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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궁원(宮苑)엔 네 개의 우물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열수(洌水)로  숙종의 뒤를 이은 영조가 붙인 이름이다. 후원엔 소요암이 있는데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게 제왕의 글씨다.

1636년인 인조 14년에 큰 바위를 깎아 소요암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바위를 돌아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아래의 '옥류천'이란 각자(刻字)는 인조의 글씨고 '경자이월 계미제(庚子二月 癸未題)'란 5언절구는 숙종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흐르는 물은 삼백 척 멀리 날으고
흘러 떨어지는 물은 높은 하늘에서 내리네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루누나

소요암 앞쪽에 어룡정(御龍井)이 있었다. 상감은 이곳에 들려 소요암 주위를 니은(ㄴ)자 형으로 판 곡수구와 폭포를 만들어 글 좋아하는 신하들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곤 했었다.

이곳 어룡정은 일 년에 한 번 정월 초하룻날 세수(歲水)를 마시기 위해 여는 것을 제외하곤 평소 무거운 뚜껑이 덮여 있었다. 그러나 궁원에 뜻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우물 뚜껑을 여는 일이 벌어진다.

선대왕이나 상감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엔 왕실의 윗전 정순왕후 명으로 우물 뚜껑을 열 수 있다. 요즈음 도화서 화원 김홍도 등이 상감의 '정조어진원유관본(正祖御眞遠遊冠本)'을 완성시켰기에 그것이 동짓달 전에 걸리려면 좋은 날을 택해 '향실(香室)' 문을 열고 향을 피우고 축문을 읽어야 했다.

이곳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도정치를 뜻하는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인정전(仁政殿)의 서쪽 행각의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 향청에선 왕실 의례에 쓰이는 축문과 향을 관리했으며 책임직은 '충의(忠義)'로 교서관 출신이었다. 직급은 높지 않지만 공신의 자제가 임명됐고 향관(香官)은 이틀에 한 번 숙직하는 참하문관(參下文官)이 많았다.

소론의 영수로 장희빈과 싸운 박세채(朴世采)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향내처럼 아련하게 전해온다.

규장각에서 성상을 뵈온 정약용은 눈에 띄게 수척해진 용안을 우러르며 우려했던 점들을 가만히 건드렸다.

"전하, 소인이 유배된 해미에서 돌아오기 전날 밤, 어둑새벽에 꿈을 꿨사온대 맹자(孟子)께서 꿈길을 찾아와 가까이 있는 버드나무의 잔가질 하나 꺾어 제게 내밀었습니다."
"이 나뭇가지는 죽은 것입니다."

"죽은 것이라, 어째서?"
"이 나뭇가지는 물기가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나무의 생명은 사라진 것으로 보옵니다."

맹자는 다른 나뭇가지 하날 꺾어들었다. 먼젓번 것보다는 가늘었지만 이번엔 쉬이 부러지지 않았다. 꺾어든 나뭇가지를 정약용에게 건네며 재우쳐 말했다.

"이 나뭇가지는 살아있네. 이것을 적당한 곳에 정성을 다해 접붙인다면 살아날 것이네. 그것은 물기가 도망가지 않은 탓이네. 한나무 가지에 달려 있으나 어떤 건 쉬이 부러지고 어떤 건 그렇지가 않은 것처럼 땅의 기운도 마찬가지라네."

"소인은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잠시 전, 잔가지를 꺾었던 나무. 그 나무를 이 나라 조선(朝鮮)이라고 할 때, 바람이 쉬었다 가고 물기가 차오른 곳은 생기(生氣)가 있었습니다. '바람'이란 무상한 세월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웅과 어진 선비들입니다. 그들은 이 나라 조선을 위해 잔가지를 늘어뜨리고 싹을 틔워 잎새를 무성하게 합니다. 때로는 동쪽 가지가 되어 군왕의 햇볕을 많이 쏘이는가 하면 어떤 것은 북쪽 가지가 되어 햇볕 한 점 들지않은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수액(樹液)이 마를 때까지 나무를 위해 바람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정조는 힘없이 고갤 주억거렸다. 이 나라 곳곳에 파당을 지은 패거리들이 많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탕평책'을 시행해 패거리 정치를 멀리하고 능력과 실력있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는 '개혁정치'는 만인에게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과거(科擧)에서 보듯 과시를 치르는 장소는 양반들의 놀이터가 돼 버렸고 힘깨나 쓰는 아랫것들을 내세워 자신의 패거리들이 유리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 '쟁접(爭接)'을 한다지 않는가. 정약용을 부르는 성상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보게 사암."
"예에, 마마."

"지난 칠석제의 과장은 예년과 다르게 철저히 통제했다고 하나, 과거장으로 입장한 패거리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마구 휘둘러 밟히고 다치는 일이 많았다 하오. 세력가의 도움을 받은 그들은 남의 글이나 도움으로 합격했으니 '과장운수 알 수 없다(場中得失, 未可知也)'란 말이 떠도는 게 과인의 나라 조선이란 말인가?"

"마마, 과시에 합격했다고 하여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나 그들이 파당을 이뤘으니 정치판에 나서면 옳은 것도 그르다 하고 상대가 주장하는 것은 진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반대할 것입니다. 장차 조선의 내일이 걱정이옵니다."

정약용의 이 말은 강력한 힘이 있었다. 지난 임오년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뒤, 선대왕이 재위 시에 조정은 살얼판이라고 해야 옳았다.

무조건 세손을 죽이려고 틈만 보이면 날뛰던 중신들 때문에 세손은 한걸음도 맘놓고 뗄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보위에 오른 상감은 '인'과 '덕'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탕평책을 베풀었다. 그러나 고마워하긴커녕 그들의 반역 음모는 오늘날까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총애하는 신하 정약용이 규장각에 들어왔어도 상감의 머리를 짓누르는 것은 어둑새벽에 꾸었던 사도세자의 현몽(現夢)이었다. 그것은 문효세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꾸었던 꿈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꿈속이지만 단말마같은 애처로운 부르짖음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몸을 솟구친 후 입직내관을 부르려다 그만 두었다.

아직은 칠월 중순을 넘겼지만 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새벽이었다. 어둠 속에서 들은 동궁의 애처로운 부르짖음은 귓가에 쟁쟁히 남아 있었다.

'문효세자를 잃은 게 언제인데 이 같은 꿈을 꾼단 말인가. 혹여 수빈이 낳은 세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밖에는 비가 내리는지 낙숫물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꿈이 너무 불길해서 상감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애써 잠을 청해 보아도 허사였다. 새벽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이른 아침을 맞았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어느 사이 멈췄다. 아침 구름은 걷히지 않았는데 동쪽 하늘은 희부옇게 밝았다.

언제나 이른 아침이면 들을 수 있는 새소리였지만 이날따라 참새떼와 까치가 시끄럽게 지저귄다. 신경질적으로 우짖는 까치소리가 새벽잠을 설친 상감의 마음을 산란히 흔들어 놓는다.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기다리고 있던 내관이 즉시 달려왔다. 꿈에 시달린 후 동궁에게 내관을 보낸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다시 물은 것이다.

"동궁에게 갔다 왔느냐?"
"예에, 마마. 동궁마마께서는 아무 일 없이 단잠을 주무시고 있는 줄 아옵니다."
"확인했느냐?"

"예에, 마마. 동궁마마가 신열이 있사와 종묘에선 고유제(告由祭)가 행해졌고 특사령(特赦令)을 받은 죄수들이 석방되었으며 백성들은 세금을 면세토록 하였나이다. 더군다나 전의청(典醫廳)에선 이름난 명의들이 조석으로 마마를 살핀 탓에 열이 내려 단잠을 주무신다 하옵니다."

어느 사이 상감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눈을 감고 눈자위를 두어 차례 꾸욱 꾹 누르고 나서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정약용이 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밖으로 알려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마마, 신이 마마를 알현코자 한 것은 궐 안의 금위영에 적(籍)을 둔 낭청을 살해한 일이옵니다. 그 자를 조사하다보니 품 안에  <호중록<壺中錄)>이란 금서를 지녔사온데 서책은 근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옵니다. 금위영은 동궁마마의 외조부인 박준원(朴準源)이 금위대장으로 있사오니 불순한 자들이 그 점을 노려 불충한 계략을 서둘렀다 보옵니다."
"무엇을 노린 것이오?"

"아직 확연히 드러난 것은 없으나 죽은 자는 낭청으로 이조와 병조의 일을 거드는 자니 사초(史草)를 아는 자이고 금위대장의 수하란 점입니다. 하오니, 소인에게 궐 안에 남아있는 금서(禁書)를 조사하란 명을 내리시어 신이 궐내각사(闕內各司)에 흩어져 있는 풍수 · 비기 · 도참의 내용들을 조사케 하소서."

"그리하리다. 한데, 사암!"
"예에, 마마."

"부산에서 차자(箚子)가 당도했는데, 그곳 왜관(倭館)에 일본 왕실에서 온 사신이 당도했다 하오. 헌데, 우려가 되는 것은 과인이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문인방' 사건이 일어났지 않았소. 패거리 중 일부가 오키나와 현으로 몸을 피하기도 하고 일본 황실에 숨어들었는데···."

"황실입니까?"
"그 중에 의술에 뛰어난 자가 있어 일본 황실에서 책을 짓고 총애를 받아오다 천황의 사람이 돼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지 않소. 이 사실을 안 대비전에서 사신들이 거처할 곳과 숙식을 책임지겠다 하여 그리하게 했으니 지금쯤 그 자들이 대비전에 들어왔을 것이오. 이보게, 사암. 그 자들이 궐에 들어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조사해 주기 바라오."

"하온데 사신들은 어떤 이름을 쓰옵니까?"
"차자에 쓰인 바론 '손이 작은 여승'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소수니(小手尼)야. 어떤 재주인지, 일본 황실을 뒤흔든 게 그림 보는 비방이라 했으니 사암이 그걸 알아내시오!"

[주]
∎궐내각사 ; 궐 안에서 사무를 볼 수 있는 곳
∎소수니 ; 손이 작은 여승
∎참하문관 ; 조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7품에서 9품까지 관원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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