용실에서 일하는 경우 일명 '시다' 생활을 수년동안 길어질 수도 있다. 그 '시다' 생활을 대폭 줄여줄 수 있는게 바로 미용학교인 셈이다."

 

- 미용봉사 나갔다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모란장 서는 날이면 정말 많은 분들이 넉줄까지 서서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니 너가 먼저니 나이가 많으니 적으니 하면서 욕설과 함께 서로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분들도 계신다. 시간되면 모란장 서는 날 한번 와보라. 세상의 많은 분들의 삶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미용학교 생활은 어떤가?

"마치 공부 열심히 하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오전에는 이론공부, 오후에는 실습 위주로 진행이 되는데 미용의 세계가 그리 간단한 것 같지 않다. 동기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집에 있으면 무기력해지는데 그 어떤 일이던지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나저나 중도에 포기한 동기생들이 많이 보고 싶다."

 

- 헤어미용 배우는데 있어 주변 반응은 어떤가?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앞으로 식구들 머리 자르고 퍼머하는데 돈 안 들어 좋겠다고 한다. 얼마 전 남편 커트 해줬는데 옆머리를 너무 짧게 쳤다. 그렇게 머리 자르고 사무실 갔더니 남편 동료들이 입대하냐고 물었단다. 그렇잖아도 남편 얼굴이 긴 편인데 옆머리를 짧게 쳤으니 더 길어 보인다고 남편도 내게 한마디 했다. 이번 '머리 사건'을 계기로 더 분발하라고 내게 격려해줬다. 그래도 언제나 머리를 대준다며 실습하라는 남편이 고맙다. 중요한 건 헤어미용을 배운다고 해서 지인들의 머리를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사실이다."

 

- 보람있었던 적 있었나?

"물론이다. 모란역사에서 봉사할 때 보기 좋게 잘 깎았다거나 나중에 훌륭한 미용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손님들이 감사의 말씀을 해주실때이다. 심지어 어떤 어르신은 나더러 며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까지 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다 주시는 분, 커트 중에 입에 바나나를 넣어 주시는 분, 호주머니에 요구르트 넣어주시는 분, 나중에 미용학교로 직접 찾아오겠다며 명함을 요구하시는 분도 계신다. 계속 커트 중이라 커피는 식어서 못 먹고 바나나에 머리카락이 묻어 한잎 먹고 더 이상 먹을 순 없었지만 그런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기도 한다. 보람을 넘어 끈끈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때도 많았다."

 

- 헤어미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에는 사람 머릿수도 많고 그만큼 미용실 수도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발길에 채이는게 미용실인데 차리면 수입이 될까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자신이 기술을 얼마나 열심히 연마하고 손님 관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은 알아두고 어금니 꼭 깨물고 배울 자신이 없다면 다른 일들을 알아보라. 그만큼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성실하게 나오고 배워야 국비도 지원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근면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아내 김령희가 미용학교 다니며 기술 익히는 이야기는 최근에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에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아내 김령희가 미용학교 다니며 기술 익히는 이야기는 최근에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에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TV동화 행복한 세상 캡쳐

 

 <행복한 세상>에 주인공으로 나온 아내 김령희
<행복한 세상>에 주인공으로 나온 아내 김령희 ⓒ TV동화 행복한 세상 캡쳐

 

덧붙이는 글 | 인터뷰에 응해준 미용예술학교 수강생 김령희씨는 기자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미용예술전문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