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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할리 데이비슨, 유라시아를 접수하다>
책 <할리 데이비슨, 유라시아를 접수하다> ⓒ 매일경제신문사
고구려 민족은 말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렸다고 전해진다. 현대 사회에서 말을 타고 이 거대한 땅을 달리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은 가능하다. 할리 데이비슨으로 광야를 누빈 이영건씨처럼 말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바쁜 세월을 보내다가 50대를 맞이한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결심한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멋진 일을 한 번 해보겠다고. 평소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마니아인 그는 자신의 애마와 함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감행한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왜 굳이 할리 데이비슨을 고집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할리 데이비슨의 매력은 'Look(디자인), Sound(소리), Feel(진동감)'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전통적인 프레임 디자인을 유지한 채 최신 기술을 덧입힌 디자인(Look), 라이더의 가슴을 울리는 '다그닥' 말발굽 엔진 소리(Sound), 마치 말을 타듯 리듬감 있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독특한 진동감(Feel)이 그 매력인 것이다."

오토바이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도 이만하면 왠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어떤 오토바이기에 그토록 많은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걸까? 브랜드 로고를 문신하고 다닐 정도로 애정을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 전 세계 마케터들의 관심을 받을 만하다.

장기간의 여행이라는 거사를 치르기 위해 저자는 어머니께 미국에 공부하러 다녀오겠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덕분에 어머니께는 '나이 들어서도 학업을 놓지 않는 기특한 내 새끼'가 되었으니 양심이 조금 따끔하다. 바이크를 타지 말라는 주치의마저도 신나게 설득한 저자.

그러나 여행은 그의 바람처럼 만만치가 않다. 젊은 나이에 떠나도 힘이 들 게 당연한 여행인데 50대의 건강도 좋지 않은 아저씨가 바이크를 탔으니 힘이 들 수밖에…. 바이크 동호회에서 만난 20여 명의 사람들과 시작한 여행은 마지막에 5명만 남았다고 한다.

유라시아 횡단하겠다고 떠들었는데... 돌아가라니

그들의 난관은 첫 관문인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시작된다. 총 영사관에서 바쁘게 나온 K 영사는 두 손 두 발을 들며 이들의 여행을 말리고, 동호회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출발하기 전에 유라시아 횡단하고 오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그것도 부족해 신문에까지 기사가 나왔는데 시작부터 돌아가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빌고 또 빌어 겨우 여행 허락을 받았지만 이 일로 여행자들은 겁을 집어먹게 된다. 러시아가 무시무시한 무법천지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호텔에 들어갔는데 뜻밖의 무리가 있다. 러시아의 바이크 동호회인 '사무라이'가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나와 있던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주행 시 소리가 무척 큰데, 17대의 할리 데이비슨이 달렸으니 러시아의 바이크 족들에겐 호기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사무라이'는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동호회여서 처음엔 우리 동호회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다른 동호회 인들도 만나고 러시아의 길 정보를 쉽게 얻는다. 첫 출발부터 순조로워서일까? 다행히 3달에 가까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여성 시장을 비롯하여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언제나 맑은 것만은 아니다. 흙먼지 길을 달리기도 하고 빗속에 주행을 계속하면서 몸살감기에 걸리기도 하는 대원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게 되었을까?"하는 원망도 들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대원들은 그 누구보다 벅찬 감격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 뿌듯한 마음은 다른 평범한 사람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리라.

코브라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

바이크가 부서지는 순간에는 내 몸이 부서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고, 대원 중 하나가 넘어지고 다치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과 함께 '정신 차려야지'하는 경계심이 들었다고 한다. 여행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성숙케 하는 새로운 계기가 아닌가 싶다.

몸무게가 제법 나갔던 저자는 여행 끝에 10여kg의 체중 감량까지 이루었다고 한다. 나이 오십에 떠난 험한 길이지만 많은 생각과 경험, 게다가 건강해진 체력을 얻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러시아의 아름다운 경관을 넘어 카자흐스탄의 불모지를 지나고 어디선가 코브라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사막에서 여행을 하는 바이크 동호회인들. 러시아에는 진드기가 많다는데 그것도 모른 채 노숙을 했건만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저자는 이 무사한 여행에 대해 신에게 저절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한다.

"우리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일행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기보다는 기적 같은 행운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이렇게 되니 나로서는 나의 유라시아 횡단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어서, 원래는 불가능했던 일도 하늘이 억지로 이뤄놓은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도 가끔 불가능한 일을 꿈꾸지만 씩씩하게 그 일을 시도해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이 오십에 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일. 누구나 한번은 꿈꿔 볼 만한 일이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과감히 무모한 도전을 실행한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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