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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형 한글을 탑재해 푱,숖 등 안써지는 글자도 많았습니다.
▲ [추억의 워드] 완성형 한글을 탑재해 푱,숖 등 안써지는 글자도 많았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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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이던가요. 명륜동에 있었던 신지식인 회관(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을 갔습니다. 신지식인 1호인 심형래씨를 비롯해 대상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커다란 표지석을 보며 7살 짜리 꼬맹이 아들에게 아빠 이름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컴퓨터는 내게 두려웠던 존재

컴퓨터라는 괴상한 기계를 처음 만난 것은 공무원을 처음 시작하던 1989년도였습니다. 강원도 정선군으로 발령을 받은 후 공무원 신규자 교육을 받기 위해 강원도공무원교육원에 입교를 했는데, TV도 아닌 것이 까만 화면에 깜박거리는(커서)는 기계는 참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정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자판으로 글씨를 치면 그 글자가 까만 화면(모니터)에 보여진다는 것과, 보여진 글자들이 그대로 프린터를 통해 출력이 된다는 것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저것을 내가 과연 배울 수 있을까! 8주 교육을 마치고 복귀를 했는데, 다행히도 사무실에는 주민 전산망 컴퓨터가 한 대 있었고, 타부서 직원들은 전동 타자기나 수동 타자기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철 사무실안은 추워서 직원들이 동동 거려도 주민 전산망이 있는 컴퓨터실은 난로도 피우고, 한여름 더울 때 직원들에게는 그 흔한 선풍기 한대 지급하지 않아도 그 컴퓨터에게는 선풍기를 돌려줬을 정도로 정말이지 귀빈 대우를 했습니다.

1년 뒤 총무계를 시작으로 부서별로 컴퓨터가 보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컴퓨터가 저장 장치인 하드 디스크는 없고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1개만 달린 80286XT모델입니다.

이젠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불안감. 컴퓨터 학원에 가서 8만원을 내고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쓰는 화면(행망인 하나워드)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system, print, sum... 등 이상한 용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gw-basic이란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그러니 컴퓨터는 하나워드(금성소프트웨어)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혼돈일 수밖에요.

"하나워드는 안 가르치나요?"
"여기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학원이지 그런 건 모릅니다."

학원에 등록한 지 한 시간 만에 그만두고,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MS-DOS 전문가가 되다

"요새 컴퓨터 얼마나 하니?"
"어떤 종류를 원하는데?"
"컴퓨터면 그냥 컴퓨터지 무슨 종류가 있냐?"
"무식한 자슥아! AT야, XT야? 그리고 메이커야 조립품이야?"

이 친구는 점점 모를 소릴 합니다.

"야! 니한테 설명해줘도 모르니까, 가게에 조립품 괜찮은 게 있는데, 80만원에 가져가!"

사무실에서 보통 160만원에 샀다는데, 이 정도면 엄청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산을 갔더니, "이게 AT컴퓨터라는 건데, 씨게이트 20메가 짜리 하드가 있는데 달래? 그거 달으려면 20만원 더 내라" 사무실 컴퓨터는 80286XT(하드 디스크는 달 수 없는 구조)로 플로피 디스크드라이브 한 개만 달린 것만 보아온 나는 80286AT에 하드디스크를 빼고 대신 플로피 2개를 붙여가지고 왔습니다(이건 완전 기형입니다).

컴퓨터를 자취방 책상 위에 신주 모시듯 모셔놓고는 컴퓨터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나 사용하기 전에 잊지 않고 꼭 손을 씻었습니다.

가까운 서점에 가서 컴퓨터 책을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어제 들어온 책(신간)이라며 두꺼운 책을 한권 줬습니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놓고, 책을 폈는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DOS 운영체제 PC를 쓰는 놈이 UNIX책을 사온 겁니다. 주인아저씨는 컴퓨터에 대해 나보다 더 모르니까 새로 나온 책이라고 생각해서 주신건데.

MS-DOS 2.1버전 책을 구해다 dir, copy, format, del, rename...명령어만 넣으면 말을 잘 듣는 똑똑한 기계는 나를 며칠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었습니다.

한 달 뒤 '아! 하드디스크가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라는 생각에 20메가 하드 디스크를 20만원 주고 샀습니다(1메가 당 만원꼴이니까 무척 비싼 편이었지요).

그로부터 1년 뒤 하나워드프로세서는 완전히 도사가 되었고, 로터스, 닥터할로(그래픽 편집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3+ 까지 섭렵했으니까 그 시기에 사무자동화는 완전히 끝낸 겁니다.

직원들이 컴퓨터에 대해 물어오면 운영체제가 어떻고, 주소록을 만들려면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써야 한다는 둥, 로터스를 가지고 봉급계산을 하면 한 시간이면 끝낸다는 둥 그야말로 아는 척은 혼자 다 했던 시기입니다.

홈페이지 만들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잘난 척 하던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5년도 도스 운영환경에서 가끔 보아왔던, 윈도3.1이 어느 날 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라는 수식어와 함께 윈도95로 탈바꿈해 등장한 것입니다.

누구나 마우스 클릭만으로 쉽게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경. 도스용 프로그램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 대다수는 아마 윈도95 등장이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생 고생하면서 배운 도스 명령어나 응용프로그램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1998년도에 태그 명령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언어도 아닌 것이 몇 개의 명령어를 순서대로 쓰기만 하면 멋지게 화면에 표시가 되는 겁니다.

홈페이지를 만들자. 그런데 어디에 만드냐. 대기업에서는 자체 서버를 구축해서 홈페이지를 구축하면 되겠지만, 개인이 홈페이지를 운영한 다는 것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때 구세주 같이 등장한 사이트가 넷츠고(nets go)입니다. 용량(20M)은 많지 않았지만, 가입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상단-홈페이지 첫화면, 아래-군부대 안내 게시판
▲ [어렵게 찾아낸 당시 홈페이지] 상단-홈페이지 첫화면, 아래-군부대 안내 게시판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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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들어진 내 홈페이지 주소는 http://my-home.netsgo.com/ktsinh. 당시에는 많은 지자체가 홈페이지를 보유하지 않았던 시기로, 내가 소속된 화천군(2003년도 정선군에서 전입)도 홈페이지가 없었습니다. 관광, 낚시, 축제, 군정안내 등의 정보를 올리고, 도시민들을 위한 산나물 정보와 3개 사단이 인접해 있다는 점을 이용해 '군장병 면회객 안내 정보'를 올리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묻고답하고'라는 게시판은 하루에 수십 건에 이를 정도로 '○○연대를 가려면 어떻게 가요?" , '△△부대 인근에 숙박업소 좀 알려주세요' 등 수많은 문의가 이어졌고, 매일 답 글을 올려주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는 인사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신문에 나던 시기

"여기 강원일보인데요. 주사님의 홈페이지 내용을 박스기사로 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았죠. 신문에 내 주겠다는데... '화천을 지구촌에 알린다' 다음날 신문에 사진과 함께 소개된 기사 제목입니다.

'화천을 지구촌에 알린다' 참 거창한 제목입니다
 '화천을 지구촌에 알린다' 참 거창한 제목입니다
ⓒ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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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청내에 느껴지는 곱지 않은 시선. 그럴 만도 한 것이 '郡에서 해야 할 것을 지가 뭔데 나서서 잘난 척 하느냐'라는 많은 직원들의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뒤 경향신문 메거진X에서 "당신을 특집으로 다루기 위해 취재를 나가야 하는데 협조 좀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 매거진X 한면 전체가 내 기사로 도배가 된데 대한 희열. 신문보도 이후 하루 홈페이지 접속건 수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당시에는 엄청난 결과였습니다.
경향신문 매거진X
 경향신문 매거진X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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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정보통신부에서 정보통신의 날 장관상을 주겠다는 제안은 '공무원들이 표창을 받으려면 공적조서를 작성해서 상부에 올려야 된다'는 내 상식을 뒤집은 경우이기도 했습니다.

신지식인이 되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제2건국위원회와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신지식인에 선정이 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훈격은 국가정보화 유공.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지역 알리기가 국가 정보화 발전에 기여 했다고 생각하기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행안부 입장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한 군 장병 면회객 안내 등 개인이 자치단체(홈페이지)에서 해야 할 역할을 대신 했다는데 무게를 두었던 것 같습니다.

경항신문 기사 내용
경향신문 기사내용 전문
 경향신문 기사내용 전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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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광태, #나울이야기, #신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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