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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영미 화백은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고 스스로의 실존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서 한밭도 비켜서지 않은 일상을 사시는 분입니다.

평소 붓을 들고 맹진하는 모습은 거침없는 여전사의 모습입니다. 이 분의 인체 드로잉을 볼 때마다 저는 그분의 붓이 사람이 곧 우주임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그림에만 시간을 다 쓸 수 있음에 그분의 독신을 많은 기혼 여성분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보곤 합니다. 호쾌한 성격에 교우하는 폭이 넓어 그녀 곁에는 다양한 직종의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전업작가로서 전성기를 살고 계신 쉰 살의 김 화백님이 지난 연말 모티프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수다를 즐기다가 외로움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울먹였습니다. 옆에 계셨던 이지은 변호사와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지나서야 진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김영미화백의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는 이지은변호사. 독신인 김영미화백의 절대고독은 기혼자인 저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김영미화백의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는 이지은변호사. 독신인 김영미화백의 절대고독은 기혼자인 저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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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스튜디오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야말로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찾아오고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 홀로 남아 붓을 잡는 순간에는 참기 어려운 외로움이 엄습합니다. 그것은 때로 그냥 외로운 것이 아니라 '뼈가 시린' 외로움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그분의 자유로움과 호쾌함 뒤에 숨겨진 그 외로움에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홀로임, 때론 천국이고 때로는 지옥

지난달 김 선생님의 페이스북에 세상을 등진 분의 이름을 휴대폰에서 지우는 단상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느 사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휴대폰에서 지워야만 했다. 근자에 돌아가신 고대 법대 최달곤 교수님과 그리고 화가 김문회 선생, 2년 전 돌아가신 제일 존경하는 세계적인 석학 UN 해양법재판관인 박춘호 교수님, 이름을 불러볼 수 없는 잊혀져 가는 사람을 다시 휴대폰에서 지우는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사실, 그분들의 이름을 휴대폰에서 지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세 분의 이름을 기어이 지우고 말았다. 가끔씩 검색을 하다 떠오르는 그 분들을 대할 때면 그날의 내 감정과 상관없이 늘 우울하기 일쑤다."

저는 김 화백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아마 이 세 분의 이름을 지우는 일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대화를 즐기다 집으로 돌아간 뒤 김 선생님 홀로 남겨진 외로움 같았을 거라 추측했습니다.

김 화백께서는 소프라노 조수미씨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도 그 얘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전 조수미씨와 동갑이죠. 그녀의 자서전을 읽은 지 어언 15여 년. 그녀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디바가 되었고 전 이제 국내외에 전시를 가끔씩 하는 그런 조무래기 환쟁이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독은 배가되어 제게 다가오네요. 왜 아니겠어요? 어떤 땐 종종 작업실 공간에서 그림 그리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르곤 하지요. 눈물로 찍어낸 제 작품들은 오늘도 어디론가 제 곁을 떠나고..."

'음악은 내 종교'라고 여기는 프리마돈나 조수미는 첫사랑과 1년간의 불꽃 사랑을 끝으로 여전히 독신입니다. 1년의 대부분을 세계의 무대에 서야하는 그녀의 외로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인가부터 생각해요. 낯선 방에서 눈을 뜨는 순간의 외로움은 때로 울음이 날 만큼 절절해요. 또 공연을 마치고 호텔방에서 혼자 화장을 지우면 참기 어려운 허무감이 몰려와요. 너무 외로워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안 되면 절망적이죠."

김영미 화백은 동갑네기 조수미의 그런 고독이 배가되어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작업실에 있는 시간은 금싸라기 같은 시간인데도 어는 땐 천형 같고 어느 땐 천국 같다'고 합니다. 저는 김화백님의 작품들이 천형 같은 고독으로 빚은 아름다움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마 이 중진화가에게도 '홀로임'은 때로 천국이고 때로는 지옥인 가봅니다. 그 때 마다 열락과 고독이 갈마드는 듯 싶습니다.

 지금 모티프원의 난간에서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멧비둘기. 이 멧비둘기는 함께할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틀째 수십 차례 잔가지를 물어 나르고 있습니다.
 지금 모티프원의 난간에서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멧비둘기. 이 멧비둘기는 함께할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틀째 수십 차례 잔가지를 물어 나르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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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자가 독신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일전에 역사사랑방의 김영희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응일이가 운전봉사를 해주겠다네요. 게장 담글 게를 사러 소래포구로 갈 거에요. 함께 가요. 선생님!"

저는 김 선생님과의 나들이를 제 형편이 불가피하지 않으면 절대 거절하지 않습니다. 김 선생님과의 수다가 제게는 언제나 값진 휴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응일 감독의 조신한 운전으로 김 선생님과의 도로 위의 방담이 농익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혼자 사는 사람이 보편적으로 수명이 더 짧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밥벌이로 등을 펴기 어렵고, 여자는 가사와 육아로 앉아볼 여가도 없을 텐데 왜 그럴까요."
"외로워서 그래요. 사람은 싸우더라도 사람과 섞여 지내야 해요. 사람과 싸우고 사람에게 다시 위로받거든요."
"그럼 결혼한 부부의 함께 사는 스트레스보다 독신의 혼자사는 외로움이 우리 몸에 더 큰 독이겠군요."
"그럼요.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해요."

인천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저도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스트레스는 홀로 풀 수 있어도 외로움은 결코 혼자 풀 수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독신의 절대고독은 결국 해독되지 않은 채 몸의 어딘가에 축적되어 그리되는가 보다."

결국 '독獨이 독毒이다' 싶습니다.

 집짓기를 잠시 멈추고 함께하시는 시간을 나누고 있는 멧비둘기 부부. 집짓기의 고된 노동도 함께라면 쉬 풀릴 수 있나봅니다.
 집짓기를 잠시 멈추고 함께하시는 시간을 나누고 있는 멧비둘기 부부. 집짓기의 고된 노동도 함께라면 쉬 풀릴 수 있나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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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구정을 앞둔 날 김 화백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혹 설날 집에 계시나요?"

저는 서둘러 답했습니다.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명절은 특히 독신에게 독성 강한, 뼈 시린 고독의 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외로움#고독#결혼#김영미#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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