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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의 10일(현지 시각) 연설에 대해 보도한 BBC.
정치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의 10일(현지 시각) 연설에 대해 보도한 BBC. ⓒ BBC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76, 법명은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텐진 가초)가 10일(현지 시각) 정치적 삶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과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 14세는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지배에 맞서 봉기(1959년 반중 봉기)한 지 52주년이 되는 이날,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에 나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자유선거로 뽑은 지도자가 필요하며, 그런 사람에게 권력을 넘겨줄 수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제 우리가 이 일을 할 때가 분명히 됐다."

자유선거를 통한 후임 선출을 당부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수일 내에 정치에서 은퇴할 것이며, 중국 바깥 티베트 공동체의 수장으로서 맡고 있는 "공식 권위자" 역할을 자신에게서 거둬달라고 티베트 망명 의회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한 "권위를 양도하려는 내 바람은 책임 회피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궁극적으로 티베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다음 주 초에 열리는 티베트 망명 의회에서 달라이 라마 14세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간 지지자들이 정치 지도자 역할을 계속 수행해달라고 달라이 라마 14세에게 요청했지만, 달라이 라마 14세 본인은 이전부터 "반은 은퇴한 상태"라고 표현하며 직접적인 정치적 역할과는 거리를 두고 소박한 수도승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계속 밝혀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인도 델리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달라이 라마 14세는 망명 티베트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티베트를 위한 국제 운동'의 케이프 손더는 이번 결정에 대해 "티베트가 역사적 위기를 맞은 순간에" 달라이 라마 14세가 "티베트 민중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1935년 티베트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1940년 지금의 직위에 올랐다. 농민의 아들이 5세 때 최고 지도자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티베트 불교를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직위가 세습되거나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그동안 전임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나면 환생자를 찾아 그를 새로운 달라이 라마로 세워왔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15세이던 1950년 실질적인 국가수반이 됐다. 그러나 바로 그해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침공'(중국에서는 '해방'이라고 부른다)했고, 티베트는 1951년 중국의 일부로 편입됐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반중 봉기가 일어난 1959년 티베트를 떠나 다람살라로 갔고 그곳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어왔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자유선거로 뽑은 지도자 필요... 때가 됐다"

한편 <가디언>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2년 전 보도를 거론하며 달라이 라마 14세의 정신적 후계자 문제도 언급했다. 당시 <슈피겔>이 '달라이 라마로서 (살아생전에) 사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었을 때 달라이 라마 14세는 "정치적 역할도, 확고한 영적 (지도자) 역할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가디언>은 "영적 계승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티베트 공동체 내에 심대한 균열을 불러올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달라이 라마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동체의 위기를 피해갈 방안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망명 티베트 공동체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전했다. "일부는 20대 후반의 젊은 성직자인 카르마파 라마가 망명 공동체 내의 명목상 최고 권위자가 되어 달라이 라마를 잇기 바라"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 신문은 지난해 티베트 망명 정부의 수상이 "우리는 젊고 에너지가 넘치며 성직자가 아닌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신문은 "중국이 (달라이 라마의) 권위 이양기에 생길 어떤 기회라도 활용할 것"이라고 봤다. 티베트 일각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중국은 "모든 티베트 불교 지도부 선임은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달라이 라마 후계 선정 문제에 개입할 뜻을 밝혀왔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티베트 수도 라싸까지 바로 이어지는 칭짱철도를 완공하는 등(2006년) 시짱자치구(티베트)를 확실하게 장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럼에도 반중국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2008년 상황을 겪은 중국 정부로서는 티베트 문제와 관련해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놓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날 달라이 라마 14세의 연설에는 중국 지도부를 향한 발언도 포함돼 있었다. BBC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 14세는 "중국이 이룩한 경제 발전에 감탄한다. 중국은 인류의 진보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 중국은 국제 공동체의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동안 독립보다는 '의미 있는 자치', '고도의 자치'를 원한다고 밝혀왔다.

또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이날 연설에서 최근 아랍을 뜨겁게 달군 시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이를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주목할 만한 비폭력 투쟁"으로 규정하고 "비폭력 행동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달라이 라마#티베트#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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